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소야대 국면에 새누리당이 여전히 적응하지 못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총선이 끝나고 6개월이 지났지만 새누리당이 여전히 양보와 타협의 정치보다 야당을 비난하고 압박하는 방식을 구사하면서 의견을 관철시킬 뒷심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12일 국회에서 연 국정감사대책회의에서 “지난 반 년 동안 정치가 한 발이라도 진전한 것인지 송구스럽다”면서 애꿎은 국민의당을 향해 “민주당 2중대 였다” “더 과격하고 좌파적인 민주당의 선봉장”이라고 맹비난했다.

새누리당이 지난달 말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 제출 직전까지 국민의당에 ‘친절’했던 것과 비교하면 180도 달라진 태도다. 새누리당은 당시 해임건의안 제출에 적극적이던 더불어민주당을 설득하는 대신 이견이 있는 국민의당 이탈표를 통한 해임건의안 부결을 계획했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12일 국회에서 열린 국감 대책회의에서 박명재 정책위의장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해임건의안이 무난하게 통과되면서 새누리당의 기대는 무너졌다. 새누리당에서는 필리밥스터를 비롯해 국정감사 보이콧과 이정현 대표의 단식 등 무리수가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당 내 의견 조율 과정도 거칠었다. 당 내에서는 강경파 목소리에 끌려간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국정감사 보이콧은 새누리당 강성 친박의 목소리가 요구가 강했다. 국감에 복귀해야 한다는 김무성 전 대표와 유승민 의원 등의 요청에도 강성 친박파는 완고했다. 심지어 국감에 복귀하겠다는 김영우 국방위원장을 감금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김재수 장관이 자진 사퇴를 해야하는 게 나았다는 의견을 보인 이혜훈 의원에게는 ‘해당행위’라는 전화 융단폭격이 날아들었다.

무리하게 시작한 이정현 대표 단식 역시 무의미하게 끝났다. 정세균 의장 사퇴라는 목표를 내세웠지만 의장은 물론 야당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정세균 의장 사퇴는 결국 사과 요구로 축소됐지만 이 나마도 명분까지 잃은 후였다.

새누리당이 이정현 대표 단식 철회와 국감 복귀 카드로 내세웠던 정세균 국회의장의 중립의무 명문화는 꺼내놓지도 못하는 사라졌다.

새누리당은 국감 복귀 이후에도 야당의 공세에 마땅한 대응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국감 복귀 첫날인 지난 4일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가 내놓은 ‘국가정보원의 박근혜 대통령 사저 준비’ 폭로에 ‘비난’으로 맞섰을 뿐이었다.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국정원의 청와대 복덕방’ 발언과 박근혜 대통령의 국군의날 발언을 비판한 박지원 비대위원장을 겨냥해 ‘막말’을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야당 의원들은 박지원 비대위원장을 대신해 김진태 의원을 징계위에 제소했고 새누리당 초선 의원은 박지원 비대위원장을 징계위에 회부하면서 변죽만 울리는 갈등 국면을 이어가고 있다.

▲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9월30일 국회에서 미르재단 관련 의혹을 제기한 신문 1면 인쇄 화면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지금까지 국면을 정쟁으로 본다면 새누리당이 자존심을 조금 구긴 정도로 볼 수 있다. 정치적인 공방 중에 실기할 수도 있다. 이정현 대표의 리더십에 스크래치가 났지만 일각에서는 해임건의안을 거부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부담을 덜고 일시적이나마 비선 실세 의혹에서 시선도 돌리는 정치적인 효과를 거뒀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앞으로 새누리당에 다가올 사건은 실제적인 피해를 입힐 가능성이 크다. 먼저 21일 예정된 국회 운영위원회의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증인 채택 문제다. 청와대는 민정수석이 국감에 출석한 전례가 없다고 반대했지만 야당은 민주당 정권 시절 3차례 민정수석이 국정감사에 출석했던 사례를 찾아내 반박했다.

국회 운영위원장을 맡은 정진석 원내대표 역시 “민정수석을 국감 증인으로 채택할 수 있다”던 입장에서 “상황이 바뀌었다”며 민정수석을 옹호하고 나섰다. 말 바꾸기를 통한 청와대 지키기라는 비판을 안고 가야할 상황이다.

새누리당이 우병우 민정수석 증인 채택과 ‘딜’할 것으로 알려진 카드 역시 부실하다. 김도읍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11일 운영위 국감 증인 채택을 위한 여야 3당 원내수석부대표 회동에서 정세균 의장의 과소비를 문제 삼으며 현대백화점 사장을 증인으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세균 의장에게 화살을 돌렸지만 야당이 제기한 청와대의 비선 실세 국정 농단 논란에 비하면 무게감이 떨어진다.

국감이 끝나면 곳곳이 지뢰밭이다. 더불어민주당이 법인세 인상안을 꺼내들었고 국민의당 역시 공감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공약이었으나 재원을 지자체에 떠넘겼다는 비판을 받으며 매년 갈등을 빚었던 누리과정 예산도 암초로 남아있다.

▲ 더불어민주당 박완주, 국민의당 김관영, 정의당 추혜선 의원이 10일 국회 의안과에 야 3당의 국회의원 김진태 징계안을 제출하기 위해 의안과를 들어서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누리과정 재원인 지방교육재정 교부금 규모 자체를 늘리는 것을 1차 목표로 하고 있다. 당 안에서는 지방교육재정 교부금과 별도로 누리과정을 위한 특별회계를 마련하는 법안도 내놓는 등 대안까지 마련해 놨다.

새누리당은 현재 지방교육재정 교부금 규모에서 일부를 누리과정 예산으로 강제하도록 하는 법안을 내놓고 있다. 한선교 의원은 지난 8월 이런 내용을 담은 지방교육정책 지원 특별회계법안을 발의했다.

정세균 의장은 예산안 부수 법률안을 “법과 원칙대로 지정할 것”이라는 입장을 재차 강조하고 있어 새누리당 입지는 더욱 좁아지고 있다. 예산부수법안으로 지정되면 예산안 법정 처리 기한인 12월2일 본회의에 자동으로 부의된다. 논쟁 중인 법안이 본회의 표결에 부쳐지면 새누리당 반대와 상관없이 과반을 차지한 야권이 힘을 합쳐 통과시킬 수 있다.

야당이 공감하는 법인세 인상안에 대해서도 새누리당만 반대하고 있다. 이날 새누리당 국감 대책회의에서는 정진석 원내대표와 박명재 정책위의장은 국민의당을 맹비난하고 나섰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김성식 국민의당 정책위의장을 향해 “한나라당 정조위원장 때 법인세 인하를 주장했다”고도 비판했다.

이용호 국민의당 원내대변인은 새누리당을 향해 “그러면 새누리당 2중대를 하라는 말이냐”며 “명분 없는 이정현 대표의 단식, 최순실을 보호하기 위한 방탄 국감에 나선 새누리당이 먼저 국회를 마비시키는 청와대의 2중대의 역할을 그만두길 바란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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