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정부가 보수언론의 ‘통제’를 벗어났다. 박근혜정부의 우병우 민정수석 유임이 대표적 예다. 보수언론권력의 상징인 조선일보는 우병우 해임을 요구했다가 ‘보복’을 당했다. 우 수석 일가 보유차량여부를 알아봐달라고 경찰에 부탁했던 조선일보 기자가 입건됐고, 이석수 특별감찰관과 통화한 조선일보 기자의 휴대전화가 검찰에 의해 압수됐다. 그리고 대우해양조선 수사과정에서 송희영 주필이 등장하며 조선일보는 부패기득권세력으로 낙인찍혔다.

‘기자 압수 수색은 우 수석 처가 땅 보도에 대한 보복인가’란 제목의 8월30일자 사설에선 분노와 당혹감이 느껴졌다. 그러나 같은 날 방상훈 사장은 송희영 주필의 사표를 수리해야 했다. 8월31일자 사설제목은 ‘언론인 개인 일탈과 권력 비리 보도를 연관 짓지 말라’였다. 보복을 하려거든 송희영 선에서 마무리 짓자는 의미였다. “청와대가 연일 익명의 관계자를 내세워 언론사를 공격하고 있다.” 9월1일자 사설에선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다.

▲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왼쪽)과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오른쪽). ⓒ연합뉴스
조선은 “청와대 음모론대로라면 이 나라의 모든 언론이 조선일보 송희영 전 주필의 지시를 받고 움직이기라도 했다는 것”이라며 날을 세웠다. “청와대가 언론 공격을 하겠다면 말릴 수 없지만 국정은 제대로 살피고서 해야 한다”며 격양된 모습마저 보였다.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다. 송희영 주필은 회사를 떠났고 방상훈 사장은 사보를 통해 공식 사과했다. 사주일가에 대한 수사가 진행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떠돌기 시작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할 말은 하겠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그럴 자격이 있느냐도 항상 돌아보겠습니다.” 9월8일자 양상훈 조선일보 논설주간 칼럼은 송희영 주필 파문에 대한 사과이자 청와대를 향한 ‘항복’ 깃발이었다. 9월 한 달간 조선일보 지면에서 ‘우병우’는 물론, ‘미르·K스포츠재단’ 관련 기사도 찾기 어려웠다. 조선일보는 납작 엎드렸다. 조선일보 독자권익위가 “미온적인 미르·K스포츠 재단 보도로 ‘靑과 화해’ 의혹을 불렀다”고 지적할 정도였다.

언론계의 관심사는 조선일보의 굴욕적인 항복보다 ‘조선이 언제 반격에 나설까’였다. 조선일보와 청와대의 전면전은 사실상 비박과 친박의 대리전 양상으로 흘렀다. 이 때문에 조선일보의 반격은 朴대통령의 레임덕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가 될 것을 보인다. 朴대통령과 우병우 민정수석은 언젠가 반드시 직에서 물러난다. 하지만 조선일보에는 임기가 없다. 이 싸움은 결국 조선일보의 승리로 끝날 것이다. 다만 모두들 그 시점과 계기가 궁금할 뿐이다.

양상훈 논설주간 칼럼을 끝으로 조선일보는 한동안 입을 닫았다. ‘우병우 민정수석 처가 땅 거래 보도는 대우조선해양 로비를 들어주지 않자 송희영 주필의 개인적 보복 차원에 나온 것이다’라는 청와대 측 주장을 믿는 이는 거의 없었지만, 송 주필의 일탈로 마주한 소나기가 자칫 세무조사나 사주일가 검찰조사 같은 장맛비로 이어지기 전에 ‘부패기득권세력’이란 비판을 감수하고 숨죽여야만 했다. 그러다 25일 만에 사설에서 ‘우병우’가 등장한다.

