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력이나 강도 면에서는 어떤 고체보다는 물이 훨씬 약할 수밖에 없거든요. 돌로 맞느냐 물로 맞느냐 이게 다를 수가 있지 않습니까?”

2008년 경찰청이 작성한 ‘집회시위 안전관리를 위한 물포 안전성 실험결과’ 보고서에 대한 경찰청 관계자의 말입니다. 이 관계자는 22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이 “상식적으로 3000rpm(약 15bar)으로 쏘면 3mm 유리가 안 깨지냐”고 묻자 이렇게 답하죠. 

경찰청 보고서대로라면 10m 거리에서 5mm 유리를 향해 3000rpm 압력으로 물대포를 쏘더라도 유리가 깨지지 않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이 같은 조건에서 실험한 결과 5mm 두께의 유리는 5bar(약 1000rpm)에서도 산산조각이 났다. 강화유리 역시 7bar에서 깨지고 말았습니다. 고인이 된 백남기 농민이 맞은 물대포는 압력은 14bar(경찰 발표)였습니다. 

경찰이 백씨 사건에 대한 민사 재판에 물대포가 안전하다는 근거 자료로 제출한 보고서 역시 날조에 가까울 뿐 아니라 ‘물이어서 약하다’는 경찰청 관계자의 주장은 지금까지 경찰이 물대포의 위해성을 얼마나 모르고 사람에게 사용해 왔는지 여실히 보여줍니다. 

22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살수차 9호의 미스터리’ 편 방송 화면.
경찰이 사용한 것과 같은 방수포를 조금이라도 사용해 본 사람이라면 해당 압력의 직사 살수가 얼마나 파괴력이 강한 것인지 잘 압니다. 물이 강도 면에서 약하다는 경찰 관계자에게 가까운 셀프 세차장에 가서 고압 세척기에 살짝이라도 손을 대 볼 것을 권합니다. 멍이 들거나 살갗이 찢어질 것입니다. 물은 머물러 있을 때만 액체이지 고압으로 쏠 경우 어떤 고체보다도 파괴력이 강할 수 있습니다.

이를 더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화재 진압을 하는 소방대원입니다. 소방대원이 화재 진압 시 사용하는 물의 압력은 보통 5bar~8bar 정도입니다. 웬만한 주택 화재의 경우에도 이 정도 압력이면 건물 진입 전 유리창과 천정을 부숴 낙하물을 미리 제거할 수 있습니다.  

중앙소방학교 ‘화재진압론’ 교육자료에도 직사 주수(약 5bar 기준)에 대해 “파괴력이 강해 창 유리, 지붕 기와 등의 파괴, 제거 및 낙하 위험이 있는 물건 제거에도 유효하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 실험에서도 보았듯이 14bar 정도의 압력은 반동력이 매우 강해 사람이 지탱할 수 없고 경찰이 사용한 방수포와 같은 장비를 사용해야 합니다. 소방차에서 방수포는 주로 고층 건물에 불이 나거나 산불이나 사찰 등 화재 장소와 접근이 곤란할 때 쓰입니다. 파괴력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건물이 부서져도 상관없을 때 불가피하게 쓰인다는 게 소방대원들의 말입니다. 

파괴형 직사 주수를 위한 소방용 직수 관창(노즐)이 바로 백남기씨에게 물대포를 쏠 때 경찰 살수차에 달린 그것입니다. 20년 이상 경력의 한 소방대원은 “경찰 살수차에서 방수되는 모양은 방수포 (봉상)관창처럼 물줄기가 형성되는 것 같고 압력이 더 높으면 물 모양도 더 험해진다”고 설명했습니다. 화재 진압 경험이 있는 많은 소방관들은 “직사 살수는 사람에게 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물대포에 직접 머리를 맞아 충격을 받을 수도, 넘어지면서 크게 다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22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살수차 9호의 미스터리’ 편 방송 화면.
사실 경찰의 물대포 사용으로 인명 피해를 키운 것은 이번만이 아닙니다. 2008년 경찰청이 물대포 안전성 보고서를 작성한 것도 당시 광우병 집회 때 살수차의 위험성 문제가 제기됐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4월 세월호 1주기 범국민추모대회에서는 취재기자도 물대포에 맞아 동공 근육이 파열되기도 했습니다.

김용욱(43) 참세상 기자는 “한 달 동안 후유증은 계속됐으며 눈에 빛의 잔상이 남아 정상 생활을 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며 “당시에도 직격으로 얼굴에 물대포를 쐈고 피할 틈도 없었다. 옆에 있던 체구가 작은 지인은 물대포를 맞고 굴렀을 정도였다”고 술회했습니다.

2009년 용사 참사 때도 경찰 살수차가 등장해 되레 화재를 키웠습니다. 이때도 경찰 살수차는 화염병으로 인한 화재 진압용보다는 농성자를 진압하는 데 쓰였죠. 당시 경찰 지휘본부는 “남일당 빌딩 옥상 농상자들을 향해서 살수하겠다”며 “작전 전에 충분히 기선을 제압해야 하니까 전 물포를 다 쏘라”고 지시합니다.

여러 경찰 살수차의 직사 살수도 옥상 망루를 계속 향했습니다. 망루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휘청였고 망루 안에는 시너 등 발화성 물질이 있었지만 경찰은 개의치 않고 물포를 쏘아댔죠. 머지않아 망루 안에 불이 일었습니다. 일부 농성자들과 경찰이 있던 건물이 무너지든 말든 물포를 쏟았지만 불은 쉽사리 진화되지 않았습니다. 시너는 화학물질이기 때문에 물로 화재가 더 번져버린 것입니다.  

당시 경찰 무전 기록에서도 지휘본부가 “물포 빨리 쏴!”라고 하자 현장 경찰관은 “기름이기 때문에 물로는 소화가 안 된다. 소방이 지원해야 한다. 이건 화학성이기 때문에 물로 소화가 안 된다”는 보고 내용이 나옵니다. 시너 등 유류 화재는 특수 폼 용액으로 진화해야 한다는 상식조차 경찰 지휘본부는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용산 화재 참사는 철거민 5명과 경찰 특공대원 1명이 숨진 불행한 사고였습니다.

이번 백남기씨 사고에서도 보았듯 그동안 경찰의 물대포는 전혀 안전하게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물대포 거리는 눈짐작으로, 수압은 발로 조절했습니다. 그리고 14bar의 강력한 수압이 불과 13.8m 거리에 있던 백씨의 머리를 조준했습니다. 살인 행위였습니다. 국가의 공권력으로 국민이 사망했는데 책임자 누구도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살인 방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 ‘살수차 9호의 미스터리’ 편을 연출한 안윤태 SBS PD는 물대포 실험 후 “현장에서 이걸 본 사람들이 욕을 했다. 너무 놀라서. 그리고 다들 ‘이걸 사람한테 쐈단 말이야?’ 이런 반응이 나왔다. 저 정도 수압으로 사람에게 쏘면 절대 안 된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경찰 수뇌부와 새누리당 일부 의원들도 부디 이번 일로 느끼는 바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다시는 집회 현장에서 살인적인 물대포를 볼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고 백남기 농민이 가족의 품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도록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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