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물대포 살수에 맞아 사망에 이르게 된 지 27일 째, 백남기 투쟁본부는 21일 경찰의 날을 '살인 경찰의 날'이라 규탄하며 정권의 충견 노릇을 중단하고 민중의 지팡이로 돌아올 것을 경찰에 경고하고 나섰다.

백남기 투쟁본부(백남기 농민 국가폭력 진상규명 책임자 및 살인정권 규탄투쟁본부)와 백씨 유가족은 71번째 경찰의 날을 맞은 21일 오전, 경찰청 주관이 경찰의 날 행사가 열리는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대통령 사죄! 경찰청장 사퇴! 살인 경찰의 날' 기자회견을 열고 백씨에 대한 부검영장 집행 중지와 책임자 처벌을 재차 촉구했다.

▲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 진상규명 책임자 및 살인정권 규탄투쟁본부'는 71번째 경찰의 날을 맞은 10월 21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대통령 사죄! 경찰청장 사퇴! 살인 경찰의 날'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투쟁본부는 지난 20일 서울 강북구 오패산 터널에서 총격 사고로 숨진 김창호 경위를 애도하며 기자회견을 시작했다.

이날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경찰이 정권의 충견을 자임한다고 한목소리로 규탄했다.

김영호 전국농민회총연맹 회장은 여는 발언에서 "사병화되지 않은 권력으로 선회하는 것이 오늘 경찰의 날의 임무가 아닌가 생각한다"면서 "대한민국 경찰이 사람을 죽이고서 칼을 들고 부검하겠다는 망나니짓을 하고 있다. 오늘은 경찰끼리 기념식하고 자화자찬하지 말고 국민들에게 '앞으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 선언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사인이 분명해도 부검을 해야될 때가 있다'고 말한 경찰에 대해 백도라지씨는 "인간으로서 할 소리인가. 국민 지켜줘야 할 경찰이 자기 의무를 다하지 못했음에도 부끄러워 하고 피해자 가족에게 와서 협상 운운하고 있다"면서 "적반하장에다 안면몰수"라고 비난했다.

지난 20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백씨 유족측 법률대리인을 만나 부검영장을 위한 6차 협의공문을 전달한 장경석 서울지방경찰청 수사부장은 '(사인이) 명확하다 하더라도 부검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 지난 20일 서울경찰청 장경석 수사부장(모자 쓴 사람)이 부검영장 집행을 위한 6차 협의공문을 전달하기 위해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사회를 본 조병옥 전농 사무총장은 '정의의 이름으로 진실을 추구하며 어떠한 불의나 불법과도 타협하지 않는 의로운 경찰'이라는  1991년 제정된 경찰헌장의 조문을 읊으며 "이 문구에 따라 제대로 하는게 하나도 없다"면서 "이 헌장 무엇하러 만들었나. 부끄러운 줄 아시라"고 규탄했다.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는 백씨 사인에 대한 경찰의 조직적 은폐 문제를 비판했다.

강신명 전 경찰청장은 지난 6월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에 출석해 백씨 사고를 '9시 뉴스를 통해 처음 접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백씨 사건이 기록된 '11.14 민중총궐기대회 관련 상황속보'가 파기됐다고 지속적으로 밝혀왔다. 지난 17일 6장 분량의 상황속보만 국회 국정감사에 제출한 데 대해 이철성 경찰청장은 '나머지 상황속보는 파기됐다'고 주장했다.

▲ 경찰이 2015년 11월14일 민중총궐기 당시 작성한 ‘상황속보 25보’에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에 맞아 부상을 당했고, 뇌출혈 증세로 산소호흡기를 차고 치료 중”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민중의소리

상황속보 문건은 지난 18일 존재한 것으로 확인됐다. 백씨는 “저녁 7시10분경 SK빌딩 앞 버스정류장에서 70대 노인 뇌진탕으로 바닥에 쓰러져 있어"라는 기록으로 오후 8시 배포된 상황보고 20보에 최초 등장해 이후 26보까지 지속적으로 보고됐다. 경찰 수뇌부가 저녁 8시 이전에 이미 사고 사실을 인지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투쟁본부는 "사람과 짐승을 가르는 기준이 부끄러움의 유무이며 공권력도 사람이 하는 일일진대, 경찰과 이 정권에게는 어찌 부끄러움이라는 것이 이다지도 없느냐"면서 "경찰은 정권의 충견 노릇을 중단하고 부검강행 시도를 철회하며 책임자들을 구속.문책.파면해 스스로의 과오에 대해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라 주장했다.

경찰, 법적 근거 없이 기자회견 불허... 집회 자유 안중에 없어

한편 이날 기자회견은 경찰 병력의 방해로 애초 개최 장소로 예정된 세종문화회관 입구 계단에서 열리지 못했다. 이날 오전9시30분에 열릴 예정이었던 기자회견은 경찰 병력과 기자회견 주최측 간의 실랑이로 9시55분으로 미뤄져 인근 광화문 광장에서 진행됐다. 


9시20분 경 경찰 30여 명은 세종문화회관 앞 횡단보도에 모여 있던 집회 주최자들을 에워싸 고립시켰다. 고립된 시민들 사이에서 "직권 남용이다" "경찰의 불법 행위"라는 반발이 터져나왔다. 김영호 전농 회장은 '기자회견을 막을 근거가 있느냐'고 경찰에 수차례 물었지만 어떤 경찰도 대답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들은 30여 분 간 지속적으로 경찰병력에 밀려 세종문화회관에서 200m 가량 떨어진 세종대로 사거리로 강제 이동 당했다.

이 와중에 현장 지휘관 무전에서는 "천천히 밀어" "갖다 붙여서 밀어" 등의 지시가 지속적으로 흘러나왔다. 한 시민이 인근에서 "살인경찰 물러가라"고 소리치자 현장 지휘관은 당장 "저 사람 잡아 밀어넣어"라 지시해 해당 시민도 함께 포위됐다.

▲ 경찰 병력이 "살인경찰 물러가라"고 소리친 한 시민을 붙잡아 강제로 이동시켰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이날 71주년 경찰의 날 행사는 광화문 광장 북단과 세종문화회관 2층에서 진행됐다.

기자회견이 열리기 1시간 전인 8시30분부터 경비는 삼엄했다. 광화문역 매 출구마다 6~7명의 경찰이 경비를 섰고 광화문역 7번출구에서 세종문화회관으로 가는 길 곳곳에 30~40명 규모의 경찰병력 무리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세종문화회관 입구 계단에만 경찰 80여 명이 열을 맞춰 넓게 포진돼 경비를 섰다.

▲ 71회 경찰의날 기념식이 열릴 세종문화회관 앞을 수백여명의 경찰 병력이 경호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71회 경찰의날 기념식이 열릴 세종문화회관 앞을 수백여명의 경찰 병력이 경호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이날 경찰의 날 행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법 위에 군림하는 떼법 문화와 도로 위 난폭운전, 불법파업과 불법시위, 온라인상 난무하는 악성 댓글과 괴담 등 일상 속에서 법질서 경시 풍조를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며 "경찰은 사회 전반에 법질서 존중 문화가 뿌리내리도록 공명정대하고 엄격한 법집행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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