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여성이 선택권을 가지는 것에 찬성하는 이유는 그것이 무엇이든 여성 스스로가 가장 심사숙고하여 내린 결정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대통령 후보가 최근 한 토크쇼에서 낙태를 두고 한 말이다. 낙태에 반대하는 도널드 트럼프 후보와 상반되는 모습을 보이며 낙태 이슈는 미국 대선에서도 뜨거운 이슈다. 한국에서도 낙태 이슈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지난 9월23일 보건복지부가 인공임신중절수술(낙태 시술)을 의료법상 비도덕적 의료행위로 규정하고 나섰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의료관계 행정처분규칙 일부개정안’ 입법예고에 따르면 △허가받지 않은 주사제 등을 사용하는 경우 △진료 목적 외로 마약 또는 향정신성의약품을 투약한 경우 △임신중절수술을 한 경우 등에 의사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불꽃페미액션’, ‘페미당당’, ‘강남역 10번 출구’ 등 페미니스트 그룹들과 시민이 보건복지부의 시행 개정안 및 낙태죄를 반대하는 폴란드의 ‘낙태 금지법’ 반대 시위를 모티브로 하는 검은 시위를 하고 있다.ⓒ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당장 입법예고안 반대 시위가 등장했다. 개정안이 임신·출산에 대한 여성의 결정권을 심하게 억압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지난 15일 열린 ‘검은 시위’에서 많은 여성들은 “아이에 대한 출산결정권은 여성 개인에게 있는 것”이며 “오히려 낙태수술이 불법인 것이 환자의 안전을 위협 한다”고 주장했다. ‘검은 시위’는 페미니스트 그룹 ‘불꽃페미액션’ ‘페미당당’ ‘강남역10번출구’ 등이 주최 시위로, ‘생식원에 대한 애도의 표시’(reproductive rights)를 뜻하는 검은 옷을 입고 낙태죄 폐지를 주장했다. 또 다른 그룹이 주최하는 ‘낙태 합법화 시위’도 오는 23일 예정돼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절을 여성이 가져야 할 ‘근본적 권리’로 보고 있다. OECD 30개 회원국 중 23개국이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폴란드에서는 낙태 금지법에 반발해 수만 명의 여성이 검은 옷을 입고 시위에 나섰고 폴란드 정부는 낙태 전면 금지법을 폐기하는 절차에 들어가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의 현행법은 낙태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고 강간에 의해 임신된 경우 등 예외적 사유에서만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강간이라는 점이 법원에서 확정이 나야 합법적인 낙태가 가능하다. 재판 과정에서 범죄 혐의를 충분히 입증하지 못한 여성은 합법적인 낙태가 불가한 상황이다. 2011년에는 낙태한 여성을 처벌하는 한국의 형법조항이 UN여성차별철폐위원회로부터 검토 권고를 받기도 했다.


▲ 지난 17일 성과재생산포럼 주관으로 열린 '형법상 낙태죄 폐지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지난 17일 성과재생산포럼 주관으로 열린 '형법상 낙태죄 폐지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보건복지부가 갑자기 낙태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을 예고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저출산 사회 대책’의 일환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당시 낙태허용여부를 묻는 질의에 “국민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모호한 입장을 취했으나 당선 이후에는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낙태를 금지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12월10일, 박근혜 대통령이 위원장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을 발표하고 ‘저출산’ 분야의 보완 과제로 “출생의 사회적 보호”, “생명존중 문화 조성 필요”를 언급했다. 지난 5월에는 이에 따라 생명존중선언문이 제정되어 발표됐다. 박근혜 정부는 저출산 사회의 원인으로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 문화’를 꼽고 있으며 이러한 기조 아래 낙태를 금지해야한다는 보건복지부의 입법예고안이 나왔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낙태를 금지해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20일 나경채 정의당 공동대표는 “저출산 사회는 아무리 떠들어도 여성들의 일상적 불안과 두려움이 가시지 않는 사회에 보내는 여성들의 경고파업”이라며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사회경제적 사유로 인한 임신중절을 허용하는 방향의 관련 법 개정과 임신과 출산에서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보다 증진되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여성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낙태 금지로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뿐 아니라, 설령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개인권을 침해하면서까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옳지 못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 지난 17일 성과재생산포럼 주관으로 열린 '형법상 낙태죄 폐지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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