최순실 게이트가 현실로 드러나면서 최순실씨를 알지 못한다거나 최씨의 사업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증언한 정부 관계자들이 위증 혐의까지 떠안을 것으로 보인다.

최순실씨가 미르‧K스포츠재단 모금 과정에 개입하는 통로였던 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이 2일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을 예정이다. 안 전 수석은 불과 10일 전인 10월21일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최순실을 아느냐’는 질문에 “모른다. 전혀 모른다”고 말했다.

안종범 전 수석은 같은 날 국감에서 미르‧K스포츠재단 모금에 개입했다는 의혹에 대해 “대기업에 투자하라고 한 적이 없다. 순수한 자발적 모금이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연이어 안 전 수석의 증언이 거짓이라는 폭로가 쏟아져 나왔다. 정현식 K스포츠재단 사무총장은 안종범 전 수석과 문자를 55차례 주고받는 등 계속 연락했다고 밝혔고,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최순실씨의 지시로 SK에 80억 원을 요구했으며 안 전 수석이 확인전화까지 했다고 말했다. 김형수 전 미르재단 이사장 역시 안종범 전 수석과 여러 차례 만났다고 증언했으며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도 안 전 수석이 재단 인사 등에 개입했다고 밝혔다.

▲ 11월1일자 TV조선 갈무리.

최순실씨가 실소유주로 알려진 더블루K의 조모 전 대표도 지난 1월과 3월 안종범 전 수석을 만났으며 더블루K의 사업에도 그가 개입했다고 폭로했다. JTBC 보도에 따르면 조씨는 최씨로부터 안 전 수석에게 전화가 올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안 전 수석과 통화한 내용을 최씨에게 보고하기까지 했다. 안 전 수석이 최순실씨를 알지 못하며 미르‧K스포츠재단 모금에 개입하지 않았다는 국회 증언은 모두 거짓인 셈이다.

2일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안 전 수석은 최근 검찰 수사에 대비하면서 측근에게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등은 대통령의 지시를 받고 한 일”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안 전 수석은 또 “최 씨와 박근혜 대통령 사이에 ‘직거래’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는 이야기도 이 측근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자신의 법적 책임을 줄이려는 취지였겠으나, 거꾸로 그동안의 해명이 거짓말이었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 2일 오후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안종범 수석 검찰 수사관련 보도를 시청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최순실씨를 모른다며 최순실 게이트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부인한 또 다른 인물은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이다. 김종 전 차관은 지난달 27일 국정감사에서 미르재단 설립에 개입했다는 의혹에 대해 “저는 (미르재단 설립과) 직접적 관련이 없다”며 “미르재단과 관련해서는 전혀 모른다”고 답했다.

김 전 차관은 여러 차례 언론과 인터뷰에서도 “K스포츠재단 관계자를 만난 것은 맞지만 통상적인 업무의 일환이었다. 최순실씨는 모른다”(경향신문) “(최씨와) 관계가 없다. 안면이 어딨나”(MBC)라고 말했다.

하지만 TV조선 보도에 따르면 김 전 차관은 조아무개 전 더블루K 대표와 여러 차례 문자를 주고받았고, 조씨는 “최순실씨에게 문자를 보내 '김 차관과 논의한대로 사업을 진행하겠다'는 보고를 했다. JTBC는 조 전 대표가 1월부터 3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최순실씨 지시에 의해 김 전 차관을 만났으며 ”최순실씨 사무실 건물에서 김종 차관을 봤다는 목격담을 들었다“고 보도했다.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도 위증을 했다. 이승철 부회장은 9월26일 농해수위 국정감사에서 (미르·K스포츠재단이) 누구의 아이디어였나’라는 질문에 “기업계 의견 있어서 뜻을 모았다”고 답했다. 이 부회장은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기부금을) 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검찰 수사 단계에서 말을 바꿨다.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은 지난달 28일 검찰 조사에서 “미르·K스포츠재단 모금은 안 전 수석이 지시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역시 위증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조 장관은 국정감사에서 “(최순실씨는) 언론 보도로만 접했고 한 번도 만났거나 아는 분이 아니다”라며 “지금까지 일을 하면서 한 번도 그럴 가능성(국정농단)에 대해 의식해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2014년 6월부터 2015년 5월까지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냈기에 청와대를 자유롭게 왔다갔다 했다는 최씨를 모를 리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조 장관은 1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에서 “(최씨를) 본 적도 없고, 통화한 적도 없다. 청탁을 받은 일도 없다”며 ‘정무수석으로 11개월 일하는 동안 대통령과 독대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없다”고 답했다. 안민석 민주당 의원은 “대통령과 최씨가 친한 것도 몰랐다면 역대 가장 무능한 정무수석인 것”이라고 답했다. 조 장관은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되는 것보다 ‘무능’을 선택한 셈이다.