▲ 7월18일 조선일보 우병우 처가 땅 단독 보도 이후 '우병우'란 이름이 언급된 조선일보의 사설 제목 흐름. 우 수석의 사퇴를 요구하던 조선일보는 검찰 수사가 들어오니 언론탄압을 주장하다 9월의 상당기간을 숨죽여 보냈다. 이후 10월부터 우병우 특검을 요구하며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박근혜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디자인=이우림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한 달 동안 수리하지 않던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의 사표를 23일 갑자기 수리했다. 30일로 예정된 법사위 국정감사 출석이 물 건너갔다. 그러자 조선은 26일 사설에서 “이 감찰관은 우병우 감찰만이 아니라 미르‧K스포츠 재단에 대한 내사도 했다고 한다”며 “갑작스러운 사표 수리가 이 감찰관의 입을 막기 위한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조선이 이석수 전 감찰관의 국정감사 증인 출석을 고대하고 있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조선일보는 전경련이 미르‧K스포츠재단 해체를 선언하자 또 한 번 입을 열었다. 조선은 지난 1일자 사설에서 “청와대는 그동안 많은 의혹에 대해 무조건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만 할 뿐 아무런 설명을 한 적이 없다. 그러더니 갑자기 두 재단을 해산한다는 것을 보면 내부적으로 이대로 있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었던 듯하다”며 에둘러 비판했다. 이어 “두 재단이 해산된다고 해도 많은 의혹까지 함께 묻히진 않는다”고 주장했다.

조선은 이어 “청와대가 이석수 전 감찰관을 국기문란이라 몰아붙인 것도 우병우 민정수석 감찰 내용을 흘려서가 아니라, 이 전 감찰관이 미르‧K스포츠와 관련해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을 내사했기 때문이라는 보도도 나왔다”고 주장했다. 3일 이 신문 사설 제목은 ‘상식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들’이었다. 상식적으로는 우병우 수석도 교체돼야 하고, 미르재단 의혹도 청와대가 적극 해명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최순실’은 조선에게 반격의 기회를 주었다.

▲ 뉴스타파 보도화면 갈무리. 1979년 6월10일 한양대에서 열린 ‘제1회 새마음 제전’에서 촬영된 영상. 왼쪽 가운데가 최순실. ⓒ뉴스타파
조선은 미르재단이 서류를 대규모 파쇄 한 것을 두고 “검찰 수사에 앞서 증거를 없애는 중이란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고 비판하며 “자초지종을 설명하면 되지 왜 이렇게 무리한 일들을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며 朴대통령에 대한 답답함을 드러냈다. 이어 “검찰은 우병우 수석 처가와 넥슨 간 의혹에 대해 사실상 무혐의 처분할 뜻임을 슬쩍 흘렸다. 검찰이 미리 무혐의 결론을 내놓고 수사하는 것은 아닌가”라며 “상식으로 납득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모든 논란의 발단이 된 조선의 7월18일 단독보도는 ①넥슨의 뇌물 주식을 받아 구속된 진경준 전 검사장은 ②안 팔려서 골치였던 우 수석 처가 부동산을 넥슨이 사도록 중계해줬고 ③우 수석은 그 보답으로 진경준의 검사장 인사 검증을 봐줬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수사는 지지부진. 6일자 사설에서 조선일보는 우병우 수석에 대한 특검을 요구했다. 이 대목에선 한겨레 사설이라 해도 믿겨질 만큼 박근혜정부에 대한 ‘분노’가 느껴졌다.

“우 수석은 처가 부동산 매매에 관여한 바 없다고 했지만 매매 현장에 있었던 사실이 드러났다. 우 수석 처가 쪽은 매매가를 1173억 원으로 제시했지만 넥슨은 153억 원을 더 주고 샀다는 의혹도 나왔다. … 그런데도 오히려 우 수석 의혹을 조사하던 특별감찰관이 검찰 조사 대상이 되고, 최초로 의혹을 보도한 조선일보 기자는 명예훼손 혐의로 소환 조사한다고 한다. 이 지경이라면 검찰은 우 수석 수사를 즉시 그만두고 특검을 기다리는 것이 옳다.”

