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브란스병원 청소노동자 노조 탄압에 원청 세브란스병원이 직접 개입한 사실이 확인돼 파장이 예상된다. 세브란스병원은 청소노동자들이 고용된 용역업체에 직접 노조 감시를 지시하는 등 명백한 부당노동행위를 한 것이 확인돼 향후 노조의 법적 대응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세브란스병원 청소노동자 노조(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세브란스병원분회, 이하 세브란스병원분회)가 7일 공개한 용역업체 ‘태가비엠’의 업무일지를 보면 세브란스 병원은 지난달에만 7차례에 걸쳐 노조 활동 방해 및 감시를 지시했다. 원청이 하청업체 노조 활동 방해에 일상적으로 개입해 왔음을 방증하는 부분이다.

▲ 세브란스병원 청소노동자 노조(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세브란스병원분회)는 10월7일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정문 앞에서 '청소노동자 노조 파괴 직접 개입 세브란스병원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업무일지는 태가비엠이 작업내용, 작업인원, 휴무자 명단 등을 기재해 병원 사무팀에 매일 보고하는 문서다. 세브란스병원 측은 일지 중 특이사항란에 지시 사항을 기재해 업체에 하달했다. 태가비엠은 세브란스병원 본원의 시설미화 업무를 도급으로 위탁한 용역업체다. 

지난 9월7일 업무일지엔 "민노(민주노총) 서경지부 집회 정보 9/8, 9, 12, 13 만전 기해주시길 바랍니다"라며 "최OO 한노(한국노총)집행부 방문 소란 등은 철산노 위원장에게 실시간 전달해 '노노대응' 유도 바랍니다. 최아무개(병원 사무팀 파트장) 배상"이라 자필로 쓰여 있다. 그 아래엔 "명심하겠습니다"라는 업체 측 답이 적혀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지역공공서비스지부의 최OO 조직차장은 지난 9월8일 한국노총 신촌연세노동조합에 방문해 단체협약 열람을 요청할 예정이었다. 세브란스 병원은 용역업체 내 복수노조인 ‘철산노’를 동원해 노조 활동 방해를 지시한 것이다. 제2노조인 철산노는 한국노총 철도사회산업노조의 준말로, 노조의 독립성을 유지하지 않고 사측의 지배하에 있다는 비판을 줄곧 들어왔다. 당일 한국노총 신촌연세노동조합은 최 조직차장에게 단협 열람을 거부했고 최 조직차장은 태가비엠 직원, 병원 사무팀 직원, 보안요원 등으로부터 퇴거 명령을 받았다.

당일 오후 세브란스병원 내에 '민노 서경지부는 노노갈등을 유발시키지 말라'는 내용의 유인물이 '철산노 연세세브란스관리지부' 명의로 게시됐다. 업무일지에서 확인된 병원 측 지시사항과 동일한 대응이다.

▲ 9월7일 업무일지 중 세브란스병원 및 태가비엠의 부당노동행위가 확인된 부분.

노조활동에 대한 사측의 지배·개입은 불법행위다. 노조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81조는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조직 또는 운영하는 것을 사용자가 지배하거나 이에 개입하는 행위를 부당노동행위로 보고 금지하고 있다. 박용원 공공운수법률원 노무사는 "(사용자의) 업무지시가 아니라면, 노조에 대한 일체의 지시·감시 자체가 지배개입에 해당된다"면서 "한쪽 노조를 편드는 것 또한 다른 노조를 위축시킬 수 있기 때문에 명백한 지배개입 행위"라고 말했다.

병원 측은 용역업체에 세브란스병원분회에 대한 대응전략 보고를 반복적으로 요구했다. 9월11일 최 파트장은 "민노집회예고(9/12, 9/13) 철저대응 바랍니다"라고, 9월20일엔 "사무실(2층) 난입에 대해 법적 조치 진행 바랍니다"라고 지시를 내렸다.

▲ 9월27일 업무일지.

그는 또한 9월27일과 29일 민주노총 집회에 대한 '대응전략'을 보고하고 '적극 지원(대응)' 할 것을 지시했다. 28일 일지엔 '민노 불법 행위 조치 방안'을 "(병원) 사무부장님도 지시"했다고 명시돼있다. 병원 차원에서 노조 활동 방해 계획에 개입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노조 동향을 파악한 부당노동행위도 발견됐다. 병원 측 9월25일 지시사항엔 "민노(민주노총)·한노(한국노총)·비노(비조합원) 인원 현황 상세 데이터로 주세요. 주말, 휴일 등 민노 서경지부 또는 민노조합원의 소행으로 보이는 민노총 전단지가 병원장실 등에 배포된 점에 대해 유의하고 주말, 휴일 및 민노조합원 동향파악 집중 부탁드립니다. 최아무개 배상"이 명시돼있다.

▲ 9월25일 업무일지

박명석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지부장은 7일 연 기자회견에서 "세브란스는 태가비엠 뒤에 숨어서 '우리와는 법적 관계가 없다'고 말해왔고 언론 인터뷰에서도 '노조 파괴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자료를 보면 모든 것을 지침으로 내렸다"면서 "철저히 조사해서 부당한 노조탄압, 법 위반 행위를 즉각 중지시키고 관계자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다음 주 중으로 태가비엠과 원청 세브란스병원을 노조법 및 근로기준법 위반 등으로 고발할 예정이다.

업무일지를 통해 지시를 내린 최아무개 파트장은 7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사실무근이다. 분회 측이 하는 말은 타당하지 않다"고 언급했다. 세브란스병원 홍보팀은 “병원은 (용역업체 관련해)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정하고 있다. 원칙에 따라 움직였을 것”이라며 “이 사안 관련해 원내 확인 절차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고 지금 구체적인 답변 드리기 어렵다”고 답했다.

▲ 박명석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지역지부장이 10월7일 '노조탄압 직접 개입 세브란스병원 규탄 기자회견'에 참석해 규탄발언을 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한편 세브란스병원분회는 노조가 출범할 때부터 사측의 탄압에 시달려왔다.

지난 7월13일 신촌 세브란스병원 본관의 청소노동자 100여 명은 기존 한국노총 산하의 노조가 열악한 노동조건을 해결하지 않는데 문제를 느끼고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산하의 세브란스병원분회를 출범시켰다. 전체 청소노동자 200여 명 중 136명이 가입할 정도로 가입률이 높았으나 당시 현장소장의 협박과 회유로 인해 90여 명이 집단 탈퇴서를 제출하는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소장은 조합원들을 개별 면담하며 '병원이 민주노총은 안 된다고 했다', '한국노총을 잡아라. 내가 도와주겠다' 등의 발언으로 회유했고 부당노동행위가 논란이 돼 교체됐다.

분회는 반장을 중심으로 노조 탈퇴 협박이 지속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장들이 '고용 승계를 원하면 민주노총 노조를 탈퇴하라'고 회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태가비엠은 분회가 출범한 이후 신규입사자에 한해 3개월 단위로 근로계약을 맺고 있다. 분회는 3개월 마다 갱신해야 하는 조건을 업체가 노조 탄압 수단으로 이용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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