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후예’와 ‘응답하라 1988’. 올해 지상파인 KBS와 CJ E&M계열 케이블채널 tvN에서 가장 성공한 드라마다. 시청률은 마지막회 기준 ‘태양의 후예’가 38.8%로 18.8%를 기록한 ‘응답하라 1988’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그러나 홍원식 동덕여대 교수의 ‘방송광고 비대칭 규제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에 따르면 두 프로그램의 광고 성적표는 반대다.

‘태양의 후예’의 회당 광고 판매액은 7억6000만 원에 그쳤지만 ‘응답하라 1988’의 경우 9억 원에 달했다. ‘응답하라 1988’은 중간광고 시청률만 8.4%를 기록했다. 특히 2049세대의 프로그램 전후 광고 시청률은 시청률 대비 40~50%에 불과하지만 중간광고 시청률은 80~90%에 달했다. 중간광고 여부가 프로그램 광고 매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다.

지상파, “중간광고 절실해”

지상파는 중간광고 규제완화가 절실하다. 방송업계 이해관계자들이 자사에 유리한 규제완화를 요구하는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지상파가 중간광고 도입에 총력을 기울이는 이유는 그만큼 도입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방송협회 추산에 따르면 지상파 중간광고 도입으로 연 1300억 원 가량의 지상파 광고매출이 늘어난다. 지난해 SBS의 전체 광고매출액(4366억 원)의 3분의 1에 달하는 규모다. 광고업계에서는 “집 나간 지상파 광고를 불러올 유일한 방법이 중간광고”라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엄살이 어느 정도 있겠지만 지상파가 그 어느 때보다 힘든 건 사실이다. 방송시장의 흐름을 보면 지상파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매체별 광고시장 점유율 추이를 보면 2006년 지상파는 전체 방송광고시장의 75.8%를 차지했으나 2010년 66.3%, 2015년 55%로 급락했다. 지난 10년 사이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독점체제가 무너졌고, 종합편성채널이 온갖 특혜를 통해 성장하고 있다. CJE&M 역시 10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갖게 됐다. 이 와중에 외주제작 비율이 늘어나 이익을 챙기기는 힘들어졌다.

PD들은 제작 환경개선을 위해 중간광고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제작비 지원
은 늘지 않는데 제작비용은 매년 늘어가니 결국 프로그램 곳곳에 광고가 침투하게 됐다. PD들이 협찬과 간접광고를 유치하기 위해 영업을 뛰고, 프로그램과 분리돼야 할 광고가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한국PD연합회가 지난 12일 발표한 인식조사에 따르면 지상파 PD 85.3%가 “협찬과 간접광고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중간광고 허용이 필요하다”고 밝힐 정도다.

▲ KBS 드라마 '다 잘될거야' 화면 갈무리. 과도한 간접광고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제재를 받았다


‘조건부 도입’혹은 ‘제한적 도입’ 가닥

정치권에서 전향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중간광고 도입의 큰 관문은 넘었다. 정부는 일단 OK사인을 보냈다. 지난 9월2일 방송의날 행사 때 박근혜 대통령과 황교안 국무총리가 지상파 중간광고 규제완화 의지를 피력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연말까지 지상파 광고총량제 도입 효과를 분석한 후 중간광고 도입 여부를 논의하겠다는 입장이다.

관건은 야당의 판단인데, 일부 야당 의원들이 다양한 이유로 지상파 중간광고 도입의 필요성을 시사했다. 지상파 중간광고 도입이 쟁점이 되면서 야당 입장에서는 지상파에 줄 건 주고 받아낼 건 받아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사실상 야당이 조건부로 지상파 중간광고 도입에 찬성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물론 모두 찬성하는 건 아니다. 새누리당 강효상 의원과 더민주 변재일 의원이 국감에서 지상파 중간광고 도입 반대의견을 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지상파와 이해관계가 없는 의원들까지 적극적으로 나서거나 암묵적으로 동조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미방위 소속 한 야당 의원실 관계자는 “지역구에 있는 지역방송들은 중간광고가 도입 돼야 중앙에서 주는 광고배분 몫이 늘어난다고 하니, 반대할 수 없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중간광고 도입 조건, 협찬·간접광고 잡아야

지상파 중간광고 도입에 어떤 조건을 붙여야 할까. 중간광고 도입의 가장 큰 명분은 광고가 프로그램에 침투하는 협찬이나 간접광고와 달리 중간광고는 명확하게 프로그램과 광고가 분리됐다는 점이다. 지상파 중간광고가 도입된 이후 자연스럽게 간접광고, 협찬이 줄어들면 좋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3일 방송통신위원회 종합감사에서 “중간광고 규제를 풀면 오히려 협찬과 간접광고가 더 늘어날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 MBC 드라마 욕망의불꽃의 한 장면. 협찬주인 아우디는 간접광고의 광고주와 달리 광고효과를 낼 수 없지만, 로고 윤곽을 드러내는 등 사실상 간접광고와 다름 없는 협찬을 하고 있다.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안으로 ‘제한적 규제완화’ 의견을 냈다. 뉴스와 다큐멘터리, 어린이 프로그램에서는 중간광고를 금지하고 예능, 드라마에 한해서만 제한적으로 중간광고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이상민 의원은 간접광고의 총량 규제를 통해 무분별한 간접광고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간접광고 총량 규제는 의미는 있지만 풍선효과로 오히려 음지의 협찬시장이 비대해질 가능성도 염려해야 한다. 간접광고에만 이목이 집중되는 경향이 있지만 협찬을 동시에 규제하지 않는 이상 프로그램에 침투한 광고 문제를 해결하는 건 불가능하다.

