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에서나 나올 법한 2016년판 ‘최순실 박근혜 게이트’는 국민을 혼란과 비통에 빠지게 했다. 대통령부터 호스트바 접대부라는 사람까지 대국민사과를 하는 현실.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한 비선개입설이 하나씩 사실로 드러나자 충격에 빠진 대학가는 시국선언에 나서고 국민은 여기저기서 촛불을 들기 시작했다.

영구미제에 빠진 세월호 사건의 실체는 아직도 오리무중이고 선장과 일부 선원 외엔 아무 책임진 사람이 없다. 세월호라는 국가위기 상황에서 사라진 대통령의 7시간이 다시 재조명 받을 수 있을까. 누구도 납득하기 힘든 국정교과서 사건, 위안부 할머니들조차 반대했던 일본과의 굴욕적인 위안부 전격협상, 이화여대를 쑥대밭으로 만든 사건 등 무당춤이 아니고는 정상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사건과 사건의 연속이었다.

꼭두각시 역할에 충실했던 박근혜 대통령은 무성의하고 무책임한 사과 몇마디를 하고는 다시 어디론가 사라졌다. 장차관도 쉽게 만나지 못했던 그 먼 곳으로 다시 몸을 숨겼다. 무당춤을 지휘하던 최순실은 친절한 검찰청에서 조용히 몸을 쉬고 있다. 긴급체포, 구속 등은 아무 의미가 없다. 지금은 바깥보다 안이 더 편하다.

오물까지 뒤집어쓴 검찰이 '최순실 박근혜 게이트‘를 밝혀내리란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낫다. 박대통령 취임부터 불거지기 시작한 각종 인사비리, 검증없는 무자격인사의 전격등용과 국가망신.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미국에서 성추행 후 야반도주 사건 등은 악몽의 시작에 불과했다.

▲ 박근혜 대통령이 6월8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 참석해 참모진과 대화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김재원 정무수석, 박 대통령, 안종범 정책조정수석, 우병우 민정수석, 현대원 미래전략수석. ⓒ 연합뉴스
국정농단 의혹을 받고 있는 최순실과 통화내역까지 드러났지만 청와대 수석, 장, 차관들, 관련인사들은 “모른다”고 부인하고 있다. 하루가 지나면 또 다른 인물과 사건이 꼬리를 물고 터져나오고 있다. 국민의 슬픔과 실망은 깊어가지만 누구도 위로할 사람이 없다. 왜 이런 기막힌 현실이 벌어지고 있는가.

우리가 대통령을 제대로 검증하지 못한 벌을 받고 있다는 판단이다. 여기에는 친박 정치인, 국회의원들의 맹목적인 추종과 조중동을 대표하는 언론의 과장 홍보가 있었다. 국민의 눈을 가렸던 친박정치세력들이 지금은 당대표, 장관, 국회의원 등의 자리에서 견제는커녕 부패, 비리를 키웠다.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진리를 또 다시 목격하게 되었다.

대통령 후보시절부터 취임이후 전과정에서 철저한 검증을 해야했던 언론은 거꾸로 ‘형광등 100개의 아우라’ ‘햇볕이 쨍쨍’ ‘한복외교’ ‘외국어 달인’ 등으로 홍보에 바빴다. 한겨레 경향신문 등의 검증은 그 강도에 비해 영향력이 너무 약했다. 대통령이 국민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언론사와 특별기자회견을 하지 않아도 그냥 넘어갔다. 방송과 신문 등은 그렇게 해마다 창간일마다 대통령과의 특집을 준비하던 모습도 사라졌다. 국민은 대통령이 어디서 무얼하는지 알 수 없게 됐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대통령이 근본도 모르는 최순실과 이토록 국정을 함께 했다는 보도는 충격이다. 수많은 장차관들, 청와대 수석들이 최순실 심부름꾼 노릇을 하며 호스트바 접대부까지 설치고 다닌 것은 국민의 자존심을 뭉갠 처사다. 박 대통령은 스스로 자격없는 대통령, 무능한 대통령을 시인한 셈이다.

▲ 1979년 6월10일 한양대학교에서 촬영된 영상. 왼쪽이 최순실씨, 오른쪽은 박근혜 대통령. 이 당시 ‘새마음 운동’의 일환으로 ‘제 1회 새마음 제전’이라는 행사가 열렸는데, 박근혜 새마음 봉사단 총재가 깜짝 방문했다. 사진=뉴스타파
특검을 하든 중립내각을 구성하든 무얼하든 선결돼야 할 시급한 과제가 있다. 먼저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며 맹목을 추구하도록 과장하고 협박한 친박 국회의원들을 국민의 힘으로 요직에서 끌어 내려야 한다. 나아가 스스로 친박을 자처하며 정치적 입지를 다져온 정치인들을 정계에서 퇴출시켜야 한다. 수치를 느끼는 유권자들은 친박의원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김기춘을 비롯한 대통령 실장과 청와대 수석, 장차관들. 이들은 허수아비 대통령 앞에서 문제를 보고도 못본 체 알고도 모르는 체 한 국정농단의 공범들이다. 이들은 소위 ‘십상시’ 혹은 ‘문고리 3인방’ 등으로 언급되며 오래전부터 이슈가 되었고, 지금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이런 대형사고가 터질 때는 주변의 공범들의 적극적인 공조가 있어야 가능한 법이다.

국민은 최순실보다 그 최순실의 꼭두각시 역할을 충실히 한 공범의 우두머리 대통령의 실상에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공복이라고 불리는 장차관 수석들이 최순실의 심부름꾼, 거간꾼 역할을 하고 연설문을 전달하고 내용이 바뀌는데도 입을 다문 그 비검함과 그 무능함에 절망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현재의 검찰은 진실을 밝힐 의지가 없다는 사실이다. 늑장수사, 부실수사, 봐주기 수사를 이미 목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물러나야 제대로 수사가 진행될 수 있다. 그 이유는 청와대 민정수석이 검찰 수사를 보고 받고 사실상 지휘하고 있으며, 청와대 민정수석은 대통령에게 이를 보고하기 때문이다. 수사의 대상이 수사를 지휘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국민으로부터 신뢰는커녕 조롱받는 대통령은 더 이상 청와대에 머물러야 할 이유가 없다. 대통령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비정상의 정상화’지만 그런 판단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친박 국회의원들이 절대로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 박근혜 대통령이 10월25일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최순실 의혹’에 관해 대국민 사과를 한 뒤 브리핑실을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이 이상 더 나빠질 현실은 없다. 박 대통령이 청와대를 지키는 내내 분란과 데모, 소모전은 계속 되고 악화될 것이다. 박대통령이 이미 몇 년전 스스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난다”는 예행연습을 한만큼 그것을 실행하기를 기대한다.

대통령직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지금은 더 비루하고 처량해 보인다. 곤두박질 친 정국 지지율이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권위와 신뢰를 잃은 대통령은 공직기강을 다 잡을 수 없다. 스스로 불법, 탈법을 자행한 대통령은 검찰의 수사, 판결과 무관하게 자격을 상실한 셈이다. 그런 정도의 사과로 이런 기막힌 현실을 대충 넘어갈 수 있다고 판단했다면 오판도 큰 오판을 한 셈이다.

친박의원, 친박 정치인들이 국민에게 빚을 갚을 일이 하나 있다. 바로 대통령과 함께 대국민 사과를 하고 정치무대에서 사라져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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