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TV조선·한겨레 등 주요 언론이 비선 실세 최순실(60)씨의 국정 농단 사태를 실시간 특종으로 주도하고 있는 가운데, 지상파 언론사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사측에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지난 25일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본부장 윤창현)는 사측이 최씨 관련 특별취재팀 구성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외면했다고 비판하며 “SBS 위상에 먹칠한 책임자들은 전 구성원 앞에 머리 숙여 사과하라”고 요구한 바 있다.

26일에는 KBS 기자·PD 다수가 소속돼 있는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본부장 성재호, 이하 KBS본부)가 성명을 통해 김인영 KBS 보도본부장과 정지환 보도국장 등 보도 책임자 사퇴를 요구했다.

KBS본부는 “언론사로서, 공영방송으로서, 그리고 한때 가장 신뢰받고 영향력이 있는 뉴스를 만들었다는 KBS의 구성원으로서 이 희대의 사건 앞에서 KBS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쓸모없는 존재로 떨어졌음을 직접 우리의 두 눈과 귀로 확인해야 하는 현실이 우리를 더욱 비참하게 만든다”고 개탄했다.

KBS본부는 이어 “종편은 우리가 그토록 반대하고 무시했던 곳이지만 우리 수백 명의 KBS 기자들이 ‘오늘은 종편 뉴스에 무엇이 나올까?’ 긴장하며 기다리고, 베끼고, 쫓아하기를 서슴지 않는다”며 “부끄러움도 모르고, 자존심도 버렸고, 자랑스러웠던 과거의 기억도 잊었다”고 밝혔다.

▲ TV조선 기자 앞에 나타난 최순실씨. 25일자 TV조선 뉴스쇼판 갈무리.
이들은 ‘최순실 게이트’를 둘러싼 KBS 보도본부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KBS본부에 따르면, 한겨레 보도를 통해 최순실 이름이 처음 거론됐던 지난달 20일 보도 편집회의에서 이영섭 KBS 기자협회장은 최씨 보도와 관련해 의논조차 없는 것에 항의했다.

KBS 편집회의는 매일 오전 9시 보도국장을 중심으로 취재·스포츠·영상·편집 등 보도국 부장단이 모여 그날의 메인뉴스 ‘뉴스9’ 아이템을 선별한다.

이에 정지환 보도국장 등 보도국 책임자들이 “최순실이 대통령 측근이야? 측근이 맞나? 뭐가 맞다는 거지? 알려져 있다는데 어떻게 측근이라고 장담할 수 있느냐”라고 말했다는 것.

지난 5일 개최된 노사 공정방송위원회에서 노조측은 ‘최순실’ 비리 의혹과 관련한 전담TF를 구성하고 심층 취재에 나설 것을 요구했으나 김인영 보도본부장은 TF 구성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뉴스가 많은데 왜 꼭 야당이 국정감사를 통해 제기하는 의혹을 국민적 의혹이라고 단정하느냐”는 취지의 반응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KBS 보도본부 간부들이 최씨에 대한 박 대통령의 해명이 있기 몇 시간 전인 지난 20일 오전, 편집회의를 통해 “최순실 인터뷰를 특종으로 해보면 좋겠다” 등 취재 지시를 내려 논란이 일기도 했다. KBS ‘뉴스9’에서 지난달 20일부터 지난 19일까지 한 달여 동안 ‘최순실’ 이름 석 자가 언급된 보도는 9건에 불과했지만, 20일부터 관련 의혹을 정리·보도하고 있다.

JTBC와 TV조선이 지난 25일 오후 최씨가 청와대 인사에 개입하고 국가안보 기밀 문건 정보가 담긴 자료를 사전에 받았다는 의혹 등을 터뜨리자 KBS는 26일 오전에야 ‘최순실’ 사건 전담 TF를 구성했다.

이에 KBS본부는 △보도본부장과 보도국장의 사퇴 △최순실 국정농단 특집 다큐 및 토론프로그램 편성 △취재·제작 실무자 측 의견 반영 의무화 제도 △ 대책 마련을 위한 특별기구(외부 전문가로 구성) 등을 요구했다.

KBS본부는 “KBS는 저잣거리의 안주로 전락했고, KBS 기자들은 손가락만 빨며 종편 기자들에게 귀동냥해야 하는 참담한 현실임에도 그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며 “작금의 상황은 대통령의 ‘탄핵’과 ‘하야’ 얘기까지 나오는 ‘비상사태’”라고 강조했다.

KBS 보도본부는 이번 KBS본부 성명에 대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는 상태다. 미디어오늘은 정지환 보도국장의 의견을 듣고자 연락을 시도했으나 연결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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