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백남기 농민의 사망진단서 오류 논란과 관련된 서울대 병원 관계자들이 처음으로 국정감사에 섰다. 백선하 교수를 향한 야당의 논리적·윤리적 비판이 쏟아진 가운데, 백선하 교수는 "오로지 주치의만이 백씨의 사망진단서를 쓸 자격이 있다"면서 "사망진단서를 수정할 생각이 없다"고 주장했다.

백씨 주치의였던 백선하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 서창석 서울대병원장, 이윤성 서울의대 법의학자 등은 11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사망진단서 논란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 10월11일 오전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백선하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가운데)와 이윤성 서울의대 법의학과 교수(백 교수 오른쪽), 서창석 서울대병원장(백 교수 앞).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백 교수와 서울대병원은 사망진단서 수정은 없을 것이라 단호히 밝혔다. 백 교수는 "사망진단서 작성은 317일간 백씨 진료를 맡아온 주치의한테 맡겨진 신성한 책임과 의무이자 권리"라면서 "백씨는 급성 신부전증의 합병증인 고칼륨혈증에 대해 꼭 받아야 하는 치료를 받지 못해 심장정지가 왔다"고 말했다.

백씨가 사망한 지난달 25일 "진료부원장 신찬수 교수님, 지정의 백선하 교수님과 상의해 사망진단서 작성함"이라 적힌 의무기록에 대해 백 교수는 "외압은 전혀 없었다"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백씨 의무기록에는 진료부원장의 개입 정황이 구체적으로 확인된다. 지난달 22일 백씨 의무기록지엔 "진료부원장(내과 신찬수 교수님)실에 T. 2200(내선번호 추정)에 환자 신기능 감소 및 소변량 감소에 대해 보고드림. 진료부원장님께 말씀드리겠다고 전해 드림"이라고 적혀있다. 9월24일 ㄱ전공의는 "진료부원장 신찬수 교수님과 환자상태에 대해 논의함. 현재 승압제 사용 반드시 필요하다 의견 나눔”이라고 기록했다.

사망 직전 '진료부원장 신찬수 교수님의 지시에 의해 승압제를 사용했다'는 기록도 남겨져있다. 백씨 유족은 병원 측에 승압제 등 연명치료제 거부 의사를 명확히 밝혀 왔다.

이와 관련해 백교수는 "(사망당일) 진료부원장에게 사망 통보를 한 것이지 다른 얘긴 없었다"면서 "내가 판단해서 내가 결정했다"고 해명했다. 백 교수는 '누가 병사라고 결정했나', '진료부원장과 상의했나', '진료부원장과 상의한 적 없나' 등 거듭된 질문에 "내가 판단해서 내가 결정했다"고 반복해서 대답함으로써 의원들로부터 빈축을 사기도 했다.

백 교수는 경찰과는 만난 적도, 통화한 적도 없다고 강조했다. 선행사인이 물대포로 인한 외상이 맞냐는 질의에 백 교수는 "나는 확인을 못했다"고 답했다.

▲ 고 백남기 농민의 9월25일 의무기록. 사진=백남기 투쟁본부 제공

백 교수는 자신을 '317일 동안 백씨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 주치의'라고 강조했다. 언론 등을 통해 나오는 비판은 "일부만의 진료에 참여하였던 의료인, 사망 후 2주도 되지 않는 기간에 환자 진료에 전혀 참여한 적 없는 의료인은 환자의 입원부터 사망에 이를 때까지의 전 과정을 주치의만큼 알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는 "확인되지 않은 수많은 말들, 하지도 않았음에도 했다고 버젓이 활자화돼 나오는 말들 앞에서 개인적으로 커다란 무력감을 느낀다"면서 지난달 9일 의무기록에 '물대포를 맞아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라 적은 ㄱ전공의는 '28일 간 백씨를 지켜 본 전공의'일 뿐이라 지적했다.

102명의 서울의대 재학생이 의료인의 윤리를 강조하며 사망진단서 오류를 비판한 데 대해 백 교수는 "의대 학생들이 성명서 발표 전 어떻게 된 영문인지 자초지종을 나에게 들었어야 하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한다"면서 "의사의 본분은 사망진단서를 잘 쓰는 것이 아니라 환자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 밝혔다. 서울의대 동문 등 전문의들의 '비겁한 판단'이라는 비판에 대해서 그는 "그렇게 생각하나보다. 잘 모르겠다"며 간과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윤성 법의학자 "백선하 사망진단서 숙지 못 해"

지난 1일부터 3일까지 사망진단서 관련 서울대병원 특별조사위원장을 맡았던 이윤성 교수는 "백선하 교수는 사망진단서를 제대로 숙지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사망진단서에 두 가지 오류가 있다"고 지적했다.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학생 102인이 지난달 30일 고 백남기 농민 빈소가 차려진 서울대학교 장례식장 3층에 서울대 병원의 사망진단서 오류를 비판하는 성명서를 붙였다.

