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병원이 고 백남기 농민의 사망진단서 오류를 인정했음에도 "사인의 판단은 담당 의사에 재량에 속한다"고 결론내림으로서 논란의 본질을 호도하고 책임자에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진단서를 작성한 주치의(백선하 신경외과 과장·교수)는 사망의 책임을 유족에게 전가하는 태도를 보여 유족 측의 거센 비판을 샀다.

서울대 병원 특별조사위원회(사망진단서 논란에 대한 서울대학교 병원-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합동 특별조사위원회, 이하 특별위원회)는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밝혔다.

특별위원회는 백씨의 사망진단서는 대한의사협회가 권고하는 진단서 작성 지침을 따르지 않았다고 명확하게 밝혔다.

▲ 10월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의생명연구원에서 열린 고 백남기 농민 사망진단서 논란에 대한 서울대학교병원-의과대학 합동 특별조사위원회 기자회견에 이윤성 특별위원회 위원장(왼쪽)과 주치의 백선하 교수가 참석했다.ⓒ민중의소리

백씨의 사망 종류를 '병사'로 기재한 것에 대해 보고서는 "'급성신부전'의 원인, 즉 원 사인으로 '급성 경막하 출혈'을 기재하고 사망의 종류는 '병사'라고 한 것은 사망진단서 작성 지침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백선하 교수는 백씨의 사망원인을 '급성신부전에 따른 심폐정지'라며 사망종류를 '외인사'가 아닌 '병사로 기재했다.

보고서는 이어 백씨의 직접 사인을 사망의 징후인 '심폐정지'라 기재한 것에 대해 "심폐정지와 같은 사망의 기전이나 사망에 수반된 징후는 일반적으로 기록하지 않는다"면서 "사망진단서의 작성 지침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지침 달리 작성 오류 발견됐다는데 진정성?

그럼에도 특별위원회는 "사망진단서 작성 지침과 다르게 작성된 것은 분명하나 담당교수가 주치의로서 헌신적인 진료를 시행하였"고 "임상적으로 특수한 상황에 대해 진정성을 가지고 사망진단서를 작성했음을 확인했다"고 결론지었다. 지침에 위배되는 오류가 발견됐더라도 진단서는 담당의의 소관이라는 입장이다.

백선하 교수가 논란을 해명하기 위해 발표한 성명서는 되레 논란을 더 일으킬 뿐더러 백씨 사망에 대한 책임을 유족에게 떠넘겼다는 비판이 일었다.

백 교수는 "백씨 경우는 대한의사협회에서 규정하는 경우와 다르다"고 판단했다. 백씨의 '심폐정지'는 "급성신부전에 대한 적절한 치료가 되지 않아" 결국 고칼륨증(급성신부전 합병증, 혈액에 칼륨 농도가 높아지는 위중한 상태)으로 인해 급성으로 생긴 '직접사인'이라는 것이다. 백 교수는 환자 가족이 적극적인 치료를 원치 않아 백씨가 제때 체외 투석 치료를 받지 못한 것을 '급성신부전' 병사를 유발한 요인으로 지적했다.

▲ ⓒ민중의소리

백 교수는 이어 "만약에 백씨가 적절한 최선의 치료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망을 하게 됐다면 사망진단서의 내용은 달랐을 것"이라며 "그런 경우 사망 종류는 외인사로 표기했을 것"이라 밝혔다.

백 교수의 '급성신부전이 일으킨 고칼륨증으로 인한 심폐정지'라는 병사 판단에 대해 의학 전문가들은 '동어반복'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백씨의 의무기록을 검토한 이보라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소속 내과 전문의는 "신장이 기능하지 못한다는게 칼륨이 배출되지 못하고 소변이 배출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면 심장 부정맥이 생기는데 계속 같은 말을 하는 것"이라면서 "백씨는 아무리 집중적으로 치료해도 무한정 생명을 연장할 수 없는 상태였다. 언젠가는 약물 부작용과 다발성 장기부전 등 합병증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고 강조했다.

백 교수는 이미 '백씨는 의식을 회복할 가능성이 없는 환자'여서 '결국 병원 치료가 길어지면 다발성 장기 부전으로 사망하게 될 것'이라 지적한 바 있다.

백씨 유족은 특별위원회 발표 후 기자회견을 열어 지난해 11월15일 새벽3시 수술 직후 백 교수가 가족과 가진 면담 영상을 공개했다. 백 교수는 "뇌뿌리라고 우리가 숨을 쉬고 심장이 뛰게 하는 조절 중추가 있는데, 그쪽에서 살아있다는 신호를 체크하는 뇌뿌리반사가 전혀 없었다"면서 "동공이 완전히 확대돼서 통증을 줘도 전혀 반응이 없는, 거의 뇌사상태였다. 당시엔 수술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해 보존적 치료를 했다"고 말했다.

