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23일 오전 백남기씨 부검영장 강제 집행을 시도한 데 이어 법률대리인이 아닌 유가족의 입장을 직접 듣겠다고 요구했다. 유가족과 백남기 투쟁본부측은 “유족과 협의를 했다는 명분을 쌓기 위한 꼼수”라며 “절대 협조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고 경찰은 철수했다.

경찰은 이날 오전 10시 부검영장 강제집행을 통보했으나 시민들에 가로막히자 ‘협의’를 요구하는 것으로 입장을 바꿨다. 백남기 투쟁본부 법률대리인인 이정일 변호사가 유가족 대표로 나섰으나 홍완선 종로경찰서장은 법률대리인이 아닌 유가족과 직접 협의를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 고 백남기씨의 장녀 백도라지씨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백남기씨의 장녀 백도라지씨는 12시50분 투쟁본부 기자회견에서 “아버지를 돌아가시게 한 경찰을 직접 만나고 싶겠나”라며 “경찰이 유족과 만나겠다고 하는 건 유족과 협의를 했다는 명분을 쌓는 꼼수인거 안다. 분명히 말하겠다. 절대 만나지 않겠다”고 말했다. 법원이 발부한 부검 영장은 유가족과 협의를 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경찰 입장에선 형식적이더라도 유가족을 만나 영장 집행 요건을 충족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백도라지씨는 “저희가 선임한 법류대리인을 만나는 것이나, 유가족 만나는 것이나 똑같다. 더 이상 우리 가족을 괴롭히지 말라”면서 “지금 경찰은 병원 근처에 버스 수십대를 대기시키고 있다. 시민여러분, 아버지 보내드리는 길 편안히 가실 수 있도록 도움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 23일 오전 서울대병원에 배치된 경찰병력. 사진=금준경 기자.
홍완선 종로경찰서장은 유가족 기자회견 직후 “유족 뜻을 존중해 오늘은 철수한다”고 밝혔다. 앞서 그는 오후 12시15경 현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유족측에서 부검을 반대하는 의사를 직접 표명하면 오늘 강제집행을 안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기자가 유족이 직접 의사를 밝히면 25일까지 집행을 안 하는 것인지 묻자 “내일과 모레 집행에 대해선 말씀드린 바 없다”고 말해 시민들의 항의를 받았다. 

경찰이 현장에서 철수했지만, 언제든 기습적인 영장집행이 이뤄질 수 있어 300여명의 시민들은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층과 3층 출입문을 지키고 있다. 

야당은 경찰의 강제집행을 비판했다.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유가족 뜻을 거스른 영장 집행은 불법”이라며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서울대병원에서 철수하는 홍완선 종로경찰서장. 사진=민중의소리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원내대변인은 이날 오전 현안브리핑에서 “유족이 반대하는 부검은 있을 수 없다는 법원의 판단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경찰 태도는 용납할 수 없다”면서 “경찰은 법도 없고 국민도 없나”라고 비판했다. 국민의당 강연재 부대변인 역시 현안 브리핑에서 “경찰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과도한 공권력행사를 깊이 반성하고 지금이라도 즉각 강제부검 시도를 중단하라”고 밝혔다. 

오후 2시 현재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정재호, 표창원 의원과 정의당 심상정, 윤소하 의원 등이 시민들과 함께 장례식장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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