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물포에 맞아서 부상당했다’고 기록한 고 백남기 농민에 대한 내부 보고서를 은폐한 사실이 확인됐다.

온라인매체 민중의소리가 18일 입수한 ‘11.14 민중총궐기대회 관련 상황속보’ 문건에는 백씨가 “저녁 7시10분경 서린R(빌딩 앞 버스정류장)에서 물포에 맞아 부상”당했다면서 “구급차(송파6-7)로 서울대병원으로 후송돼 뇌출혈 증세로 산소호흡기를 부착하고 치료 중”이라고 적혀 있다.

그러나 경찰은 불과 지난 17일까지도 해당 문건을 “파기했다”면서 상황속보를 은폐해왔다.

▲ 경찰이 2015년 11월14일 민중총궐기 당시 작성한 ‘상황속보 25보’에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에 맞아 부상을 당했고, 뇌출혈 증세로 산소호흡기를 차고 치료 중”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민중의소리

지난 6일 안전행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경찰이 문제의 상황보고를 법원에 증거자료로 제출한 정황이 확인돼 논란이 됐다. 이에 경찰은 백씨가 쓰러진 시간대가 빠진 6페이지 분량의 상황속보를 국회에 제출하며 ‘나머지 상황속보는 파기됐다’고 주장했다.

김정훈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상황속보 파기 경위에 대해 지난 17일 기자간담회에서 “상황보고서 첫머리에 ‘열람 후 파기하십시오’라고 나와있다”면서 “우리는 보고 나면 지금까지 파기해왔다. 관련 준칙에 따라 한 것”이라 밝혔다.

김 청장은 이어 “나 자신도 그렇게 바로 파기해왔다”면서 “파기하면 문제가 되는지는 분석을 해봐야한다”고 덧붙였다.

강신명 전 경찰청장의 거짓말도 추가 확인됐다. 강 전 청장은 지난 6월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백씨의 사고 사실을 “9시 뉴스를 보고 알았다”고 밝혔다.

강 전 청장은 사고 당일 저녁 8시 전에 이미 사고 사실을 확인했을 것으로 보인다. 민중의 소리에 따르면 당일 오후 8시에 배포된 ‘상황속보 18보’에는 ‘오후 19시10분 SK빌딩 앞 버스정류장에서 70대 노인이 뇌진탕으로 바닥에 쓰러져 구급차로 호송 조치했다’는 내용이 적시돼있다. 오후 8시 전에 정보보고가 이뤄진 점에 비춰 경찰은 8시 이전부터 백씨의 부상을 인지했던 것이다.

▲ 민중총궐기 당시 경찰이 작성한 상황속보 18보에 ‘19시10분 SK빌딩 앞 버스정류장에서 70대 노인이 뇌진탕으로 바닥에 쓰러져 구급차로 호송 조치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민중의소리

이후 상황보고는 더 구체화된다. 오후 9시에 배포된 ‘상황속보 20보’에는 ‘백씨가 47년생이고 전남 보성 출신이라는 것과 서울대병원에서 뇌출혈 증세로 산소호흡기를 부착하고 치료 중’이라는 내용이 명시돼있다.

오후 10시 배포된 상황 22보에는 “서울대병원 부상자(백남기, 47년생, 남, 전남 보성) 관련” 항목 아래에는 SBS 등 기자 30여 명이 병원을 취재 중인 가운데 백씨가 뇌출혈 증세로 산소호흡기 부착해 치료를 계속하고 있으며 딸, 사위 등 가족 2명 및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5명이 도착해 대기 중이라는 내용이 적혀있다.

18일 발견된 문건은 경찰이 허위 사실을 발표해 온 점을 확인한 것으로, 향후 경찰의 의도적이고 조직적인 은폐 배경에 관심이 쏠릴 것으로 보인다.

▲ 지난 9월6일 서울중앙지법이 검찰에 발부한 압수수색영장 중 일부.

한편 민중의 소리는 ‘빨간우비 착용자’ 언급은 상황보고에 등장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빨간 우비 가격설’은 일간베스트 저장소 등 우익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제기되는 의혹이다. 지난 6일 서울대병원 압수수색을 위해 발부된 영장을 보면 검찰 또한 빨간 우비 착용자가 백시를 폭행했을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 확인된다. 빨간 우비 가격설은 불충분한 근거로 인해 ‘백씨의 사인을 가리기 위한 음모론‘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상황속보 문건은 집회·시위 현장 상황을 시간대별로 보고하기 위해 만든 경찰 내부 보고서다. 민중의 소리는 “민중총궐기 당시 서울지방경찰청 정보과 소속 경찰관 8명이 현장의 정보관들로부터 정보를 수집해 30여분 단위로 상황속보를 만들었고, 이는 경찰청장, 경찰청 차장, 경비, 수사, 교통국 등에 전파됐다”면서 해당 문건은 “총 26보로 구성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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