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백남기 어르신을 그렇게 만든 건가? 경찰도 (내가 아니라고) 인정하고 있다. 발달된 미디어는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근데 왜 내 말이 필요하고 내 등장이 필요하게 됐나. 가공된 그림에 꿰맞추기 위해 엉뚱한 방향으로 몰고있는 것 같다."

여권 및 검찰을 중심으로 고 백남기 농민에 대한 '빨간 우의 가격설' 의혹이 끊임없이 지펴져왔던 가운데 당사자가 직접 언론에 나서 입을 열었다. 빨간우의 가격설은 우파 성향의 온라인 커뮤니티가 중심이 돼 '백씨의 부상은 빨간우의 착용자의 폭행 때문'이라고 제기한 의혹으로 다수 영상 자료 검증을 통해 근거없는 음모론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검찰 및 새누리당 의원이 이 주장을 제기함에 따라 백씨의 부검 강행을 위한 도구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당사자 김아무개씨(가명.40대)는 이에 대해 "경찰이든 검찰이든 언제라도 응해 줄 생각이 있다"면서 "부검을 강행하기 위한 핑곗거리로 (의혹) 연기를 태워가며 나를 끄집어 내는 것"이라 밝혔다. 그는 지난 17~18일 언론보도를 통해 이미 경찰에 신원이 파악된 적이 있으며 민주노총 산하 전국공공운수노조에 가입된 조합원임이 밝혀진 바 있다. 김씨는 19일 정오 일부 언론 매체와의 간담회 자리를 열고 사고 당시 상황과 여권의 '빨간 우의 가격설' 주장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


검경은 백남기 사인 가리기 위해 ‘의혹 연기’ 지피고 있나

김씨는 백씨 사건의 본질이 될 수 없는 자신의 존재가 백씨 사망 이후 중점적으로 다뤄진 것에 대해 "몰상식한 분위기"라고 언급했다. 그는 "나와 관련된 내용은 얘깃거리도 되지 않는데 백남기 어르신이 돌아가시기 전 후에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다"면서 "경찰이 한 건지, 제 3자가 한 건지 이걸 가리는 문제가 본질적인 것이냐. 검경과 몇몇 언론은 여론을 엉뚱한 방향으로 돌리는데 (빨간우의를) 이용하는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2015년 11월14일 사고 당일 그가 의식을 잃은 백씨에게 다가간 이유는 백씨에게 쏟아지는 물대포를 막고 백씨를 안전한 곳에 옮기기 위해서였다. 그는 당시 상황을 길게 설명했다.

"앞에 방호벽이 있었고 양 옆에 경찰 차벽이 있었다. 백씨는 오른쪽 편에서 방호벽에 접근을 했다가, 그렇게 큰일을 당했다.

방호벽에 살수장치 추가됐고 사람들이 모여있기 만하면 바로 쐈고 (벽에) 접근을 하지 못하도록 계속 쐈다. 먼발치에 그분이 쓰러져 있었다. 그 분이 조합원인지 농민인지 몰랐다. 두 분인가가 다가가서 머리 쪽을 끌어올리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물대포는 쓰러져 계신 곳을 계속 쏘고 있었다. 마치 게임 하는 것과 같은 광경이었다. 다른 물대포가 접근하려고 하는 사람에게 계속 쏘아댔다. 많은 사람이 그쪽으로 접근하기 어려웠다.

백씨 앞쪽으로 접근하면 몸으로 물대포를 막아 백씨에게 직접적으로 물이 쏟아지는 것을 막고 그럼 이동이 용이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수압은 나 한 사람 정도는 쓰러뜨리기 충분할 정도였다. 안 넘어지려고 버텨봤는데 그게 잘 되지 않았다. 아스팔트 바닥으로 넘어져 손바닥으로 바닥을 버티면서 내 두 눈으로 직면했던건 눈을 감고 미동도 없이 피를 흘리고 있는 백남기 어르신이었다. 최루액이 섞여 있어서 덕지덕지 화장을 한 듯한 모습으로, 거리가 얼마 되지도 않는 곳에서 백씨를 대면했다."

