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우씨(가명·29)가 눈 앞이 보이지 않기 시작한 건 일을 한지 고작 3주 째였다. 김씨는 지난해 1월 알루미늄 판을 깎아 휴대폰 키, 뒷판 등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삼성전자 휴대폰 3차 납품업체였다. 야간조였던 그는 밤 9시경에 출근해 매일 11시간 가량 CNC 절삭기계 3대에서 가공업무를 처리했다. '알콜'이라 들은 증기가 쉼없이 뿜어져 나오는 기계였다. 출근 3주 째가 되던 2월22일, 김씨는 호흡곤란과 시력저하 증상을 보여 병원으로 실려갔다. 김씨의 오른쪽 눈은 완전 실명됐고 왼쪽은 90%가량 손상됐다.

"이때 적절한 조치를 취했으면 다른 환자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김씨를 두고 다른 메탄올 중독 재해자들이 한 말이다. '메탄올 중독 실명 재해'는 올해 2월 첫 피해자가 발생하며 사회적으로 알려졌다. 노동단체들은 은폐된 피해자를 우려하며 고용노동부에 수차례 전수조사를 요구했다. 고용노동부는 추가 확인된 피해자가 없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올해 10월, 두 명의 실명 피해자가 이미 발생한 사실이 시민사회단체로부터 확인됐다. 김씨는 그 중 한 명이다.

또 다른 피해자 정수영씨(가명·35)와 함께 김씨는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기자회견장에 섰다. 두 사람은 "나같은 피해자가 더 이상 안 나왔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자리에 섰다"고 말했다.

▲ 메탄올 급성 중독 실명 피해자 두 명이 지난 10월12일 오전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장에서 열린 '메탄올 실명 노동자 추가 확인 산재 신청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사진=손가영 기자

아무도 ‘위험하다’ 말해주지 않았다

김씨는 부천의 ㄷ업체, 정씨는 인천의 ㅂ업체에서 일했다. 모두 올해 2월 메탄올 중독 실명 피해자가 나왔던 삼성·LG전자 휴대폰 부품 3~4차 하청업체다.

올해 2월2일 ㅂ업체에서 메탄올 중독 산재 피해자가 발견됐다. 정씨는 불과 한 달 전인 1월16일 시력을 잃었다. 알루미늄 절삭 일을 한 지 4개월 째였다. 업체에선 직원 6명이 30대 가량의 CNC 기계를 맡아 알루미늄을 잘라냈다. 정씨는 "알콜 냄새가 항상 심하게 났다. 창문으로 가 바깥 공기를 쐬기도 했다"면서 "회사가 준 일회용 마스크로는 안될 것 같아 직접 일반 마스크를 사서 꼈다"고 말했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이 쓰는 물질이 무엇이고 얼마나 위험한지 들은 적이 없다. 김씨는 "(용액이) 알콜이라고들 말했다. 냄새도 알콜류 냄새였다"면서 "안전교육 받은 적은 없다. 파견업체 통해 공장에 간 날 바로 일을 시작했다. 작업 두 세번 지켜보고 바로 따라하는 식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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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폐된 공간에서 수십대의 CNC 기계가 메탄올 증기를 동시에 뿜어냈지만 두 사람에게 제대로 된 보호장비는 없었다. 김씨는 일반용 마스크, 정씨는 일회용 마스크만 지급받았다고 말했다. 메탄올같은 유해화학물질의 경우 산업안전보건법은 국소배기장치 등을 설치할 것을 의무사항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해당 업체가 이를 지키지 않은 사실이 올해 초 확인됐다. 두 사람은 산재 보험에도 가입돼있지 않았다.

“메탄올 산재, 불법 파견 노동 그만하라는 신호”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공동대표는 기자회견장에서 메탄올 중독 산재는 파견노동에 대한 '카나리아의 울음'이라고 말했다. 탄광의 산소농도를 확인할 수 없는 광부들은 카나리아의 울음을 보고 산소가 부족한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다. 즉 메탄올 산재는 파견노동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울음'이라는 것이다.

이 공동대표는 "이 사건은 누가 보더라도 파견문제 때문이다. 제조업 파견노동자는 파악조차 힘들고 노동의 질도 관리가 전혀 안된다"면서 "(파견노동이) 계속 이런 식으로 쓰이면 안된다는 메세지를 보여준 사건이다. 고용노동부는 이를 명심하고 정책을 펴야 할 것"이라 밝혔다.

가장 큰 문제는 고용노동부가 이들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어떤 업체는 파견 노동자를 3개월 단위로 교체했다. 평균 100명의 노동자가 근무했다면 일년에 400여 명 노동자가 메탄올에 노출됐다는 얘기다. 그러나 고용노동부가 조사한 명단은 3개 업체의 266명에 불과하다"면서 "노동부는 파견업체도 관리하지 못했다. 해당물질 사용장도 관리하지 못했고 몇 명이나 이 일을 했는지 파악 못했다"고 비판했다.

