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과 비선 실세 최순실(60)씨의 국정 농단 사태에 대한 들끓는 사회적 분노와 함께 이번 사태를 인식하는 KBS의 위기감도 고조되고 있다.

보도 책임자인 김인영 KBS 보도본부장이 지난 31일 ‘최순실 낙종’을 이유로 사퇴 의사를 밝히자 이번에는 실무자인 정지환 KBS 통합뉴스룸 국장(구 보도국장)이 사퇴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아울러 지난해 고대영 KBS 사장 선임에 비선이 개입된 것이 아닌지 의심하는 눈초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각종 인사를 포함해 국정 운영에 최씨와 그의 측근들이 개입했다는 증언이 사실로 확인되고 있는 상황에서 언론계에는 비선의 입김이 얼마나 미쳤는지 의심이 커지고 있다.

▲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본부장 성재호, 이하 KBS본부)는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S에서 ‘최순실 보도 참사와 인사제도 개악 규탄’ 결의대회를 열고 KBS 보도책임자 사퇴와 청문회 개최를 촉구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본부장 성재호, 이하 KBS본부)는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S에서 ‘최순실 보도 참사와 인사제도 개악 규탄’ 결의대회를 열고 KBS 보도책임자 사퇴와 ‘청와대의 언론장악’ 청문회 개최를 촉구했다. 

또 KBS본부는 노조 집행부를 비대위 체제로 전환하며, 고 사장에 대한 불신임 투표와 총파업 찬반 투표에 돌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순실 사태를 포함해 권력 감시를 도외시했던 KBS에 대한 국민적 비난 여론이 반영된 대응으로 풀이된다.

이날 결의대회에는 KBS 기자‧PD‧아나운서 등 조합원 120여 명이 참석해 KBS 구성원들의 분노를 짐작케 했다. 

김인영 보도본부장이 지난 31일 KBS 노사 공정방송위원회에서 “보도책임자로서 낙종에 일조한 것 아니냐는 데 할 말이 없다”며 사퇴 의사를 밝힌 만큼 실질적으로 KBS 보도국을 이끌고 있는 정지환 국장에 대한 책임론도 불거지고 있다. 

KBS 기자들을 대표하는 이영섭 KBS 기자협회장은 “한겨레 보도로 최순실이 등장했던 9월20일부터 한 달 동안 어떤 부장도, 국장도, 주간도 최순실의 최자도 꺼내지 않았다”며 “취재 건의를 했지만 무시만 당했다. 대통령에 대한 하야 요구가 봇물처럼 터지는 지금 매년 수신료 6000억 원을 받는 우리가 제공한 뉴스 서비스는 무엇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지환 국장은 지난 9월20일 이영섭 협회장의 취재 건의를 “최순실이 대통령 측근이야? 측근이라고 장담할 수 있느냐”며 거부한 인사로 꼽힌다. 

최씨의 국정농단 의혹을 외면하던 KBS가 기존 보도 방향을 튼 시점은 지난달 20일 오전 편집회의에서였다.

이날 편집회의에서 KBS 간부들이 “지금은 누가 최순실을 인터뷰하느냐가 중요하다”, “적극적으로 (최순실) 취재를 해보자” 등의 발언과 지시를 쏟아낸 뒤, 몇 시간 후 박 대통령은 최씨의 미르·K스포츠재단 사유화에 대해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면 엄정히 처벌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때문에 당시 KBS 기자들은 사전에 청와대 지침이 떨어진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거두지 못했다.

김환균 언론노조 위원장은 “사장 선임 과정에서 청와대 낙점설이 불거졌던 고 사장의 경우 ‘최순실 게이트’에 연관되어 있는 인사가 아닐까 두렵다”고 말했다. KBS 사장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구조에서 방송사 인사에 비선이 개입돼 있을 수 있다는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사장 선임 과정에서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이 이인호 KBS 이사장 등에게 전화를 걸어 고대영 후보자를 청와대 지명 후보로 검토해달라고 말했다는 폭로를 다시 거론하며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실제 이 이사장은 감사원의 국민청구사항 조사 과정에서 “KBS 사장 임명 제청과 관련해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과 전임 KBS 이사장인 손병두의 조언도 들었다”고 밝히는 등 청와대 낙점설에 다시 불을 지폈다.

윤창현 언론노조 SBS본부장도 “실세 무당이 좌지우지하는 대통령이 공영방송 사장을 임명하는 구조”라고 현재의 KBS 지배구조를 비판했다. 

그는 “KBS 구성원들이 나서야 또 다른 지상파 노동자들이 절망을 딛고 싸울 수 있다”며 조합원들을 독려한 뒤 “KBS는 계속 대통령 비서 노릇을 할 것인가. 더 이상 쪽팔리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성재호 언론노조 KBS본부장(왼쪽)과 이영섭 KBS 기자협회장이 1일 오전에 열린 언론노조 KBS본부의 보도 참사 규탄 결의대회에 참석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이날 결의대회에서는 노동조합에 발 빠른 대응과 각성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주목을 받았다.

류지열 KBS PD협회장은 “우리 KBS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집단이다. KBS만 보면 태평성대나 다름없다”라고 비판한 뒤 “이대로라면 국민들의 들끓는 분노에 KBS는 갈가리 찢길 것이다. 간부들은 추적60분 등 KBS 시사 프로그램을 총동원해 최순실 게이트를 특집 방송으로 내보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류 협회장은 “노조 집행부도 유불리를 계산할 때가 아니”라며 “KBS의 존립이 어려운 상태인데, 우리가 이번 겨울을 거리에서 춥게 보내더라도 지은 죗값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제작거부나 파업 등도 불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순하고 형식적인 집회를 통한 항의 차원을 넘어 시청자의 분노를 담은 노동조합의 적극적 행동을 촉구한 것이다.

성재호 언론노조 KBS본부장은 “김 본부장은 사퇴하겠다는 약속을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 고 사장은 김 본부장과 정 국장을 사퇴시키지 못하면 스스로 보도 참사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며 “이번 사태는 국민에게 사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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