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대주러 왔냐” 최근 한 종합일간지 여성 기자가 경찰에게 들은 발언이다. 해당 회사는 발칵 뒤집혔다. 이 사건을 전해들은 기자들은 “여기자 성추행이 한 두 번이냐”며 “수습 때는 성희롱, 성추행이 특히 심각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성폭력은 권력관계에서 발생한다. 부서를 막론하고 기자들이 주로 상대하는 대상은 4050대 남성이다. 이들이 오피니언 리더들이기 때문이다. 2030대 여성 기자들의 수는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기자에게 잘 보여야 하는 ‘을’인 동시에 정보를 가진 ‘갑’이다.

미디어오늘이 성폭력 피해 기자 네 명을 만나 각자의 경험과 대처, 그리고 향후 언론계에 필요한 방안 등을 들었다. 2차 가해를 피하기 위해 기자들의 소속과 나이는 공개하지 않고 이름은 가명으로 하되 연차만 공개한다. 좌담은 20일 오후 2시간30분가량 진행됐다. 기사는 상·하편으로 나눠 게재한다. <편집자주>

사회 : 각자의 피해 경험부터 이야기해달라

최연희 (5년차 기자)= 여러 명이서 술을 마시던 중에 집에 가려고 나왔더니 상대가 따라나왔다. 집에 가려고 같이 택시를 탔고 둘 다 취한 상황이었다. 차 한 쪽에 기대서 눈을 감고 있었는데 치마 속으로 손이 들어오더라고. 치마로 바로 손이 들어왔을까 하는 의문은 있다. 그 이전에 이 사람이 내 손을 만졌는지 머리를 쓰다듬었는지 모르는 거지.

현장에서 바로 저지했다. “지금 뭐하는거냐.” 가해자는 그 자리에서 바로 “내가 미쳤던 것 같다”고 말했다. 택시에서 곧장 내려서 집에 가겠다고 했다. 사과를 하고 싶다며 맥주를 한 잔 더 하자는 거다. 내가 아무리 기자고 상대가 취재원이라고 해도 상대는 이미 나를 가해한 남성이었기 때문에 둘이 있는 상황이 무서웠다. 

▲ 일러스트=빛련 작가
이진하 (4년차 기자)= 이전 회사에 있을 때 일이다. 이건 회사 선배들이 잘못한 건데. 남자 선배 둘과 부장검사, 나 이렇게 있었다. 검사들 봉고차 타잖아. 그 검사가 옆 자리를 툭툭치며 내게 “이 기자는 여기 앉아” 반말로 말했다. 그러더니 웃으면서 “요즘 기자들에게 이러면 성희롱이지~” 웃으면서 말하더라. 문제는 회사 선배가 “진하야, 검사님 옆에 앉아라”라고 한 것이다.

결국 옆에 앉아서 룸이 있는 식당으로 갔는데 검사가 또 자기 옆에 앉으라고 하는 거다. 다행히 젊은 남자선배가 먼저 가서 앉았다. 식사 자리에서도 계속 술을 따르라고 했다. 술잔 비었으면 “젊은 기자님이 계신데” “여기자님이 따라주셔야” 그런 식이었다. 

김희태 (7년차 기자)= 그럴 때 선배들이 더 얄밉다. 회사 선배와 공보담당 공무원을 만나는 자리였다. 그 공보 담당이 “이런 기자님 있는지 몰랐네. 우리 자주 봐요”라며 내 손을 막 쓰다듬었다. 선배가 하는 말이 “그래 희태야, 자주 찾아보고 인사드려”였다. 기분 나쁘지만 더러워서 넘어갔다. 

한 번은 처음 본 취재원이었는데 다 같이 술을 마시다가 집에 데려다주겠다고 해서 방향이 같은 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내릴 때 같이 내리는 거다. 나는 이제 혼자 가면 된다고 가시라고 했지. 그런데 골목이 위험하다며 바래다주겠다는 거다. 골목으로 따라오는 그 사람이 더 위험해. 

그러면서 하는 말이 “김 기자님, 뽀뽀 한번만 해주면 안되겠냐”였다. 무섭다는 느낌보다 이 OO새끼 뭐야. 멘트 자체가 너무 더러웠어. 게다가 방금 술자리에서 와이프 이야기, 아이 이야기 하던 사람이… 기분이 더러워서 뛰어서 집에 갔다. 

최연희 =아 정말 너무 싫어. 너무 싫어. 어떻게 그렇게 패턴이 같나. 

▲ 일러스트=빛련 작가
하선교 (8년차 기자)=이전 직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저랑 나이 차이가 꽤 났고 결혼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밤 12시까지 일해야 한다고 했고 일이 일찍 끝나면 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다. 주말에도 일을 핑계로 불러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한테 잘해주는구나 생각했지. 