물대포가 계속 쏟아지던 상황속에서 그는 백씨 주변에 접근한 다른 시민과 함께 살수 정도가 덜한 왼쪽 차벽으로 백씨를 옮겼다. 그들은 의료지원팀으로 참가한 집회참가자를 찾으면서 119를 불렀다.

백씨가 응급차에 실려간 후 그는 '안전히 모셔지면 되겠거니' 생각하고 원래 있었던 대열로 이동했다. 집회 후 그는 자신의 지역으로 함께 올라온 동료들과 함께 내려갔다. 그가 기억하는 사고 당일 이야기다.

11개월 간 아무 연락 없던 검경, 모든 사실 언론 통해 알아

일간베스트 저장소 등 우파 성향의 온라인 커뮤니티는 빨간 우의를 입은 그가 백씨 쪽을 향해 넘어지는 것을 보며 팔꿈치, 무릎 등으로 백씨를 가격했다고 주장했다. 검찰도 지난달 5일 서울대병원 의무기록 압수수색을 위해 요청한 영장에 '빨간색 우의착용자가 넘어지면서 피해자를 충격한 사실이 있'다고 적었다. 김씨는 이날 직접 공식석상에 나서 이 주장이 사실 무근임을 확인한 것이다.

그는 "경찰도 인정하는 것"이라 밝혔다. 김씨는 지난 12월11일 경찰 소환 조사를 딱 한 번 받았다. 김씨의 기억에 소환조사의 목적은 불투명했다. 자신의 혐의가 뭐냐 묻는 말에 서울지방경찰청은 '조사를 받아보면 안다'고 답했다. 출석요구서에도 구체적 혐의나 내용이 적시돼있지 않았다.

▲ 지난해 11월14일 민중총궐기 당시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고 백남기 농민 옆에 있었던 공공운수 광주전남본부 소속 노동자(일명 빨간우의)가 19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입장 발표를 하고 있다. 일베 사용자와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 등 일부 극우 성향 누리꾼들은 빨간 우를 입은 남성이 물대포에 맞은 백씨를 가격했다는 의혹을 제기했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경찰은 김씨에게 집회 참가 이유, 집회에서 한 활동 등을 물었다. 백씨와 관련된 질문은 없었다. 경찰은 집회 대열에 있던 사진을 보여주며 사실관계를 물었지만 백씨와 함께 있던 사진은 전혀 보여준 적이 없다.

이후 11개월 동안 김씨는 검경으로부터 어떤 연락도 받은 적이 없다. 김정훈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지난 17일 '김씨에 대해 불구속 기소 의견을 전달했다'고 밝혔으나 김씨는 피의자면서도 그 소식을 전달받지 못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 조사 이후 자신과 관련된 모든 소식을 언론 보도를 통해 접했다. 그는 "왜 아무 얘기 없다가 갑자기 연기가 지펴지는 지 가늠을 못하고 있었다"고 의구심을 표했다.

폭행? 백남기 향한 물대포 몸으로 막으려 선 것 

백씨와 신체 접촉이 있었냐는 물음에 그는 "물대포를 피하려고 몸부림 쳤고 그러면서 팔을 뻗은 것은 기억이 난다"면서 "지금에서야 '신체접촉'을 얘기하지만, 당시 나에겐 백씨에게 쏟아지는 물대포를 막아야 하고, 막으면 안전한 곳으로 옮길 수 있다는 생각만 있었다"고 답했다. 그는 물대포가 쏟아졌던 당시 상황에 대해 "그 자세를 취해보라고 하면 (기억이 안나) 취할 수 없을 것 같다. 확실한 것은 넘어져 바닥을 짚으니까, 노인 얼굴이 가깝에 또렷이 보였고 그 장면이 지워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당시 머리 뒤통수에 물대포를 맞은 이후 곧바로 가방 뒤부분을 가격당해 중심이 앞으로 쏠려 넘어졌다. 영상 자료에 따르면 넘어진 시간은 2초다. 누군가를 부상입힐 정도의 시간이 아니라는 점, 영상을 보면 손으로 아스팔트를 짚은 게 명확히 드러나는 점 등은 이미 언론 보도를 통해 확인됐다.