조선일보 기자가 검찰수사를 받은(9일) 이튿날인 11일자 조선일보는 우병우 민정수석을 정 조준했다. 황대진 정치부 기자는 기자수첩에서 우 수석이 ‘관례’를 이유로 국정감사 증인출석을 거부하고 있는 상황을 두고 지난해 1월 정윤회 문건 파문 당시 국회가 김영한 민정수석의 출석을 요구했을 때 청와대가 이를 수용했던 점을 언급하며 “현안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여야가 합의해도 관례에 따라 국회에 나가면 안 된다는 말인가”라고 지적했다.

12일자 사설에선 새누리당 친박계를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미르·K스포츠재단 논란과 관련해 “새누리당은 이 모든 것이 정치 공세라는 식이다”라고 꼬집으며 충분한 해명을 내놓지 않는 정부‧여당을 향해 “국회 무시가 아니라 국민 무시”라고 주장했다. 조선은 13일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과 인터뷰에서 김 의원 입을 빌려 “우 수석은 (국감에) 출석하지 않으려면 물러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선은 여전히 우병우 수석의 사퇴를 포기하지 않았다.

‘또 나온 檢 간부와 넥슨의 거래, 전부 우연이라니’란 제목의 14일자 사설에선 “왜 하필 검사 중에 넥슨과 거래를 한 사람이 이렇게 자꾸 나오는 것인지 의아하다”며 “이 거래들에는 공통적으로 진경준 전 검사장의 이름이 등장한다. 진 전 검사장은 88억이나 되는 넥슨 주식 보유에도 우 수석의 인사 검증을 무사통과해 검사장으로 승진했다. 이번엔 김주현 차장이 넥슨 김정주씨 부친 집을 산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며 우 수석 의혹을 또다시 강조했다.

▲ 박근혜 대통령. ⓒ연합뉴스
17일자 사설에선 朴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취임 후 최저치인 26%(한국갤럽)으로 내려갔음에도 “대통령의 일방통행 마이웨이는 바뀌지 않는다”고 직설했다. 조선은 “어차피 각종 추문은 정부가 바뀌면, 혹은 그 전이라도 특검 등을 통해 진상이 밝혀질 것”이라며 “이제 와서 새삼 국정 스타일을 바꾸지 않아도 좋으니 경제라도 최선을 다해 제대로 챙겨 달라”고 밝혔다. “박근혜 정부는 역대 정권 최악의 경제 성적표를 남길 가능성이 크다”고도 했다.

사실 조선일보의 ‘비박’ 노선은 오래됐다. 2007년 8월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이명박 후보의 도곡동 땅 의혹 제기에 나섰던 조선은 갑자기 사과문을 올리며 친이로 돌아섰고, 최태민-정윤회 등 이슈를 보도하며 박 후보에게 치명적인 기사를 내보냈다. 박 대통령이 이를 잊었을 리 없다. 신동아 10월호에 따르면 정부 초기 조선일보 부국장급 인사가 홍보기획비서관에 내정됐으나 “MB사람 아니냐”는 대통령 말에 날아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돌이켜보면 조선이 2013년 9월 ‘채동욱 검찰총장 혼외자’ 보도로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을 무마시킨 것도 대선개입 수혜자인 박근혜정부보다 대선개입 주체인 이명박정부를 위한 것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TV조선은 한겨레보다 앞서 미르‧K스포츠재단 관련 보도를 해왔는데 비박계의 지원 없이 불가능한 취재였다는 게 정설이다. 이런 가운데 월간조선 9월호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차기 정권을 반드시 내 손으로 창출 하겠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지난 15일 20대 총선 선거법 공소시효가 만료되며 비박계 의원들의 활동 폭이 넓어졌다. 우병우 수석의 출석여부에 관심이 모이고 있는 21일 국회 운영위 국정감사도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조선은 17일자 사설에서 “중앙선관위가 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 의원 12명 중 새누리당 친박 김진태·염동열 의원만 빼고 기소했다”며 검찰을 비판했다. 사설이 겨냥한 이는 송희영 파문을 언론에 폭로했던 김진태 의원이었다. 조선일보는 반격에 나섰다. 조선의 18일자 사설 제목은 ‘최순실씨는 어디서 무엇하고 있나’였다. 그리고 검찰은 이번 주 송희영 전 주필을 소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2라운드가 임박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