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권익위원회가 신문사들의 이익단체인 한국신문협회의 요청에 의해 신문 광고영업에 관한 김영란법(청탁금지법)의 유권 해석을 언론에 유리한 방향으로 바꿀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권익위의 유권 해석이 청탁금지법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디어오늘 취재 결과 한국신문협회 산하 광고협의회는 지난 9월30일 청탁금지법 관련 간담회를 연 것으로 확인됐다. 이 자리에는 언론 관련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 청탁금지법 주무부처인 국민권익위원회 관계자도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문협회는 또한 10월6일 이사 간담회를 열어 회원사 의견을 수렴했다.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10월6일 간담회 자료에는 한국신문협회 측과 권익위의 논의 과정에서 권익위가 물러서는 듯한 대목이 여럿 등장한다. “권익위는 당초 ‘편집국 기자가 광고 등을 권유하는 경우 상대가 강압성을 느낄 수 있으며 부정청탁에 해당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지만, 최근 이러한 해석이 ‘편집국 기자 등 광고국 직원이 아닌 임직원이라도 정상적인 광고영업을 할 경우 법 위반으로 볼 수 없다’는 해석을 했다”는 내용이 대표적이다.

▲ 한국신문협회 간담회 자료.

일반적으로 청탁금지법은 ‘3(식사)·5(선물)·10(경조사비)’으로 잘 알려져 있으나, 언론이 청탁금지법 제재 사항 중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사안 중 하나는 기업 협찬에 관한 내용이다. 그동안 많은 기업들이 언론사가 주최·주관하는 행사에서 협찬 명목으로 금품을 제공했다. 이러한 금품 제공은 공식적인 광고·협찬 계약이 아닌 공문을 통한 협조요청으로 이루어졌다.

그간의 관행과 달리 청탁금지법으로 인해 이제 언론사가 협찬을 받으려면 ‘정당한 권원(權原)’이 필요하다. 권익위가 9월22일 발표한 ‘정당한 권원에 의한 협찬’의 구체적 요건에 따르면 절차적 요건과 실체적 요건이 모두 구비돼야 한다. 절차적 요건이란 공공기관(언론사 포함) 내부규정과 절차에 따라 공공기관과 협찬자의 투명한 절차에 따라 계약을 체결해야한다는 것이다. 실체적 요건이란 체결한 계약의 내용이 일방적이지 않고 협찬의 내용과 범위에 상응하는 대가관계(반대급부)가 존재해야한다는 것이다. 광고에 있어 반대급부란 지면 게재를 뜻한다.

▲ 국민권익위원회의 청탁금지법 Q&A 자료집 발췌.
▲ 국민권익위원회의 청탁금지법 언론사 대응매뉴얼 발췌.

신문협회는 간담회 자료를 통해 “청탁금지법 내용의 상당 부분은 기존 신문윤리강령과 크게 다르지 않고, 좀 불편하기는 하겠지만 관행의 변화를 통해 적응 가능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반면 △후원·협찬 금지 △공공기관, 지자체, 기업 등과의 공동 기획기사 제한 △민간 공익언론재단의 언론인 연수 및 저술지원 금지 등에 대해서는 “국민권익위원회가 관련 법률을 지나치게 확대 유추 해석한 사례로 충격이 클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를 표했다. 

관련기사 : 한국신문협회 “후원·협찬 제한은 신문발전 제약”

신문협회는 9월30일 간담회에서 이러한 의견을 전달했다. 간담회 자료에 따르면 권익위와 협회 산하 광고협의회 간담회에서 양측은 명확한 결론을 내린 것은 아니지만 후원·협찬의 여러 가지 형태와 관련해 상당한 접점을 찾았다.

간담회 자료에 따르면 ①행사, 포럼, 문화행사 등은 후원‧협찬사 노출 등 반대급부가 명확하기에 가능하고 ②신문사 광고 및 광고주 공동기획기사도 후원‧협찬사가 노출될 경우 가능하며(예: 이 기사는 ㅇㅇ기업과 공동으로) ③광고성 협찬(광고 대신 협찬금 제공)에 대해서 권익위에서 관행은 인정했으나 단 협찬사가 노출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신문협회는 “협찬후원자가 어떤 방식으로든 노출되기만 하면 권원이 있는 것으로 인정하겠다는 것”이라며 “‘실체적 요건’의 내용을 상당 폭 양보한 셈이다. 짧은 기간 동안에 권익위의 태도가 크게 유연해진 것”이라고 밝힌다.

나아가 신문협회는 간담회 자료에서 향후 과제로 “현재 기업홍보팀이 불안해하면서도 해도 되는 광고 협찬 후원조차 꺼리고 있는 실정이므로” “권익위의 완화된 태도를 회원사 및 광고협찬주에게 널리 알려 당장의 협찬 영업에 차질이 없도록 조치”해야 한다는 점을 제시한다.   

