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이 일제히 사과하며 국감 보이콧 상황을 해제했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7일 만에 단식을 풀고 회복 중이다. “목숨을 걸겠다”고 했던 이정현 대표 단식 결과에 따른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상임위원장단-간사단 연석회에 참석해 “집권여당이 그런 방식으로 했어야 하냐는 국민 지적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송구스럽다”고 사과하며 국감에 복귀했다.

조원진·최연혜 최고위원 역시 마찬가지로 입 모아 국감 등에 차질을 빚은 부분을 사과했다. 물론 정세균 국회의장의 중립 의무를 촉구한다는 입장은 변함이 없지만 사실상 관철이 요원하다는 점에서 ‘빈손 복귀’라는 분석도 나온다. 당 안팎에서는 단식과 국감 보이콧 상황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이정현 대표에게 기대되는 대화와 타협의 정치나 리더십이 실종됐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지난 2일 국회에서 단식 중인 가운데 김재원 청와대 정무수석이 찾아와 단식 중단을 요청하며 이정현 대표 이마를 짚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새누리당은 지난달 23일 야당이 국회 본회의에서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통과시킨 이후 격분했다. 친박 강경파로 꼽히는 조원진·이장우 최고위원은 수위 높은 발언을 쏟아내며 국감 보이콧을 주도했다.

이정현 대표는 26일 오찬 이후 곧바로 단식에 들어갔다. 새누리당은 정세균 의장의 “맨입” 발언에 격분한 상황이었다. ‘국회의장 사퇴’라는 무리한 요구를 내건 단식이 실제 실행될 것으로 본 사람은 적었다.

단식은 사회적 약자들이 최후의 수단으로 쓰는 방법이다. 이정현 대표는 이 방법을 너무 일찍 꺼내들었다. 정치인이라면 고려했어야 할 ‘출구 전략’은 무시했다. 이정현 대표는 “정치적 거래는 없다”며 스스로 대화나 타협의 길을 막아 버렸다.

당 내에서도 조율하는 모습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이정현 대표는 28일 단식을 계속하되 소속 의원들은 국감에 복귀해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하지만 당대표의 공개 제안은 3시간여 만에 깡그리 무시됐다. 국감 복귀를 통한 국정 정상화 시기도 놓쳐버렸다.

이정현 대표는 발표 전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27일 김무성 전 대표에게 국감에 복귀해야한다는 조언을 들었다고 했다. 토론회에서 이정현 대표는 국감에 복귀하거나 단식을 중단하는 결정 모두 할 수 없다는 뉘앙스로 말했다. 하지만 3시간 만에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지난 2일 국회에서 단식을 중단하고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그렇다고 당 주류인 친박계와 조율한 결정도 아니었다. 이정현 대표 제안을 논의한 의원총회에서는 단박에 거부됐다. 친박계 좌장인 서청원 의원마저도 기자들과 만나 이정현 대표의 국감 복귀 선언에 대해 “정치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니다”며 “국감에 복귀는 해야 하지만 이 대표가 타이밍을 잘못 잡았다”고 비판적인 모습을 보였다.

청와대와 교감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이정현 대표는 28일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미르 재단 관련 질문에 답하며 “필요한 경우 대통령과 하루 몇 번씩 통화한다”고 말했다. 당대표 경선에서도 박근혜 대통령과의 친분을 강조하며 청와대에 “할 말은 하겠다”고 강조했다.

청와대는 이정현 대표 단식과 국감 중단에 대해 초반부터 우려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김재원 정무수석을 두 차례나 국회에 보내 이정현 대표에게 단식 중단과 국감 복귀를 설득했다. 이정현 대표의 단식을 비롯한 정치적 선택이 청와대의 뜻과는 어긋나있었다는 방증이다.

일각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실세 의혹인 미르·K 재단 의혹에 쏠린 시선을 일정 부분 돌려놨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기도 한다. 하지만 이정현 대표는 이 논쟁에서 시선을 잠시 빼앗았을 뿐이다. 여야는 파행됐던 국감을 4일간 연장하기로 했다.

그동안 미르·K 재단 의혹은 진전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해임건의안을 거부했던 김재수 장관이 실제로는 미르재단 설립 전부터 관련 사업에 깊숙이 관여돼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실적 없는 미르 재단이 한-이란 문화사업에 선정되는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이정현 대표 단식으로 덕을 본 곳도 있다. 전국경제인연합이 미르·K재단 관련 자료를 파쇄하고 해산을 결정하는 등 발빠르게 대처했다. 야당에서는 “증거 인멸”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지난 8월 열린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밀짚모자를 들어 보이며 인사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논란의 축이었던 박근혜 대통령의 김재수 장관 해임건의안 거부 국면을 자연스럽게 진정시킨 것도 한 축이다. 여론은 분명 논란이 시작된 장관 해임건의안 처리보다는 이정현 대표의 단식에 초점을 맞췄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29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박근헤 대통령 직무에 대한 긍정적인 응답은 30%였으며 부정적인 응답은 56%였다. 긍정 응답은 9월 넷째주 조사보다 1%포인트 떨어지는 데 그쳤으며 부정률은 변함이 없었다.

이 여론조사는 지난달 27일부터 29일까지 휴대전화 RDD 표본 프레임에서 무작위 추출한 전국 성인 1004명을 대상으로 했으며 표본오차는 ±3.1%포인트(95% 신뢰수준)다.

최요한 정치평론가는 4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이정현 대표가 이전 여당 대표와는 다른 스타일을 보여줬다”며 “이정현 대표가 정치를 잘하고 미래 비전을 잘 제시한다는 측면 보다는 몸을 던져서라도 자기 정파에 속한 사람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뜬금없는 단식과 국감 복귀 선언, 조건 없는 단식 중단 등은 기존 정치인과는 달랐다. 언론은 새로운 상황에 당혹해 하면서도 ‘집권여당 대표의 단식’이라는 새로운 국면을 생중계하듯 했다. 기존 우병우 의혹과 최초인 박근혜 대통령의 장관 해임건의안 거부 상황도 큰 충돌 없이 넘어갔다.

최요한 정치평론가는 “이정현 대표 단식 후 지상파 방송에서 ‘최순실’ 이름이 쏙 들어갔다”며 “사상 처음 집권 여당 대표 단식이라는 프레임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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