내가 그때 비정규직이고 인턴이니까 고시원에 살았다. 매일 자기 차로 고시원에 데려다줬다.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하는 횟수가 늘어나고 애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퇴근을 거의 자정 즈음에 했으니까 하루 종일 그 사람이랑 붙어있어야 하는 거다.

나중에 내가 정규직이 된 뒤에 고백을 하더라. 거절한 이후로는 기사로 트집을 잡았다. 토씨 하나로 뭐라고 하고. 너 기사 그딴 식으로 쓸래? 너 바보 아니냐? 막말하고. 그러면서도 고백이 이어졌고 거절하니 전화로 쌍욕을 했다. 나중에 증거로 사용했다. 

이진하=성희롱은 다반사고 성추행을 당한 적이 있다. 상대는 40대 남성 취재원이었고 술을 마시지도 않았다. 당시 여름이어서 내 옷이 좀 가벼웠는데 등을 만지면서 예쁘다고 하더라. 뽀뽀를 했고 갑자기 혀가 들어왔다. 너무 순간적이었다. 내가 바로 빼고 왜 이러시냐고 하니까 예뻐서 그랬다고. 

그 상황에서 바로 저지를 못했다. 당황해서 집에 가겠다고 한 게 전부다. 게다가 중요한 취재여서 도저히 취재를 빠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얼마 뒤에 또 취재 현장에서 만나게 됐지. 날 보더니 전철역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했고 거부했는데도 데려다주더니 또 볼에다 뽀뽀를 했다. 

이후에도 밤에 전화나 카카오톡이 왔다. 안 받았어야 했는데 그 사람이 중요한 정보를 많이 줬다. 자기가 전화하면 내가 받을 걸 알았던 거야. 정보를 주는 척 하면서 보고싶다고 하고 만나자고 하고. 애인이 있는 걸 알면서도 그랬다. 전화를 안 받으니까 페이스북으로 메시지 오고. 

▲ 리포트 준비 중인 방송기자.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합니다. 사진=이치열 기자
최연희=기자 생활을 하면 이런 일들이 누적되니까 어디서부터 문제제기를 해야하나 싶은 일들이 많다. 노래방에서 허리 잡는 건 일도 아니고 한참 전에는 아무개 국회의원과 식사자리에서 계속 의원 손이 내 발목에 닿는 거다. 웃으면서 의원님 왜 자꾸 발목을 잡으세요? 그러니까 바닥을 짚으려 했는데 내 발이 여기 있는 거래.

또 한 번은 취재원들 여럿과 술을 마시는데 눈앞에서 비아그라가 등장한 적도 있었다. 술자리에 있던 취재원들 중 30대 중반의 한 취재원과 특히 친분이 있었는데 그걸 아는 다른 사람들이 ‘둘이 오늘 어디서 자냐’는 등 설레발을 쳤다. 안 그래도 기분이 점점 나빠지고 있었는데 심지어 50대 초중반쯤 되는 취재원이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비닐 봉지를 꺼내더니 그 안에서 알약(비아그라) 하나를 꺼내더라. 그걸 뭔가로 내리쳐서 쪼개더니 자기 술잔과 30대 중반 그 취재원 술잔에 톡톡 떨어뜨렸다. 그때 느낀 모욕은 말로 설명이 안 된다.   

사회 : 사건이 벌어진 당시나 직후 상황은 어땠나? 시간이 지난 다음에도 일종의 트라우마 같은 게 남았나. 

이진하=아까도 말했지만 정말 중요한 취재였기 때문에 빠질 수가 없었다. 현장에 가면 그 사람을 보게 되니까 취재가 너무 힘든 거야. 그래도 계속 취재를 했다. 2~3주가 지났고 나도 모르게 우울증이 왔다. 기사를 쓰는데 눈물이 펑펑났다. 내가 그렇게 만만해보이나. 내가 빌미를 줬나 그런 생각이 드는 거지.

주변 사람들의 지지가 큰 힘이 되는데 나는 그런 상황이 못 됐다. 애인에게 말했는데 내 잘못이 있다는 식으로 말하더라. 내가 취재원에게 너무 친절하다는 거지. 가까운 사람이 그렇게 말하니까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사건 당시에 거부 의사를 확실히 표현하지 못 한 것도 자책하게 되고. 

최연희=화나는 말이 “니가 워낙 잘 웃지 않냐. 격의 없이 사람들에게 잘하고 사근사근하지 않나.” 사람들이 “예쁜 사람한테는 그런 일이 생긴다”는 말도 적지 않게 한다. 그럼 내가 감사해야해? 취재방식에 문제가 있나? 생각하게 된다. 술자리 취재가 잦은데 아예 위축이 됐다. 특히 중년 남성 있는 술자리는 성격상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집에 가면서는 내가 했던 말을 다시 꼼꼼히 되짚으며 자기 검열을 하게 된다. 

