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선실세 국정농단 사태로 위기에 몰린 새누리당이 책임 총리로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를 언급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종인 전 대표는 31일까지 두 차례 가량 유력한 책임 총리 후보자로 거론됐다. 먼저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지난 28일 박근혜 대통령을 독대한 자리에서 김종인 전 대표를 책임 총리로 추천했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박 대통령에게 “야당이 동의할 수 있고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분”이라며 김종인 전 대표와 함께 손학규 전 민주당 고문을 추천했다.

▲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사진=포커스뉴스


또 한 번은 29일 새누리당 원로가 박근혜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였다. 김용갑 전 의원 등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거국 중립내각 구성을 전제로 김종인 전 대표를 차기 총리 적임자로 꼽은 것으로 알려졌다. 총리에게 국내 정치를 맡기고 대통령이 외교·안보에 집중하는 방안이다.

김종인 전 대표는 지난 2012년 초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을 맡은 박근혜 대통령이 비대위원으로 임명하면서 인연을 쌓았다. 이후 박근혜 대통령 후보 캠프에서 김종인 전 대표는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을 맡았다.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 멘토’로 불리던 시절이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 후 김종인 전 대표와 사이는 소원해졌고 김종인 전 대표도 박근혜 대통령을 직접 겨냥한 비판을 내놨다. 지난 4월 총선을 앞두고는 더불어민주당으로 자리를 옮겨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으며 새누리당에서 제1당을 탈환하기도 했다.

지난 대선 후 박근혜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엇박자를 내고 있지만 새누리당이 러브콜을 보내는 이유는 여러 가지 효과를 고려한 포석이라는 분석이다.

일단 현재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태 이슈를 희석시킬 수 있는 꽤 좋은 아이템이다. 새누리당이 야당의 거국 중립내각 주장을 받아들였다는 파격에 야당 대표를 지낸 인물에게 인사권을 포함한 내치 총괄 권한을 준다는 충격파를 던질 수 있다.

인물 하마평이 거론되면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쏠리는 시선을 일부 흡수하는 효과를 누릴 수도 있다. 새누리당 지지자들에게는 안정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효과도 고려해 볼만 하다. 조배숙 국민의당 의원은 이날 SBS라디오 ‘박진호의 시사전망대’에 출연해 “핵심적인 것은 우리 헌정 사상 투표를 통해 뽑은 대통령의 권력이 사적인 비선에 의해 농단된 것에 대한 진상을 명확하게 규명하고 책임을 분명히 하는 것”이라며 “자칫 누가 하마평에 오르면 논점이 흐려질 수 있어 경계하는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청와대에서 최순실 비선 실세 의혹과 관련해 사과하는 기자회견을 시민들이 시청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새누리당 내에서는 거국 중립 내각에 적합한 총리로 “역동성과 결단력, 참신성, 국민의 수용력” 등이 꼽힌다. 김종인 전 대표는 2012년 새누리당의 대선과 2016년 더불어민주당 총선 등을 치러내면서 ‘위기’ 국면을 돌파하는 능력이 검증됐다는 평가다.

또한 새누리당과 정치적 입장이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도 김종인 전 대표는 새누리당이 무난하게 수용할 수 있는 인물이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지난 8월 야당이 반대 기류가 강했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 도입 국면 당시 “김종인 대표가 ‘국익 관점에서 사드를 바라봐야 한다’는 말씀을 했다. 정말 큰 울림이 있고 공감 주는 말씀”이라고 김종인 전 대표를 극찬했다.

김종인 전 대표는 당시 비대위 대표로 소속 의원들의 강한 반대 입장에도 불구하고 당론 결정에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심지어 당내 사드 배치 반대 의원들의 중국 방문을 반대하며 “자신들의 입장을 전달하는 게 무슨 의미인가. 가서 얻어올 게 없다”고 지적했다.

김종인 전 대표는 대표적인 개헌론자로 만약 총리로 임명되면 개헌을 들고 나올 가능성이 크다. 거국 중립내각 총리로 임명되더라도 남은 임기는 길어야 1년이다. 하지만 대통령에게 전권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힘 빠진 박근혜 정부 임기 말 총리가 힘 있게 내각을 이끌기는 어렵다.

본질적으로 야당과 충돌이 있던 것은 차치하더라도 임기 말 야당 출신 총리가 공무원 사회를 움직이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결국 차기 총리는 대선을 관리하면서 개헌이라는 큰 그림을 던지고 개헌 논의를 이끄는 역할을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새누리당 내에서 김종인 전 대표를 박근혜 대통령에게 추진한 정진석 원내대표는 비선실세 국정농단 의혹이 제기된 JTBC의 보도와 박근혜 대통령 사과 등으로 어수선한 지난 27일에도 “이번 사건이 개헌의 기폭제가 돼야 한다”며 개헌론을 띄우기도 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거국 중립내각을 하더라도 이념적으로 가깝고 정치적 인연도 있는 사람을 원하지 않겠느냐”며 “박근혜 대통령의 구체적인 개헌 방향이 내각제가 될 가능성이 큰데 김종인 전 대표의 개헌 주장과도 맞아 떨어진다”고 말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김종인 전 대표의 경우 내각제 개헌을 통한 총리나 4년 중임 대통령제 개헌을 통해 2년반짜리 대통령이라도 좋다는 입장인 것으로 이미 알려져 있다”며 “김종인 전 대표 입장에서도 크게 나쁜 수는 아니라고 볼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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