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모씨는 폭력집회에 참가해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졌다. 경찰이 살수차 운용지침을 어겼는지는 논란 중에 있다. 10개월여 후 백씨는 사망했다. 부검을 두고 유족과 검경이 대립하고 있다.‘

공영방송이 고 백남기 농민의 국가폭력 사건을 보도한 내용을 총정리한 것이다. 부상 사실, 부상 원인을 둘러싼 입장차, 사망 사실, 사인을 둘러싼 입장차, 이 네 가지가 공영방송이 지난 10개월여 동안 다룬 주제다. KBS, MBC는 백씨의 일을 ‘쟁점이 실종된 단순보도’로 다뤄왔다.

보도량은 각사 평균 20개다. 종합편성채널 JTBC가 42건을 다뤄온 것에 비춰 절반 정도의 수준인데다 '공권력 감시'라는 역할에 비춰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다. 미디어오늘은 백씨가 쓰러진 지난해 11월14일부터 사망한 후인 지난 10월3일까지 KBS, MBC 저녁 뉴스 프로그램 '뉴스9'와 '뉴스데스크'에 나온 백씨 관련 보도를 전수 조사했다. '무보도'와 '단순보도'라는 평가가 조사 결과 도출됐다.

▲ 디자인=이우림 기자.

매 리포트 “시위대가 쇠파이프와 각목을 들었다”로 시작

주목도가 가장 높은 시점인 사고 당시 보도는 어땠을까. 11월14일부터 11월21일까지 KBS는 7건, MBC는 5건을 다뤘다. 특징은 세가지로 압축됐다. △민중총궐기 폭력성 부각 △백남기 ‘한 문장’ 보도 △수사기관 입장 받아쓰기 등이다.

두 언론사 초기 보도 4건 모두 '아수라장'이 된 현장 묘사에서 시작한다. "시위대가 경찰이 집회를 불허한 광화문 광장을 향해 행진에 나서면서 저지에 나선 경찰과 충돌했습니다. 일부 시위대가 쇠파이프와 각목으로 경찰 버스를 부숩니다" 11월14일 KBS 보도 첫머리다. MBC 보도 첫 머리는 "집회 참가자들이 바퀴에 밧줄을 묶고 경찰 버스를 끌어내리려 시도합니다. 경찰들이 물대포와 최루액을 쏘며 시위대를 밀어냅니다"였다.

4번째 보도인 11월17일자 KBS 보도는 "얼굴을 가린 시위대 몇 명이 버스 위에 있는 경찰들에게 깨진 보도블럭과 각종 물건들을 던집니다. '잡아 죽여!' 사다리와 각목으로 버스를 부수고, 버스 위 경찰들을 떨어뜨리려 합니다"란 해설로 시작됐다. MBC 4번째 보도도 이와 매우 흡사하다. 기자는 "'잡아 죽여! 잡아 죽여!' 시위대가 철제 사다리로 경찰을 찌르고 버스 유리창을 깹니다. 수십 명이 밧줄을 당겨 버스를 끌어내고, 밀어 넘어뜨리려고 합니다"로 운을 뗐다.

▲ 2015년 11월17일 MBC 뉴스데스크 보도

두 방송사 카메라는 경찰의 과잉진압과 집회 참가자의 대립이 최고조로 격해졌던 때를 클로즈업했다. 13만 명(경찰 추산 6만4천 명)의 시민이 오후 1시부터 집회를 열었지만 카메라는 집회 말미 일부 집회 참가자들의 폭력 행위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백씨는 당시 공권력 폭력의 상징적 피해자다. 카메라는 집회 참가자의 폭력을 부각한 만큼 공권력의 폭력에도 초점을 맞췄을까. 공영방송은 백씨를 향한 폭력은 외면했다.

'백 모씨가 다쳤다' 밖에 말하지 않은 공영방송

두 달 간 공영방송 시청자들이 전달받은 명확한 사실은 ‘백씨가 다쳤다’는 것밖에 없었다. 지난해 11~12월 백씨가 언급된 저녁뉴스 리포트는 KBS에 4건, MBC에 3건 등장한다. 대부분 ‘한 문장’으로 처리됐다. ‘백씨가 위독한 상태’라는 내용이다. 왜 위독해졌는지, 누가 책임져야 하는지는 다뤄지지 않았다.

MBC 뉴스데스크는 11월15일 리포트에서 “집회 투쟁본부는 이에 대해 경찰이 평화 집회를 방해한 것이며 물대포 과잉진압으로 농민 69살 백 모 씨가 생명이 위독한 상태라고 주장했다”고 백씨를 언급한다. KBS는 같은 날 “이어 어제 시위 참가자 수십명이 다쳤고, 살수차로 쏜 물에 맞아 쓰러진 68살 백 모 씨는 수술 후에도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며 “백 씨가 쓰러진 이후에도 살수를 계속했다면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미수 혐의로 형사 고발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고 보도했다.

