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조선일보 노동조합이 발행한 노보에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2항과 제21조1항이 실렸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언론권력의 상징인 조선일보 기자들이 박근혜정부 언론탄압과 국민주권유린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장면이다.

조선·중앙·동아일보 기자들은 요즘 박근혜정부에 대한 불만을 지면에 꾹꾹 눌러 담고 있다. 레임덕에 따른 조건반사일수도, 새로운 권력창출을 위한 생존본능일수도 있다. 조중동이 처한 상황들을 놓고 보면 최근의 반발 배경은 복합적일 수 있다. 어쩌면 요즘 조중동 기자들은 노무현정부 시절을 그리워할지도 모르겠다. 그 이유를 다섯 가지로 추려봤다.

▲ 박근혜 대통령. ⓒ연합뉴스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는 무차별 소송

박근혜정부는 맘에 안 들면 ‘고소’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은 지난 7월 ‘우 수석 처가 땅 매매 의혹’을 보도한 조선일보 기자들을 고소했다. 검찰은 조선일보 기자의 스마트폰도 압수했다. 청와대 익명의 관계자는 연합뉴스를 통해 조선일보를 “부패기득권세력”으로 규정했다. 청와대는 2014년12월 ‘박 대통령 비선실세 의혹을 받는 정윤회씨 동향 문건이 김기춘 비서실장 지시로 만들어졌다’고 보도한 동아일보 기자도 고소했다.

보수정부와 보수신문간의 소송전은 낯선 장면이다. 박근혜정부는 2013년 국민일보, 2014년 시사저널·세계일보를 상대로 정정보도와 함께 수 천 만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해 검찰은 극우성향의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가토 다쓰야를 대통령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하기도 했다. 유례없는 외신기자 기소는 진보와 보수, 국적을 떠나 대통령 심기를 거스르는 보도에는 가차 없는 ‘응징’이 따른다는 일종의 경고 메시지였다.

노무현정부도 조중동 등 보수신문을 상대로 끝없는 소송을 제기했다. 노무현정부의 언론중재위원회 조정신청 건수는 다른 정부를 압도한다. 그러나 조중동은 노무현정부의 소송전을 ‘좌파정부의 언론탄압’으로 규정하며 보수 지지층을 결집시키는데 이용했고 反노무현 독자층을 확보하는데 사용했다. 실제로 조중동은 참여정부시절이던 2003년 ABC협회조사에서 유료부수 481만부를 기록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2014년 조중동 유료부수는 281만부를 기록했다.

조중동 주 독자층이 지지하는 박근혜정부가 조중동을 탄압하는 상황에선 ‘언론탄압’으로 규정해봤자 실익이 별로 없다. 여기서 조중동의 ‘답답함’이 짐작된다.

▲ 2016년 신년 기자회견 모습. ⓒ연합뉴스
▲ 2003년 노무현정부 취임 100일 기자회견 모습. ⓒ연합뉴스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는 일방 통보

노무현정부는 조중동의 여론통제를 거부했지만 박근혜정부는 조중동을 아예 무시하고 있다. 박 대통령에게 조중동은 자신의 아버지에게 머리를 조아렸던 ‘가신’의 자식들이 운영하는 회사에 불과할 뿐, 정부를 견제하는 제4권력으로서 갈등하거나, 또는 동등하게 봐야 할 관계가 아니다. 이는 대통령이 가진 일종의 ‘언론관’이다. 그 결과 청와대 기자단은 유명무실해졌다. 기자들은 각본대로 짜인 질문에 손을 드는 허수아비 내지는 박수치는 방청객으로 전락했다.

조중동 기자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조중동은 박근혜정부 초기부터 줄곧 대통령의 ‘불통’에 대해 일관된 비판을 이어왔다. 특히 주요한 비판지점은 ‘인사 참사’였다. 그도 그럴 것이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지면권력을 이용한 조중동의 우회적인 ‘인사 청탁’이 거의 먹히지 않았다. 조중동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주요 인사들의 등장에 불쾌할 수밖에 없었다.

조중동이 오늘날 ‘정윤회·최순실’ 등 소위 비선실세에 비판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들이 10년 전 비판했던 고졸 출신에 막노동을 전전한 ‘근본 없는’ 대통령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근본이 없기 때문이다. 한 때 조중동 사주 세 명이 모이면 대통령을 만들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만큼 기세가 대단했던 신문사들이 최순실씨보다 권력서열에서 밀린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선 참기 힘든 굴욕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노무현정부가 기자단 폐지와 브리핑룸 통폐합 등의 시도를 통해 모든 언론을 동등하게 대하며 ‘정보의 평등’으로 조중동의 권력을 분산시키려했던 데 조중동이 분노했었다면, 지금은 ‘일방통보의 평등’에 분노하고 있다 볼 수 있다.

▲ 헌법재판소는 김영란법에 언론인이 포함되는 것이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포커스뉴스
△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경영상 타격, 김영란법

박근혜정부가 지난 9월 도입한 청탁금지법(김영란법)은 오늘날 신문사의 주요 수익인 컨퍼런스 후원과 기사 협찬 등 영업활동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고 있다. 골프접대나 해외출장 등 기존에 기자들이 누렸던 특권도 위축됐다.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언론사 협찬은 정당한 ‘권원’이 발생해야만 가능하다. 쉽게 말해 원자력문화재단의 협찬금을 받고 기사를 쓸 경우 협찬사를 기사에 명시해야 ‘권원’이 발생한다는 의미다.