이 교수는 첫 번째로 "사망 원인은 선행 원 사인에 의해 결정하는 것"이라 말했다. 연명의료를 지속했든 하지 않았든 원 사인이 외상성이라면 사망종류를 '외인사'로 기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백 교수는 백씨가 유족의 연명치료 거부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급성신부전의 합병증인 고칼륨혈증이 발생했고 이 결과 심폐정지로 사망했다 판단하고 있다. 백 교수는 유족이 연명치료를 지속해 백씨가 적절한 치료를 받아 사망했다면 '외인사'로 기재했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두 번째는 심폐정지를 직접 사인에 쓸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고칼륨증이면 심정지만 써야 한다. 폐는 이미 훨씬 전에 멈췄기 때문에 폐정지는 직접 사인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지난 3일 특별조사위원회(사망진단서 논란에 대한 서울대학교 병원-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합동 특별조사위원회) 결과 발표 기자회견에서 심정지 등과 같은 '사망현상'은 직접 사인에 기재하지 않는 게 원칙이라고 말한 바 있다.

백 교수는 정면 반박했다. 그는 "사망의 직접적 원인을 쓰는 게 진단서의 요체"라면서 "백씨의 직접 사인은 고칼륨혈증에 의한 갑작스러운 심폐정지다. (이 교수) 말처럼 자가호흡 없었기 때문에 인공호흡기 의존하고 있었고 심장정지가 이뤄져 사망했지만 백씨 사망의 직접 원인으로 기술하기 부족하다 생각해서 심폐정지라 기술했다"고 해명했다.

'법의학자들이 잘못 판단한 것이냐'는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백 교수는 "오로지 주치의만이 백씨의 사망진단서를 쓸 자격이 있다"고 답했다.

‘눈 주변 멍’ 강조하는 새누리당, 물대포 책임론 물타기

야당은 시종일관 사망진단서와 관련된 의혹을 다룬 반면 여당은 부검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논의를 이끌었다. 연명치료 중단으로 병사했다는 백선하 교수를 옹화하는 논의도 눈에 띄었다.

염동열 새누리당 의원은 노골적으로 '폭행'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는 사고 당시의 백씨 눈 주변의 멍을 언급하며 '어느 정도 시간 지나면 멍이 나타나는가', '물대포에 맞아 멍이 생기는가' 등을 질의했다. 같은 당 나경원 의원도 "후두골 측두골 등 일곱 군데 광범위한 골절소견이 관찰된다"면서 "물대포에 의한 안면골절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생길 수 있는 것인지 설명해달라"고 요구했다.

▲ 근거없는 의혹을 퍼뜨린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는 웹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의 빨간우의 폭행설 게시글.

이는 물대포가 백씨 사인으로 지목되는 여론을 분산시키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물대포가 아닌 다른 수단이 백씨를 중태에 빠뜨렸다는 논리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의원들 질의는 '일간베스트 저장소' 등 여권 성향이 높은 커뮤니티 사이트 중심으로 제기된 '빨간 우비를 입은 시민이 백씨를 가격했다'는 설과 일맥상통한다. 같은 당 김진태 의원은 지난해부터 “빨간 우비 청년이 백씨를 덮쳤다”고 의혹을 제기해왔다.

백 교수가 '(물대포로 인한 골절 여부는) 사법부가 판단할 것‘이라 대답하자 나 의원은 "역시 부검을 하면 정확하단 것인가"라 질의했다. 나 의원은 이윤성 교수에게도 “(백씨의 의식불명이) 물대포 압력 때문인지, ’빨간 우의‘ 때문인지 여러 의견들이 많다. 부검하면 명확히 밝힐 수 있느냐”고 물었고 “보장은 못하지만 밝힐 노력은 다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답을 이끌었다. “부검은 꼭 필요하다고 보느냐”는 나 의원의 이어진 질문에 이 교수는 “그렇다”고 답했다.

이장우 의원은 환자를 끝까지 살리는 것이 의사의 책무라고 강조하며 간접적으로 백 교수의 논리를 강화했다. 이 의원은 "아버지가 사고 때문에 급성 경막하 출혈로 뇌수술을 두 번 했다. 회생불가능하다고 두 번씩이나 말했지만 의사는 끝까지 치료해보자고 했다. 일주일 버티다 돌아가셨다"면서 "가족이라면 '회생할 가능성이 있다면 끝까지 최선을 다해보자' 이랬을 텐데. 가족들이 그냥 백씨의 유지를 받들자고 했다는 게 (이해가 안 간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이어 '가족도 아닌 손아무개 카톨릭농민회 회장이 왜 사망진단서를 요구하냐' 물으며 백남기 투쟁본부 흡집내기도 시도했다. '순수한 가족'과 '비순수한 시민단체'를 구분하는 대목으로 읽힌다.

백씨는 카톨릭농민회 소속 회원이다. 백씨 유족은 지난해 11월부터 지난 7월까지 8개월여 간 연명치료를 지속해오던 중 사망 2개월 전인 7월17일부터 심폐소생술, 신장 투석 등 적극적 연명치료를 중단했다.

한편 이날 서울대병원장은 무책임한 답변 태도로 의원들의 질책을 샀다. 서창석 병원장은 '의료인 입장에서 백씨 사인을 외인사로 보느냐'는 질문에 "내가 말 할 입장이 아니"라고 답을 회피했다. 서 병원장은 "사망진단서 변경 권한은 의료법에 따라 직접 진찰하거나 검안한 의사에게 있다"며 "백씨에 대한 전 진료과정도 적절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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