“살려고 거리로 나온 사람이 국가에 의해 목숨 잃었고 그에 관한 증거자료는 충분하다”

백씨 부검을 둘러싸고 검경과 시민사회간 갈등이 첨예해지는 것을 보면서 김씨는 지난 주 공공운수노조 법률원에 자신의 고민을 전달했다. "내가 필요한 상황이라면, 억울한 것을 풀 수 있다면 나서겠다"는 의도에서였다. 그는 언제라도 기회가 마련돼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서울로 가겠다는 마음을 먹었었다고 밝혔다.

왜 지금 시점이냐는 질문에 그는 "여기에 '빨간 우의가 나요'라고 얘기하는 건 소설 좋아하시는 분들의 먹잇감이 되는 거 외에 어떤 진실과 닿을 수 있는 것이냐"면서 "왜 제가 일베류에 반응을 굳이 해가면서, 나설 이유도 없는데 내가 마치 이 전쟁에 주인공인 것 마냥 행세를 해야 하는 가 싶었다"고 답했다.

▲ 지난해 11월 14일 민중총궐기 당시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고 백남기 농민 옆에 있었던 공공운수 광주전남본부 소속 노동자(일명 빨간우의)가 19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입장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지난 일주일 동안은 발표 방식, 발표로 인한 결과 등을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공공운수노조는 김씨에게 부담이 될까 다시 생각하길 제안하기도 했다. 공공운수노조는 내부 논의를 거친 뒤, 사실을 왜곡하지 않고 전달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했고 19일 언론 간담회를 열었다.

그는 인터뷰 내내 '빨간우의는 본질이 아님'을 강조했다.

"중심은 이거다. 저는 주인공이 아니다. 주목해야 하는 건, 살려고 거리로 나오셨던 분이 자신을 보호해줘야 될 국가에 의해 생명을 잃었고 거기에 따른 증거자료는 충분하다는 것이다.

다른 것들을 주인공 삼아 끌어올리다 보면 정작 중요했던 점, 그 분(백씨)이 뭘 얘기하려고 했는지가 가려진다. 진실은 무수히 반복되는 거짓에 가려져 거짓과 진실이 바뀌는 거 같다."

그는 백씨 사건과 관련된 경찰 조사에 언제든 응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경찰은 나에 대한 자료를 모두 가져갔다. 나는 조사에도 응했다"면서 "숨기고 말 것이 없다"고 말했다.


[당사자 조합원 입장 전문]

"빨간 우의" 논란에 답합니다.
명백한 진실에 대한 왜곡조작 중단하고 책임자를 처벌하십시오.

- 고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 사망에 대한 "빨간 우의" 참석자의 입장 -

먼저 국가폭력에 희생 되신 고 백남기 어른의 명복을 빕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지난해 "빨간 우의"를 입고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석했던 공공운수노조 조합원 000입니다. 현재 호남지역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일베의 조작, 이를 받아쓴 최근 일부 언론의 왜곡보도, 그리고 백남기 농민의 국가폭력 사망과 관련된 국회 청문회에서 이것을 또 받아서 주장한 국회의원들이 있었습니다. 참담합니다. 국가폭력을 반성하기는 커녕, 그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조작에 나서다니요.