사고가 난 지 1년 가량이 지난 김씨도 고용기록이 남지 않은 점이 걱정이다. 산재보험 신청을 할 때 해당 업체에서 근무를 한 사실이 입증돼야 하기 때문이다. ㄷ업체가 파견노동자였던 김씨의 고용기록을 가지고 있을지 의문이고 해당 파견업체에도 기록이 남아있는지 모르는 상황이다.

다행히 김씨는 사고 당시 함께 근무한 친구가 있었다. 이는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다. 이 공동대표는 "파견노동자들은 서로의 이름, 연락처도 모르고 대화도 하지 않는게 일반적"이라면서 "섬처럼 외따로 떨어져있다. 연결 끈이 다 끊겨 있다"고 말했다. 김씨 또한 "파견 일자리는 좋은 일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다치고 나니 알게 됐다"면서 "일하는 사람이든 시키는 사람이든 '안 나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안 나와도 '다쳤네. 아프네' 이런(이렇게 간과하고 넘어가는) 정도"라고 말했다.

"어디를 찾아가야 할 지 몰랐다." 왜 다른 곳에 도움을 구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대한 김씨의 답이다. 김씨는 "회사 문제라고 생각은 했지만 변호사를 사기엔 그 과정이 길고 어려우니 겁이 났고 병원에서도 '회사때문'이라고 확실하게 말하지 않았다. 4대 보험에도 가입 돼 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메탄올 산재 사건은 올해 초 집중적으로 보도됐음에도 이들은 실명 후 수 개월이 지나고 나서야 지인을 통해 들었다. 산재를 의심한 지인이 노무사 상담을 권유했고 이들을 만난 노무사가 '노동건강연대'에 제보를 해 이들의 피해도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추가 피해자를 찾는데 노력해왔던 노동건강연대의 이 공동대표는 "시력 손실이라는 게 굉장히 치명적인 사건이라 이유를 알고자 하는 (피해자의) 액션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다"면서 "영문은 모르지만 상황을 그냥 인정하는 파견노동자가 상당히 많을 것"이라 지적했다. 그는 또한 "사회적 자원을 가지지 않은 한 개인이 어떻게 할 수 있는지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면서 "회사, 동료, 언론 등 정보원이라던가 의지할만한 곳이 전혀 없는 게 파견노동자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 노동건강연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한국노동조합총연맹 등 9개 시민사회단체는 2015년 3월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불법파견 노동자 메틸알코올 중독 실명 방치 박근혜 정부와 LG·삼성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추가 피해자 규모 아무도 알 수 없어, 전모파악 나서야

김씨는 사고가 난 후 다른 회사를 다니던 친구로부터 ㄷ업체에서 한 중국인 노동자가 실명했다는 소문을 전해 들었다. 노동건강연대는 이 소문을 확인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고 지적한다. 파견노동자는 회사를 나오지 않으면 찾을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 피해자도 '은폐된 피해자'일 가능성이 있다.

회사 측의 의도적 은폐 가능성도 충분하다. 정씨는 합의를 종용당한 경우다. 입원하고 예닐곱 일이 지났을 무렵, 정씨를 찾아온 ㅂ업체 관계자가 '산재신청을 해도 어차피 안되니 합의를 하자'며 산재신청과 합의 중 둘 중 하나만 택하라고 요구했다. 회사가 제시한 초기 합의금은 200만 원이었다. 피해에 견줘 "말이 안 되는 금액"이었다.

정씨는 "회사의 지속적인 연락에 가족들이 심하게 압박을 받았고 400만 원 정도에 합의를 했다"고 말했다. 그는 "4대 보험에 가입이 안돼이있을 뿐더러 메탄올 때문에 다친지도 몰랐다"며 뒤늦게 산재신청을 한 이유를 말했다.

“고용노동부, ‘어렵다’ 말고 파견노동자 찾아 나서라”

이들은 철저한 조사와 제대로 된 재발방지를 요구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전모 파악'이 가장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사진=노동건강연대 카드뉴스 중

이 공동대표는 "고용노동부는 파견노동자 파악이 어렵다고 얘기하지만 방법이 없는 게 아니다. 건강보험 자료를 역추적한다던가 다양한 루트를 통해 인적 사항을 조사하면 된다"면서 "상당한 에너지가 투입되지만 불가능하지 않다. 모든 사건 원인은 전모 파악 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발방지책은 제조업 파견노동에 대한 전면적인 정책 전환이 이뤄져야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정부의 파견근로 정책 기조는 이와 반대다. 현재 고용노동부는 '파견근로 확대'를 기조로 한 파견법(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한정애 의원은 "파견 확대해야지 좋은 일자리 생긴다고 하는데 누구에게 좋은일자리인가? 파견업주, 사용사업자, 휴대폰 파는 대규모 전자회사인가"라 물으며 "노동부가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대책을 마련하고 그 안을 국회에 제출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김씨와 정씨는 12일 노동건강연대의 도움을 받아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보험을 신청했다. 이들은 "피해자가 있으면 더 밝혀졌으면 좋겠다", "이제 문제를 알았으니 구체적인 방법으로 해결해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간담회를 마무리했다.

노동건강연대는 추가 피해자를 찾아내기 위해 방법을 고민 중이며 고용노동부가 제대로 된 전모 파악과 대책 마련에 나서게끔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공론화할 것이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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