간접광고와 협찬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간접광고는 미디어렙을 거쳐 판매해야 하고 협찬은 방송사와 직거래를 한다. 협찬은 허용범위와 시간 등이 방송법에 규정되지 않고 ‘고지’만 하면 될 뿐 규제 및 처벌조항이 없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광고를 사고 팔 때 협찬과 간접광고를 구분하지 않고 우선 협찬으로 거래한다. “걸리면 간접광고, 안 걸리면 협찬”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느슨한 규제를 틈 타 협찬시장은 비정상적으로 커졌다. 지난해 종편 4사의 협찬매출은 1345억 원으로 광고매출(2863억 원) 대비 절반에 육박했다. 지상파의 협찬매출(7748억 원)은 광고매출(3조4736억 원)의 4분의 1에 달했다. KBS 기준 지난해 협찬매출은 1085억 원으로 간접광고 매출(133억 원)보다 월등히 많다. 협찬매출은 광고판매 대행사인 미디어렙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이 같은 통계는 빙산의 일각일 가능성이 크다. 

협찬이 더욱 심각한 이유는 프로그램 내용 전반에 영향을 미칠뿐더러 보도 프로그램까지 침투하며 여론조작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MBN은 2014년 12월6일 ‘경제포커스’에서 자원외교를 비판적으로 언급하다 한국전력공사에 대해서는 “전문회사다 보니 경험이 많다”며 뜬금없이 칭찬했다. 나중에 선데이저널에 의해 폭로된 MBN미디어렙의 영업일지에 따르면 MBN과 한전은 “한전에 대해 부각시킬 예정”이라며 4000만 원짜리 협찬을 맺었다. 그러나 협찬의 장르규제가 없기 때문에 방통위로부터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다.

다른 지상파 PD는 “이명박 정부 때 4대강 방송용역사업이 55억 원에 조달청에 고시됐는데  모 방송사가 다른 프로까지 묶어서 100억 원에 수주했다”면서 “이렇게 되면 정부가 원하는 정책을 쉽게 만들어낼 수 있다. 인터뷰 대상, 장소, 시간까지 정부가 정해주고 사전에 테이프를 보내라는 등 무리한 요구를 해도 우리는 다음 협찬을 받기 위해 다 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 MBN 경제포커스 화면 갈무리. MBN미디어렙 영업일지에 따르면 한국전력공사로부터 협찬계약을 맺은 이 프로그램은 한전을 긍정적으로 다뤘다.
따라서 협찬을 양성화하기 위해 19대 국회에서 최민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방송법 개정안을 다시 발의해 중간광고의 전제조건으로 요구할 필요성이 있다. 이 법안은 △‘협찬’의 정의와 허용범위를 간접광고와 마찬가지로 구체적으로 규정 △ 기업 협찬을 받을 수 없는 경우를 명문화 △협찬 금지를 위반하면 5000만 원 이하 과징금 부과 △협찬도 방발기금 징수대상에 포함 등의 내용이 담겼다. 

정부의 협찬을 제한해야 한다는 논의도 참고할만하다. 배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9대 국회에서 신문과 방송이 돈을 받고 방송시간이나 언론사지면을 사는 행위를 금지하는 ‘정부기관 등의 광고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한 바 있다. 

“‘지배구조 개선’ 조건 달아야” 주장도

지상파 중간광고 도입에 앞서 지상파의 공정성 확보가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김재홍 방통위 부위원장은 “‘공정성 확보방안’을 마련한다면 중간광고 도입에 찬성할 것”이라며 △편성위원회 법정화 △각 부서별 공정성 모니터링 소위원회 운영 등을 중간광고 도입 조건으로 요구했다.
 
추혜선 정의당 의원은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이 중간광고 도입의 전제조건”이라고 밝혔다. 공정성 확보방안은 KBS 수신료 인상에 야당이 제시한 조건처럼 △공영방송 이사회 구조개선 △노사 동수 편성위원회 구성 등이 담긴 방송법 개정안, 방송문화진흥회법 개정안 통과가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광고제도와 무관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문제를 조건으로 걸 경우 방통위 의결사항인 중간광고 도입 논의를 방송통신위원회가 아닌 국회로 가져와야 하는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방위 더민주 관계자는 “700MHz대역 황금주파수 배분도 원래 미래부가 결정한 것인데, 국회 차원에서 다시 결정했다”면서 “국회에서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700MHz대역 주파수 배분의 경우 여야 의견이 일치된 이례적인 사례였고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이 엮이면 새누리당이 논의 자체를 거부할 수 있다.

지상파 내부에서도 방송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 언론노조 SBS본부는 지난 5일 홈페이지를 통해 “최근 KBS, MBC 등 다른 지상파의 노사관계가 최악의 수준인 데다 지상파의 보도 공정성과 공영성에 대한 거센 문제제기가 계속 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중간 광고를 풀어주면 그 돈으로 공영성과 공정성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느냐’에 대한 신뢰와 확답을 지상파 스스로가 내놓지 못하면 문제를 풀 수 없다”고 밝혔다.

어떤 조건이 최종적으로 붙을 지는 미지수지만 분명한 건 지상파 중간광고 도입은 일시적으로 숨통을 트이게 할 뿐, 평생 효과가 이어질 수는 없다는 점이다. 앞으로 방통위의 정책적인 결정도 중요하겠지만 지상파 스스로 극복해야 할 과제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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