이는 신문사 스스로 돈 받고 홍보기사를 써줬다고 밝혀야만 합법이란 것으로, 돈을 버는 대신 공정성과 객관성은 버리고 ‘사이비언론’이라 홍보하는 꼴이어서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기업이나 정부부처 입장에서는 당연히 홍보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기업이 보험 성격으로 지급하는 후원 역시 후원사가 공개되면 다른 신문사로부터 후원압박을 받게 되기 때문에 부담이 늘어난다. 김영란법은 신문사의 음성적인 수익모델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당장 조중동 주축의 신문협회는 “후원·협찬 제한은 신문사 영업활동을 크게 위축시켜 전체 신문 산업의 발전을 저해할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신문사의 전통적 수익모델이었던 지면광고는 유료부수 감소와 더불어 힘을 잃었고 온라인 트래픽 선물을 안겨줬던 네이버 역시 박근혜정부 첫 해 ‘뉴스캐스트’ 서비스가 폐지되며 수익이 급감해 현재로선 컨퍼런스나 포럼 등 행사를 통한 수익모델까지 흔들릴 경우 신문사 경영에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된다.

이 같은 위기는 노무현정부에선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었다. 노무현정부에선 기껏해야 신문고시를 통해 불법적인 부수확장을 단속하는 수준이었다. 이는 신문사 경영에 직접적인 타격은 줄 수 없는 사안이었다. 만약 노무현정부에서 김영란법에 언론인을 포함시키는 안이 발표됐다면 아마 조중동에선 ‘좌파정부의 언론 죽이기’란 사설이 연일 터져 나왔을지도 모른다. 공짜골프와 고급 접대, 취재를 빙자한 해외여행의 주요한 수혜자였던 조중동 기자들 입장에서 지금 박근혜 대통령을 바라볼 때 어떤 감정일지는 각자의 상상에 맡긴다.

▲ 조선일보 신문지국의 모습. 사진은 기사내용과 관련 없음.
△ 조중동 ‘갑질’을 금지하는 또 다른 법안, 대리점법의 등장

조중동은 종이신문의 몰락 속도에 비해 여전히 높은 유료부수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는 일명 ‘부수 밀어내기’로 불리는 신문사 본사와 신문지국 간의 불공정 거래관행 탓이 크다는 게 언론계 분석이다. 그런데 오는 12월23일부터 시행될 ‘대리점법’(대리점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일명 남양유업법) 적용대상에 전혀 예상치 못했던 조중동이 포함됐다. 법 적용대상인 평균매출액 800억 원 이상 기업에 조중동 등 7개 신문사가 포함된 것. 신문사를 예외조항으로 두지 않은 결과 조중동은 박근혜정부에게 ‘뒤통수’를 맞았다.

대리점법 시행령에는 대리점에 판매 목표를 제시하고 이를 달성하지 못하면 계약을 해지하거나 상품 공급을 중단하는 행위, 거래 조건을 부당하게 변경하는 행위 등이 제재 대상으로 규정됐다. 대리점법이 적용될 경우 조중동의 ‘유료부수 밀어내기’ 관행은 상당부분 개선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신문지국 현장에 있는 이들의 증언이다. 이는 부실부수 감소로 이어지며 조중동의 유료부수 거품을 걷어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노무현정부에서는 신문공동배달제도를 주축으로 한 신문유통원이 등장하며 조중동이 강력 반발한 바 있다. 신문유통원이 신문지국을 흡수할 경우 조중동의 불법적인 신문판촉관행이 드러나고 부수 거품이 꺼질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당시 조중동이 끝까지 공배제에 참여하지 않으며 결국 신문유통원도 폐지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대리점법의 경우 시행령에 신문사만 제외하는 예외조항을 만들어야 하는 작업이어서, 과정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박근혜 대통령. ⓒ청와대
△ 광고총량제·중간광고·인사까지…노골적인 방송 ‘편애’

박근혜정부는 지난해 지상파의 숙원이었던 광고총량제를 도입하고 올해 방송의날 행사에선 중간광고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두 광고정책은 신문협회가 끈질기게 반대해왔던 ‘親방송’ 정책으로, 광고가 방송에 쏠려 신문업계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조중동에게 또 다른 위기를 예고하고 있다. 특히 중간광고도입으로 인한 타격은 광고총량제 도입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규모라는 게 업계 예측이다.

당장 신문협회는 “지상파 시청률이 떨어진 상황에서 광고물량을 늘려 방송 산업을 활성화하겠다는 것 자체가 시대 역행적 사고”라고 반발하고 있다. 위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있다. 조중동이 각각 소유한 종합편성채널의 특혜도 위협받고 있다. 새누리당이 추천한 김석진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은 최근 종편의 1사1미디어렙 운영에 대한 재검토를 시사했다. 이는 직접광고영업이란 특혜를 환수하겠다는 의미다.

신문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언론진흥기금은 매년 축소를 거듭하고 있는 가운데, 조중동은 박근혜정부 주요 인사에서도 방송사에 밀려 찬밥신세다. 성추문 논란으로 낙마한 윤창중(세계·문화일보 출신)씨 이후 신문 출신의 주요 인사가 눈에 띄지 않는다. 중앙일보 주필 출신의 문창극씨의 경우 총리후보자 검증 과정에서 청와대가 지켜내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정연국(MBC), 민경욱(KBS) 청와대 대변인과 김성우(SBS), 윤두현(YTN), 이남기(SBS) 청와대 홍보수석 모두 방송사 출신이다. 이명박정부 시절 권력의 정점에 있었던 신재민 문화부 차관(조선일보)·이동관 홍보수석(동아일보)·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동아일보)·김효재 정무수석(조선일보)·김두우 홍보수석(중앙일보) 등을 돌이켜보면 박근혜정부에 대한 조중동의 ‘섭섭함’을 짐작할 만하다. 심지어 노무현정부 시절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주미대사를 역임했던 사실을 떠올려보면 ‘격세지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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