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4월25일. 철도강국 일본에서 일어난 일이다. 오사카의 JR후쿠치야마선 열차는 곡선 선로에 들어섰지만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열차는 출근길 승객들로 가득 차 있었다. 열차는 약간 기우는 듯 하더니 공중으로 솟구쳤고 전동차는 구겨졌다. 107명이 숨졌다. 

2분 때문이었다. 기관사는 정시보다 2분 지연될 열차시간을 회복하기 위해 곡선에서도 엔진 출력을 줄이지 않았다. 더 황당한 일은 사고 열차에 다른 업무를 보기 위해 탑승한 또 다른 기관사 두 명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은 인명구조에 나서지 않았다.

출근 중이었던 한 기관사는 서둘러 출근길에 나섰고 또 다른 기관사는 JR서일본 오사카 지사장의 강연에 동원됐다. 이들이 인간적이지 못해서일까. 박흥수 철도정책 객원 연구위원에 따르면 JR의 노동환경에서 기관사들을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저성과자로 분류되는 노동환경 때문이다. 

가령 JR서일본 소속의 하토리 기관사는 교토역에서 50초를 늦었다고 재교육에 회부됐다. 그는 2001년 9월에 자살했다. 이런 사람이 20명에 이르렀다. 2007년 일본 국토교통성은 “과도한 수익 위주의 기업 체질과 노동자 인권을 무시하는 기업 환경”이라는 사고 최종보고서를 발표했다. 

▲ 서울 군사차량기지에 지하철들이 서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하지만 이후에도 그닥 달라지지 않았다. 2011년 5월 사무캇푸역-신유바리 사이를 운행하던 특급 '수퍼 아오조라 14조가 탈선'했다. 터널 안에서 화염이 치솟아 79명에 부상을 당했다. 이후 JR 2대 전 사장이었던 나카지마 나오토시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서에는 “안전을 최우선으로”라고 적혀있었다. 

성과연봉제를 반대하는 철도노조의 파업이 20일째에 접어들었다. 정부와 코레일은 성과연봉제 반대 파업이 불법이라면서 성과연봉제는 고성과자에게 인센티브를 더 주는 방식이라고 홍보한다. 하지만 인건비 총액이 정해져있는 상황에서 누군가의 인센티브는 누군가의 마이너스로 연결된다.

이 과정에서 협업은 깨진다. 기관사는 열차의 상태가 어떻든 정시에 출발하고 정시에 도착해야만 저성과자로 낙인찍히지 않고 바퀴를 점검하는 노동자는 철도 레일이 부식됐든 아니든 바퀴만을 점검할 수밖에 없다. 돈을 쓰는 노동자는 효율성이 나쁜 노동자가 된다. 

철도뿐만이 아니다. 시민의 생명을 담당하는 공공병원에 성과연봉제가 도입된다고 생각해보자. 의료진은 자신의 환자가 곧 자신의 성과로 연결되기 때문에, 협업이 필요한 일에 쉽게 나서지 못한다. 혹여나 그 사이에 ‘내 환자’가 잘못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철도ㆍ건강보험노조 수도권 총파업 출정식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파업에 나섰던 서울대병원 한 간호사는 “병동에서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못 박았다. 서울대병원은 지난 14일 2017년까지 성과연봉제를 도입하지 않기로 노사가 잠정합의했다. 수익성 부대사업 축소와 공공의료 강화도 합의내용에 포함됐다. 18일 파업으로 얻어낸 결과였다. 

16일 코레일은 열차운행률이 94.3%밖에 되지 않는다며 승객들이 불편을 겪고 있고 화물운송에 차질이 빚어질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코레일에 따르면 운행이 줄어든 대표적인 열차는 새마을호(57.7%)와 무궁화호(62.7%)다. 언론은 승객 불편을 강조하는 보도를 쏟아냈다. 

하지만 외려 이 수치는 공공기관인 코레일의 민낯을 드러낸다. 무궁화호와 새마을호는 애초 수익이 나지 않는 적자 노선이었다. 그럼에도 공익성 때문에 운행을 해왔다. 반면 코레일은 수익이 나는 KTX노선은 100% 운행을 하고 있다. ‘강성노조’가 있는 공공기관의 현실이 이렇다. 

공공기관이 지켜야 할 가치는 효율성도 수익도 아닌 공공성이다. 2분 때문에 저성과자로 낙일찍힐 것이 두려워 곡선에서도 속도를 줄이지 않는 열차를 탈 것인지, 조금 늦어도 안전한 열차를 탈 것인지. 선택은 시민이자 승객인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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