백씨는 대부분 리포트에서 ‘곁가지’로 다뤄졌다. MBC엔 백씨 사안을 중심으로 보도한 리포트는 없었다. 11월17일 언급된 “강신명 경찰청장은 69살 백 모 씨가 물대포에 맞아 중태에 빠진 것과 관련해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도 ‘그것이 불법 폭력 시위를 정당화하는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는 내용이 있지만, 이는 정부의 집회 주최 측 민·형사상 고발 사실을 다룬 리포트에 부분 삽입된 것이다. 12월5일 2차 민중총궐기 집회 현장을 다룬 리포트에서 ”시위대는 지난달 1차 집회에서 다친 백남기 씨가 입원해 있는 서울대병원 앞까지 행진했다“는 언급이 삽입됐다. 이후 2016년 8월까지 MBC 뉴스에 백씨는 언급되지 않았다.

KBS는 11월17일 백씨 사고를 다룬 리포트를 하나 냈다. 사고 원인에 대해 집회 주최 측은 ‘폭력진압’을, 경찰 측은 ‘폭력시위’를 주장한다는 입장대립을 전달한 보도였다. 살수차 운용 지침 위반 주장이 제기됐다는 사실은 다뤘지만 진위를 확인하는 리포트는 사망 전까지 보도된 바 없다.

이외의 KBS 보도에서 백씨는 ‘한 문장’으로 등장했다. 11월16일 “‘폭력 시위 없어져야’…‘과잉진압 책임자 처벌’”리포트는 “이번 사건(백씨 사건)에 대해 국민 앞에 백배 사죄하고 경찰청장을 파면하고 해당 경찰관들을 고발해야 한다"는 농민단체 관계자의 주장을 내보냈다. 또한 19일 김수남 검찰청장 인사청문회에서 임내현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부상자에게 살수차를 쓴 것은 경찰의 명백한 직무유기"라고 발언한 것도 한 문장으로 다뤘다.

KBS, 2005년 고 전용철 농민 땐 “불타는 농심” 언급했는데…

2005년 ‘고 전용철 농민 보도’는 이와 달랐다. 전씨는 2005년 11월15일 쌀 협상 국회 비준에 반대하는 농민집회에 참여했다 경찰 과잉진압으로 뇌출혈 중상을 입고 11월24일 사망했다. KBS는 ‘농민집회가 열린 까닭’을 연속보도했고 MBC도 보도 초점을 ‘쌀 협상 국회 비준’ 쟁점에 맞췄다.

▲ 2005년 11월22일 농민대회가 열린 배경을 짚은 분석기사. 사진=KBS '뉴스9' 홈페이지 캡쳐

KBS는 사고 발생 일주일 후인 11월22일, △‘쌀 협상 비준안’ 처리 격돌 예상 △불타는 농심…농기계 동원 상경 투쟁 △농정 불신이 원인 등 3개 리포트를 연속으로 보도했다.

MBC 리포트 제목엔 ‘쌀협상 비준안’이 빠짐없이 등장했다. 사고 당일인 15일 제목은 △쌀협상 국회비준에 반대하는 농민 시위대가 경찰과 충돌 △쌀협상 비준안 국회 처리 늦어져 협상국과 약속 못지켜 문제 △쌀협상 비준 동의안 놓고 5개월 동안 눈치만 본 정치권 등이다. 16일엔 ‘쌀 협상 비준 저지 농민대회서 전경과 농민들 서로 과격 주장’이, 17일엔 ‘통계청 농가 소득 조사결과, 축산 1위.과수 2위.벼농사 4위’ 등이 실렸다.

올해 1월~9월은 ‘백남기 무보도’

올해 1월부터 9월 중순까지 공영방송은 백씨를 보도하지 않았다. KBS는 1건, MBC는 4건을 보도했다. 그마저도 모두 ‘여야 추경합의안 합의’ 추진 과정을 보도한 리포트다. 야당은 백남기 농민 사건 진상규명 국회 청문회 개최를 위해 여당과 추경합의안에 합의해야 했다. 각 리포트에서 백씨는 한 문장 혹은 한 단어 수준으로 언급됐다.

KBS는 지난 8월25일 ‘여야, 30일 추경 처리·구조조정 청문회 형식 합의’ 리포트에서 “여야는 대신 다음달 백남기 농민 청문회를 실시하고. 강신명 전 경찰청장을 증인으로 채택하기로 했습니다”라고 언급했다. MBC는 8~9월 간 ‘여야 "추경처리 전격합의", 장외로 간 野 초선들’, ‘합의·파기 반복…추경안 처리 또 무산, 누리과정 '충돌'’ 등 4건 보도에서 백씨를 언급했다.