영상은 이미 자세히 분석되고 보도되었습니다. 당시 상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날 경찰은 물대포를 계속 직사했습니다. 백남기 농민이 쓰러지셨습니다. 저는 쓰러진 분에게까지 계속 직사하는 상황에서 백남기 선생님을 안전한 장소로 옮기기 위해 달려갔습니다. 저와 함께 많은 분들이 달려갔지요. 경찰은 접근하는 이들에게도 계속 물대포를 직사하여 쓰러진 분을 살피기 위한 사람들의 접근을 방해했습니다.

백남기 어른에게 쏟아지는 경찰의 직사 물대포를 등으로 막으려했습니다. 그런데 제 등으로 쏟아지는 물대포는 성인인 저마저 순식간에 쓰러트릴 정도로 강해서 넘어졌습니다. 양손은 아스팔트를 짚었습니다. 주변에 있는 분들과 백남기 선생님을 물대포 각도가 잘 나오지 않는 길가로 겨우 옮겼습니다. 이후 저는 원래 대열로 다시 이동했습니다.

경찰이 모든 증거를 갖고 있을 것입니다. 저에게 경찰, 검찰이 조사하겠다고 하면 언제든지 응할 것입니다. 지난해부터 진행된 경찰 조사에서도 집회 참석과 관련된 사항 외에 저에게 백남기 어른과 관련된 사항은 묻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경찰 조사 당시, 제가 빨간 우의를 착용했다는 것도 경찰에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언론 등에 보도된 사진을 통해 저를 지목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경찰도 제 신상을 알고 있다는 사실도 전해들었습니다.

그런데도 계속 의혹을 키우다가 급기야 백남기 어른의 부검을 강행하기 위한 명분으로 영장에 '신원불상자'를 제시했다는 의혹도 있다고 합니다. 부검영장 신청에 혹여라도 조작된 "빨간우의" 의혹이 반영되어 있다면, 또 다른 비극을 막기위해서라도 그 영장은 당장 철회되어야합니다.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이 아니라 사건의 조작을 위해 가공된 그림을 맞추는 행태를 중단해야합니다.

이제까지 일베 등 일부의 주장은 너무나 엉터리라 굳이 대응하여 국가폭력 살인이라는 초점을 흐리기를 바라지 않아 침묵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국회의원까지 그런 주장까지 하고 보수언론이 왜곡하는 상황에서 나서서 입장을 밝히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보수언론과 일부 국회의원은 마치 짜고 치는 것처럼, 백남기 어른이 돌아가신 다음 말도 되지 않는 거짓 의혹을 대대적으로 제기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이제는 나서야겠다고 생각했고, 오늘 공공운수노조, 변호사와 협의를 거쳐 이렇게 입장을 밝힙니다. 다만, 제 아이와 가족과 충분한 협의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제 신상을 언론에는 밝히지 않겠습니다. 물론 검경은 정확히 알고 있을 것입니다. 조사도 거부하지 않습니다.

“빨간 우의”를 찾을 때가 아니라 누가 물대포를 쏘았는지, 명령했는지, 책임자, 살인자인지를 찾을 때입니다. 당일 물대포는 정확히 사람의 얼굴을 겨냥했고 쓰러진 백남기 어르신의 얼굴에 지속적으로 살수하는 범죄, 살인 행위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말씀드립니다.

최루액에 범벅이 되고 코피를 흘리는 백남기 어른의 얼굴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정확히 백남기 농민에 대한 국가폭력 살인사건입니다. 이 점에 주목해야합니다. 본질을 흐리기 위한 일부의 농간에 언론도 부화뇌동하지 말아주십시오. 무엇보다 백남기 농민께서 그날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외치신 내용이 핵심입니다. 농민이 살 수 있게 해달라는 말씀이셨습니다. 그런데 돌아온 것은 경찰폭력이었습니다. 이번 정부 하에서 저보다 억울한 국민들이 넘칩니다. 제가 아니라 그분들과 그 말씀을 보아주십시오. 제가 아니라 이 점을 봐주시길 바랍니다.

2016.10.19. 공공운수노조 조합원 000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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