▲ 일러스트=빛련 작가
김희태=내 마음대로 웃지도 못하나? 너무 편하게 했나? 막말로 내가 흘렸나? 이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술 마시고 노래방 가면 살짝 허리에 손 짚고 어깨동무 하는 그런 것들. 문제는 상대는 내가 나중에 뭘 물어볼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거다. 

하선교=좋아한다는 명목으로 2년 반 동안 괴롭혔던 사람이 당시에 30대 중반이었다. 나는 20대 중반이었고. 그 사람이 항상 검정색 구두를 신고 스윽 들어와서 나한테 “잠깐 나와봐”했던 기억이 여전하다. 지금도 검정색 남자 구두나 그 나이대 남자들, 중년 남성들만 보면 소름이 끼친다. 

사실상 그 사람이 큰 계기가 되어서 퇴사를 했던 건데 이후에도 전화가 와서 “니가 뭔데 날 그렇게 망신시키냐. 니가 나 인격모독한 것”이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지금도 자신이 망신당한 것만 기분나빠하고 자신이 상처준 건 전혀 반성할 기미가 없다. 

최연희=몇 년이 지나도 길을 걷다가 생각이 나고 아침에 머리 감다가 갑자기 생각이 난다. 예전에 데이트 폭력 관련해서 SNS를 통한 뒤늦은 폭로가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여전히 그런 방식이 올바르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이해는 된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거야. 저 사람 나쁜 사람이라고. 절대 술 마시지 말라고.

나는 어떻게든 사건을 마무리 지었는데, 가해자 만나서 사과문을 요구하기 하루 전날 퇴근길에 일부러 두 정거장을 먼저 내렸다. 너무 무서워서 펑펑 울면서 집까지 걸어갔다. 그 사람이 내가 꼬셨다고 말하면 어떻게 하지? 많은 가해자들이 그렇게 말하잖아. 쌍방합의하에 행해진 일이라고. 아직도 가해자와 비슷한 이름만 들어도 소름이 돋는다. 

▲ 3월29일 세월호 2차 청문회를 취재하는 기자들.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합니다. 사진=이치열 기자
사회자 : 기자라고 하면 소위 ‘갑’이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한국사회의 성폭력 문제가 기자라고 다르지 않다는 걸 느낀다. 혹시 직군의 특이점이 있을까. 

최연희=진보·보수는 물론이고 부서를 막론하고 지금 한국사회 오피니언 리더들이 386이다. 여성 기자가 가장 많이 상대하는 사람이 50대 남성이라는 의미다. 근데 민주화 운동했던 386들 남성들에게 한 가지 공통점을 매우 자주 발견한다. 억압적인 성규범으로부터의 해방, 자유라는 가치와 일방적인 성적 대상화를 구분을 못해. 마구 뒤섞어서 행동한다. 그러다 기분이 나쁘다는 티를 내면 ‘거절하지 그랬니’ ‘너는 한참 더 젊은 애가 왜 쿨하질 못하니’ 이런 식이다. 얼마나 멍청해 보이는지. 

김희태=기자는 ‘듣는 직업’이다. 게다가 잘 들어야 한다. 상대의 상황에 맞춰서 웃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한다. 그런데 상대는 여기서 착각을 한다. “우리는 뭔가 맞아. 얘는 지금 나랑 통해서 웃고 있는 거야.” 이런 노동환경이 성폭력이 쉽게 일어나도록 하는 것도 같다.  

이진하=기자의 경우 상대의 정보가 권력이기 때문에 꼭 회사 상사나 권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어도 가해자가 될 수 있다. 내 경우 가해자가 ‘사회적 약자’였다. 가족을 잃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상당히 감정이 이입돼 취재를 했다. 사건 이후 인간에 대한 배신감, 가족을 잃고도 지금 이런 감정이 드나? 그런 씁쓸함도 들었다. 

최연희=옆에서 보면 남자 기자들도 엄청나게 감정노동을 한다. 여자기자들만큼 살갑다. 하지만 남자 기자들은 ‘기자’인데 여자 기자들은 ‘내 말 들어주는 젊은 여성’이 된다. 그럴 때 속상하지. 내가 여성성을 파는 여부를 떠나서 이미 상대는 나를 ‘여성’으로 소비하고 있는 거다.  

하선교=언론계 취재관행이나 분위기도 사고가 일어나는데 한 몫 한다. 친하게 지내야 정보를 주는 방식이나, 언론사 내부의 도제식 관계는 어떤 부탁도 거절하지 못하게 한다. 성폭력을 취재하는 기자들이 정작 내부 사건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거나 2차 가해를 한다.  

이진하=성추행 이후로 밤 취재, 술 취재는 포기했다. 술 취재 안 하면 취재력이 딸릴 수밖에 없지만 단독이고 뭐고 그렇게까지 취재하고 싶지 않은 거지. 이럴 땐 기자로서의 역량을 포기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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