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멘토로 알려진 고 최태민 목사의 다섯째 딸 최순실씨가 뉴스에서 사라졌다. 당초 최씨는 미르-케이스포츠 재단 설립에 깊게 관여한 것으로 나왔지만 그 자리를 대신해 차은택 CF감독에 눈이 쏠리고 있기 때문이다.

차 감독은 창조경제추진단장과 문화창조융합본부장으로 발탁돼 문화계 황태자로 군림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문화계 인사에 관여하거나 그의 영상제작업체와 관련돼 정권으로부터 이득을 취한 내용도 끊이지 않고 나오고 있다.

최순실씨가 사라졌다

이에 반해 나비 효과의 날개짓을 일으켰던 최순실씨는 행적조차 묘연하다. 최씨는 미르-케이스포츠 재단 의혹의 파장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최초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최씨가 다녔던 마사지센터의 원장을 지낸 정동춘씨가 케이스포츠 재단의 2대 이사장에 오른 것이 확인됐다. 정동춘씨와 함께 마사지센터를 운영했던 이모씨도 최순실씨로부터 이사장직을 제안받았다고 털어놨다.

단 하루만에 설립 허가를 받았고, 서류조차 미비한 것으로 드러났지만 대기업으로부터 770억원을 모금한 배경에 재단 설립 이전부터 관여해온 최씨가 의혹을 받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미르 케이스포츠 재단-문화계 사업, 그리고 차은택 감독으로 이어진 커넥션 의혹이 최순실씨의 의혹을 가려버리는 착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최씨는 재단 설립 초기 관여한 행적으로만 보면 그가 의혹의 정점에 서 있지만 최씨와 친분을 맺고 있었던 차은택 감독이 의혹의 몸통이 돼버린 상황이다.

최순실씨가 의혹의 레이더망에서 벗어나 있는 것은 오히려 비선 실세로서 행적을 철저히 드러내지 않고 활동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복디자이너 김영석씨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그가 최씨와 직접적으로 접촉한 몇 안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김영석씨는 최순실씨로부터 직접 의뢰를 받아 박근혜 대통령의 한복을 제작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해 조응천 의원은 박 대통령이 취임식 때 입은 340만원짜리 한복을 최씨가 김씨에 주문했고, 직접 박 대통령에 전달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김영석씨도 조선일보 자매지 <SENIOR 조선>과 인터뷰에서 "대통령의 측근이 찾아와 옷을 맞추고 가긴 했지만 취임식 당일까지도 그 옷을 입을 줄은 나 역시 알 수가 없었다"면서 "언론 보도를 통해 내가 지은 한복을 골라 입었음을 알았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본래 <SENIOR 조선>는 "대통령이 찾아와 옷을 맞추고"라고 기사를 내보냈지만 "대통령의 측근이 찾아와 옷을 맞추고"라고 정정하면서 오히려 대통령 측근의 정체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했다.

김영석씨가 대통령 한복 제작자로 이름을 알렸던 배경에 '대통령 측근'이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김씨는 미르 재단의 이사에 이름을 올렸다. 모두 최순실씨와 관련돼 있다. 김씨는 차은택 감독과 함께 문화융성위원회 1기 전문위원으로 활동했고 지난해 10월 미르재단 1기 초대 이사에 이름을 올렸다. 김영석씨는 지난 2014년에는 최씨의 전 남편이었던 정윤회씨와 접촉한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지난 2014년 8월 대기업 후원으로 열린 독도콘서트(박근혜 대통령 팬클럽 주최)에서 정씨와 함께 김영석씨가 모습을 드러낸 바 있다. 정씨와 최씨를 모두 접촉했던 김영석씨가 어떤 식으로든 비선 실세의 실상을 알고 있을 것이라는 추론이 나오는 이유다.

대통령 한복 제작자로 이름 날린 김영석 디자이너

우연이라고 보기 힘든 이 같은 행적 때문인지 김씨는 언론을 피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까지만 해도 김씨는 대통령 한복 디자이너로 활발히 대외 활동을 했다. 한복세계화를 부르짖으며 한복 외교를 강조했던 박근혜 정부에서 대통령의 한복을 만들었던 그의 특별한 이력은 빛을 발할 수 밖에 없었다.

지난해 9월 '광복 70주년 기념 한복특별전-한복, 우리가 사랑한'이라는 이름으로 열린 청와대 사랑채 특별전시회에서도 2013년 취임식 만찬 당시 입었던 한복 뿐 아니라 숭례문 복구기념식, 한미동맹 60주년 기념 만찬 때 입었던 한복 등 김씨가 제작한 박근혜 대통령 한복 세벌이 전시됐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직접 전시회를 관람했고 한복 세계화를 위해 노력해줄 것을 당부했다. 이 자리에 김영석씨도 한복을 입고 참석했다. 청와대 사랑채에서 열린 전시회는 한복진흥센터가 주관했다. 한불수교 130주년 프랑스 장식 미술관에서 열린 전시회도 한복진흥센터가 주관했는데 김씨가 제작한 대통령 한복이 전시됐다. 김씨는 해당 전시회에 한복 디자이너로 참석했다.