또 다른 대목은 ‘광고영업 및 구독권유’ 활동에 관한 내용이다. 애초에 광고영업이나 구독권유는 협찬과 신문제공 및 광고 게재라는 반대급부, 즉 권원이 존재한다. 문제는 편집국 기자나 데스크가 기사를 무기로 광고나 구독을 요구하는 경우가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에 해당하는지 여부다.

▲ ⓒ권범철 화백
신문협회 간담회 자료에 따르면 권익위는 당초 신문사들의 관련 질의에 대한 유권 해석에서 편집국 기자나 데스크가 광고 등을 권유하는 경우를 부정청탁으로 해석했지만, 최근 ‘편집국 기자 등 광고국 직원이 아닌 임직원이라도 정상적인 광고영업을 할 경우’ 부정청탁이 아니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자료에는 이 같은 해석의 출처로 ‘10월4일 권익위 청탁금지제도과 담당서기관’이 적시돼 있다.

물론 이러한 해석에는 ‘기사 게재 등을 빌미로 한 비정상적인 광고영업은 위반 소지가 크다’는 단서조항이 붙었다. 하지만 현실에서 정상적인 광고영업과 비정상적인 광고영업이 구별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 지배적인 관측이다. 

한 언론사 광고국 관계자는 “이런 유권해석이라면 바뀐 게 아무것도 없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기자는 기사라는 칼, 무기를 갖고 있다. 칼을 가진 사람이 주머니에 칼을 집어넣은 채로 ‘우리 신문 광고 3000만 원 부탁합니다’라고 하면, 부탁을 받은 기업 홍보실은 기사를 통한 보복이 두려워 여태까지 협찬이나 광고를 줘왔다”며 “그런데 (이런 해석은) 그냥 계속 기자들이 영업하라는 거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칼을 들고 있는 기자, 데스크, 논설위원들의 영업은 겉으로 정상적인 거래의 형태를 띤다 해도 상대편이 강압으로 느낄 수 있다”며 “권원 관련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을 기사라는 무기를 쥐지 않은 광고국장이나 광고부장, 사업국장 등으로 제한해야 한다. 그게 청탁금지법의 취지에 맞다”고 밝혔다.

또 다른 언론사 광고담당자는 “처음 청탁금지법이 시행될 때만 해도 각종 포럼을 준비하던 경제지들은 ‘청탁금지법 때문에 협찬 못 받는다’며 권원을 만들고 계약서도 만들고 그랬다”며 “그런데 권익위의 유권 해석이 이렇다는 이야기가 업계에 돌면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모양새다. 출입기자랑 데스크가 금융기관이나 기업에 전화해서 협찬 달라고 하고 있다”고 전했다.

오히려 기자 입장에서는 영업으로 더 내몰릴 수도 있다. 편집국 기자의 광고영업이 사실상 ‘합법’의 영역에 들어왔다고 해석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권익위가 법의 대상자인 신문사들의 요청에 의해 유권해석을 변화하는 일이 또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신문협회는 간담회 자료에서 “김영란법의 입법 취지는 공직자 개인의 부정행위를 막겠다는 것. 개인비리를 넘어 법인의 영업활동을 규제하겠다는 권익위 과잉해석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 개인 일탈을 막는 법으로 환원시켜야”라고 밝힌다. 이 대목에서 “문체부도 같은 입장”이라는 표현도 나온다.

또한 신문협회는 장기대응 과제로 법 개정을 제시했다. “민간인인 언론사 임직원, 사립교원을 억지로 ‘공직자 등’으로 분류해 적용대상에 포함시킨 것은 전형적 과잉입법”이므로 “언론인과 교원은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도록 정비해야”한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김영란법이 권력의 언론통제수단으로 작동할 것이라는 점. 언론자유와 국민의 알권리 침해에 관한 문제, 이것이 본질. 계속 문제기해야”한다는 내용도 나온다.

신문협회 관계자는 14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권익위는 협찬을 강제로 뜯어오는 것만으로 알고 있었고, (논의를 거쳐) 그게 아니라는 점을 인식했다. 구독권유 등은 정상적인 영업활동이라고 본 것”이라며 “계속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권익위는 해석이나 입장을 바꾼 것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권익위 관계자는 “권익위의 입장이나 해석이 바뀐 것은 없다. 처음부터 정당한 권원이 있으면 괜찮다는 입장이었고 그걸 구체화하는 것”이라며 “정상적인 광고영업을 하지 않는 부분은 이 법을 넘어서 이미 형법이나 다른 법상에서도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밝혔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