문고리 3인방 중 하나로 꼽히는 이재만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도 마찬가지다. 이 전 비서관은 지난달 21일 국회 운영위 국감에서 최씨와 박근혜 대통령의 관계를 묻는 질문에 “제가 잘 알고 있지 않다”며 “언론에 보도된 정도로 저도 알고 있다. 그 문제에 대해선 제가 더 이상 따로 말씀드릴 게 없다”고 답했다.

하지만 1998년부터 박 대통령을 보좌해 온 이 전 비서관이 최씨를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또한 청와대 내부문서를 외부 이메일에 보내거나 출력 혹은 복사하면 모두 관련 기록이 전산팀에 남는데, 이 기록이 모아지는 전산팀의 총 책임자가 이재만 전 비서관이었다. 대통령 연설문 및 내부 문서가 최씨에게 전달됐다면 이 전 비서관이 이를 모를 리 없다는 것이다.

박영선 민주당 의원은 2014년 7월7일 국회 운영위 회의에서 이 전 비서관에게 “이재만 총무비서관이 서면 자료를 잔뜩 싸들고 외출하는 것을 봤다는 사람이 있다”며 청와대 문서가 외부로 유출된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 전 비서관은 당시 이 의혹을 부인했지만, 청와대 내부문서가 최씨에게 전달됐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 전 비서관의 2년 전 증언도 위증 논란에 휩싸였다.

비선 실세의 존재를 강력하게 부인한 정부 관계자들도 있다. 이원종 청와대 전 비서실장은 지난달 21일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최씨가 대통령 연설문을 첨삭했다는 의혹에 대해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시스템으로 성립 자체가 안 되는 이야기다. 기사를 보고 실소를 금치 못했다”고 말했다. 위증논란이 일자 이 전 비서실장은 “(사실을) 알았다면 그런 얘기를 했겠나”라고 밝혔다.

▲ 10월26일자 MBN 뉴스 갈무리.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역시 2014년 7월7일 운영위원회 회의에서 “맹세코 비선라인은 없다”고 말했다. 정홍원 전 국무총리는 2014년 12월15일 국회 본회의에서 “지금 비선이니 실세니 하는 것에 대해서는 제가 알고 있는 바와는 전연 다르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최순실 게이트가 현실로 드러나면서 결과적으로 이들의 증언은 모두 거짓이 됐다.

이런 이유로 최순실 게이트 진상규명의 일환으로 국회가 위증의 당사자들부터 고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야당은 이미 이원종 전 비서실장 등에 대해 위증죄로 고발하자는 의견을 내놨지만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위증죄가 되려면 허위사실에 대한 인지가 있었는지 면밀한 사실관계가 확인돼야 한다”고 반대하는 입장이다.

교문위 소속 전재수 민주당 의원은 1일 YTN ‘최영일의 뉴스 정면승부’ 인터뷰에서 “대통령 비서실장, 정책조정수석뿐만 아니라 최순실씨와 관련된 국회에서의 여러 가지 합리적 문제 제기, 의심에 대해 (관계자) 전부 다 처음부터 일관되게 위증하고 거짓말을 했다”며 “산하기관장, 모금을 주도했다는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 문체부 김종 차관, 콘텐츠진흥원장 할 것 없이 사후에 국회에서 국정감사 및 증언에 관한 법률에 의해 위증죄로 고발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 11월1일자 뉴스타파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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