한복진흥센터는 지난 2014년 3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의 부설기관으로 출범했다. 한복진흥센터는 박 대통령이 한복을 입고 해외 순방에 나서 한복 외교를 선보이면서부터 출범에 탄력을 받았다. 한복 연구와 사업을 전담하는 기구로 한복진흥센터가 출범하자 예산이 수억원으로 늘어났다. 올해 문화체육관광부 예산 집행 계획만 보면 한복의 날 행사 개최와 민간단체 한복 사업 지원, 국제행사 한복 홍보 등에 21억 3천만 원이 쓰여질 예정이다. 한복진흥센터로 직접 지원되는 예산도 3억 6천만원이다. 

한복진흥센터를 관장하는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의 이사진에 광고 쪽 인사가 포진돼 있는 것도 눈에 띤다. 최정철 진흥원 원장은 LG 애드 국장 출신이다. LG애드 최고운영책임자였고 현 HS 애드 대표인 김종립씨도 비상임이사에 이름을 올렸다. 차은택 감독과 함께 국가문화융성위원회 위원으로 이름을 올린 전용일씨도 진흥원의 비상임이사다.

미르재단과 연관돼 문제가 되고 있는 문화창조융합벨트라는 이름으로 한복 사업도 추진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콘텐츠진흥원, 해외문화홍보원,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등 9개 기관이 전통문화콘텐츠를 포함한 우수문화상품과 융복합 문화콘텐츠 개발 및 해외진출을 위해 적극 협력하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정리하면 김씨는 최초 박 대통령 '측근'으로부터 의뢰를 받아 대통령의 한복을 제작했고, 이후 박 대통령은 공식석상에 김씨가 제작한 한복을 입고 있다. 각종 전시회에 김씨가 제작한 대통령 한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한복업계의 숙원사업이었던 한복진흥센터가 설립되고 한복이 전통문화콘텐츠로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의 하나로 자리잡는 등 박근혜 정부에서 한복의 위상 자체가 높아졌다. 덩달아 김씨의 이름값도 높아졌다.

▲ 지난해 10월 청와대 사랑채에서 열린 한복 패션쇼를 관람 중인 박근혜 대통령.

한복 제작 업계에선 ‘디자이너’ 김영석씨에 대한 평가가 엇갈린다. 한복 2세대인 A씨는 "한복 1세대인 허영 선생님 밑에서 잠깐 바느질을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장사 수완이 좋아서 신라호텔로까지 입점했다"고 말했다. A씨는 "청와대 쪽에서 들은 얘기로 대통령 한복을 왜 그런 걸 입히느냐라는 항의가 많이 왔는데도 불구하고 받아들이지 않은 분위기라고 하더라"라고 전했다.

또다른 한복 제작 업체 대표 B씨는 "한복 제작 하시는 분으로 알고 있지만 대통령 한복에 비싼 원단은 쓰는 게 아니고 흔한 원단을 사용해 아쉽긴 하다"며 "한복으로 유명하신 분인지는 잘 모르겠다. 2대째 한복을 하고 있는데 40년째 하고 있는 어머니도 잘 모르는 분이라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반면, 종로에서 한복을 제작하고 있는 C씨는 "대통령 한복을 만드실만한 분으로 역량을 갖추고 있다. 안목이 고급스럽고 앞으로 나가는 방향성도 제시하고 있다. 이쪽 업계가 시기와 질투가 많다"고 말했다. D씨도 “한복 업계에서 굉장히 세련되게 디자인 하시는 분으로 통한다”고 말했다.

최순실을 태풍의 눈으로 만들어줄 내용은?

최순실씨와 연관돼 주목되는 인물로 K씨도 오르내린다. K씨는 정윤회 문건 파동을 일으킨 핵심 인물이다. K씨는 최씨 소유의 신사동 건물 세입자로 의류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최씨로부터 사생활을 듣고 박동열 전 대전지방국세청장에 관련 얘기를 했고 해당 내용이 정윤회 문건의 시초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K씨는 검찰 조사까지 받았지만 비선실세의 사생활 내용은 흘러나오지 않았다. 이후 K씨는 최씨 소유의 건물에서 점포를 비우고 행적이 묘연하다. K씨는 미국시민권자로 알려져 있는데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미국에서 지내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한 매체의 경우 K씨를 접촉하려고 시도한 것으로 전해졌다. K씨는 비선실세 사생활과 관련한 얘기를 함구하고 있지만 언론 매체와 접촉할 경우 파장이 예상된다.

우병우 민정수석의 인사에 최씨가 개입돼 있다는 의혹도 검증 대상이다.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의혹을 제기한 후 우병우 민정수석과 최순실씨가 연결되는 고리를 언론이 취재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구체적인 연관성이 드러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르-케이스포츠재단과 차은택 감독에 눈이 쏠려 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여전히 최순실씨가 태풍의 눈으로 떠오를 가능성은 남아있다. 최순실씨가 비선실세로 활동했다는 ‘꼬리’가 밟히면 뇌관이 터진 것처럼 여론의 폭발적 관심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전망이다. 

최근 SNS 게시물에 "#그런데 최순실은"이라는 해시태그를 다는 운동이 확산되고 있는 것도 심상치 않다. 아무 연관성이 없는 뉴스라도 "#그런데 최순실은"라고 적은 해시태그를 다는 건데 최순실씨와 관련된 의혹을 잊지 말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동시에 수많은 뉴스가 최순실 의혹을 가리더라도 검증을 통해 진실은 드러나게 마련이라는 여론의 바람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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