▲ ⓒ민중의소리

해당 9개월은 백씨 측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공론화 운동을 해나가던 때였다. 백남기 대책위(현 백남기 투쟁본부)는 2월 16박17일의 전국 도보순례를 진행했고 2월27일 제4차 민중총궐기를 열었다. 대책위와 백씨 가족은 9월까지 ‘백씨 살인미수 고발건’에 대한 검경의 수사 촉구 기자회견과 진상규명을 위한 청문회 개최 촉구 기자회견을 다수 열었다. 백씨 가족은 3월에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했다. 이들의 목소리는 공영방송 저녁 뉴스에 다뤄진 바 없었다.

공영방송은 수사기관 확성기? 피해자 목소리 왜 안 담나

공영방송은 백씨 측의 주장보다 공권력에게 더 큰 보도비중을 뒀다. 백씨 측 주장은 축소됐지만 검찰총장, 법무부장관 등의 발언에는 리포트 하나씩을 할애했다. 반면, 종합편성채널인 JTBC 뉴스룸은 11월23일 백씨 유족 백도라씨와의 일대일 인터뷰를 보도한 바 있다.

MBC는 11월19일 김수남 당시 검찰총장 후보자의 ‘불법집회 철저 수사’ 발언, 11월24일 대통령의 ‘불법 폭력 시위, 엄중한 법 집행’ 발언, 그리고 11월27일 김현웅 당시 법무부장관의 ‘폭력 시위꾼들 엄단할 것, 타협없다’는 발언을 보도했다. KBS는 11월18일 김수남 검찰총장의 발언을 실었다. 12월2일~5일 2차 민중총궐기 국면에서 KBS는 ‘불법시위 엄단한다’는 검경 측 주장에 보도비중을 할애했고 2일 ‘법 질서 훼손 세력 원천 봉쇄한다’는 김수남 검찰총장의 발언을 한 꼭지 보도했다.

▲ 사진=2015년 11월27일 MBC '뉴스데스크' 캡쳐

‘왜곡’ 지적 나올 만큼 축소된 백남기 보도

무보도와 단순보도는 사망 후까지 지속됐다. 백씨가 사망한 9월25일부터 지난 3일까지 9일간 KBS는 4건, MBC는 3건을 보도했다. 같은 기간 JTBC는 27건 보도했다.

사망 당일 MBC가 낸 리포트는 ‘축소보도로 인한 왜곡’이라는 지적이 제기될 정도로 단순 정보만을 전달했다. 9월25일 ‘'물대포 농민' 백남기 씨 사망, 부검 여부 논란’ 리포트는 “지난해 11월 시위 도중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고 의식불명에 빠졌던 백남기 씨가 오늘 오후 2시쯤 급성신부전으로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숨졌다”, “유족과 '백남기 대책위원회'는 ‘사망의 원인이 물대포인 게 명백한 만큼 부검에 반대한다’고 했지만, 경찰은 정확한 사망원인을 밝혀야 하기 때문에 조만간 부검 영장을 신청하겠다고 말했다” 등 26초 길이의 두 문장으로 백씨 보도를 마쳤다.

▲ 고 백남기 농민이 사망한 9월25일 서울대병원 내에 진입한 경찰병력과 부검시도를 막으려는 시민이 대치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백씨 사망을 기점으로 논란은 추가·확대됐다. 사망 전부터 경찰 병력이 병원 내로 진입했고 부검 시도를 막는 시민들과 대치했다. 검경은 ‘사인이 명확하다’는 전문가들의 문제제기와 1차 영장 청구 기각에도 불구하고 영장을 재청구해 부검영장을 받았다. ‘외인사’한 백씨의 사망종류가 ‘병사’로 잘못 기재된 사망진단서 문제도 불거졌다.

두 공영방송은 피상적인 정보를 전달할 뿐 논란의 배경이나 문제점을 분석하지 않았다. KBS는 ‘입장 차’를 그대로 전달하는 데 치중했다. 9월25일 KBS는 경찰과 시민의 대립 상황을 입장 차 전달로 다뤘다. 영장이 발부된 28일 KBS는 ‘간추린 단신’ 꼭지에서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재판부는 고 백남기 씨 시신에 대해 검찰이 재청구한 압수수색 검증영장, 즉 부검영장을 발부했다”는 한 문장으로 보도했다. 서울대병원이 ‘사망진단서 문제없다’는 취지의 조사 결과를 발표한 10월3일 KBS는 서울대병원의 입장과 이에 반발하는 백남기 투쟁본부의 주장을 대등히 다뤘다.

MBC는 저녁뉴스에서 두 차례에 걸친 검경의 영장 청구 및 영장 발부 소식을 다루지 않았다. MBC는 10월3일 서울대병원 사망진단서 조사 결과 발표에 대해 ‘백남기 ’사망진단‘ 논란, 특별위-주치의 입장 갈려’라고 입장차를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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