▲ 서울대 의과대학 재학생 102명의 서울대병원 사망진단서 비판 성명서

사망진단서 적절성에 대한 특별위원회의 판단은 없었다. 서울대 의과대학 재학생 102명, 서울대 의대 동문 365명, 전국의 의대 재학생 809명이 성명을 내 사망진단서의 오류를 바로 잡으라고 나선 가운데, 이윤성 특별위원회 위원장(서울대 의대 법의학과 교수)은 3일 기자회견에서 "진단서는 의사 개인이 쓰는 것으로, 다른 사람이 비평은 할 수 있지만 강요할 수 없다"면서 "특별위원회는 '진단서 작성 지침과 다르다'고 표현했다. 수정하라는 권고까지는 결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특별위원회의 다수 의견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 위원장은 "대답하기 곤란하다"고 답했다.

기자회견을 지켜 본 더불어민주당의 박주민 의원은 특별위원회의 보고서에 대해 "면죄부를 준 이상한 보고회"라고 비판했다. 박 의원은 "진단서가 지침과 다르다는 건 언론 덕분에 누구나 안다. 그걸 굳이 다시 확인해주고 ‘플러스 알파’로는 (작성은) 주치의의 몫이다 해 버린 것"이라면서 "위원회는 주치의가 지침과 다르게 써도 된다는 걸 확인해 준거다. 사실상 면죄부를 준 것"이라 말했다.

유족 백도라지씨도 "이런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하려고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느냐"고 반문했다.

‘가망 없던 환자’ 백 교수는 그날 밤 왜 등산복 차림으로 병원에 급히 왔나

'외압' 의혹은 더 증폭됐다. 앞서 백씨 유족은 일부 언론을 통해 사망진단서 발급 당시 레지던트(전공의)가 '본인이 작성하지만 사망 진단에 대해 자신의 권한이 없다’, ‘신찬수 부원장과 백선하 교수 두 분이 상의한 대로 써야 한다’고 말했다고 밝힌 바 있다. 전아무개씨(백도라지씨 남편)는 "진단서 발급 당시 같이 있었는데 담당 레지던트가 (부원장 혹은 백 교수로 추측되는) 상사와 통화를 하며 '병사요?'라는 말을 세 번 정도 반복했다"며 "본인도 쓰면서 아닌 걸 알았다는 것"이라 추가 증언했다.

▲ 백남기 투쟁본부는 백씨의 의무기록에는 통상적인 환자 의무기록에 보이지 않는 구문이 다수 발견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백남기 투쟁본부 제공

특별위원회와 백선하 교수 모두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외압은 없다"고 밝혔다. 이윤성 위원장은 "사회적 관심이 많은 인사가 입원할 경우 부원장은 환자 상태에 대해 수시로 보고 받는다. 사망 당시 담당 레지던트가 백 교수에 연락했지만 받지 않아 부원장에게 연락했고 부원장은 사망진단서에 관해서는 백 교수와 알아서 작성하라고 했을 뿐"이라면서 "달리 지시한 적이 없다는 게 저희가 확인한 사실"이라고 해명했다.

김경일 인의협 소속 신경외과 전문의는 "부원장이 (레지던트에게) 보고받는 경우는 병원에서 절대 흔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백남기 투쟁본부는 외압이 의심되는 추가 정황을 폭로한 상태다. 이보라 전문의는 일반적인 의무기록에 등장하지 않는 '부원장과 상의', '부원장의 지시' 부분을 지적했다.

지난달 22일 의무기록엔 "진료부원장(내과 신찬수 교수님) 실에 T.2200에 환자 GFR 감소 및 소변량 감소에 대해 보고 드림"라는 내용이, 사망 하루 전인 24일엔 "진료부원장 신찬수 교수님과 환자 상태에 대해 논의함", 사망 당일인 25일엔 "진료부원장 신찬수 교수님, 지정의 백선하 교수님과 상의해 사망진단서 작성함"이 적시돼있다.

지난달 6일 백씨의 의무기록엔 통상 환자의 의무기록엔 등장하지 않는 법률팀, 의료윤리위원회 등이 등장한다. 6일 신경외과는 "(연명치료에 대해) 전공의 독단적으로 판단할 수 없으며 지정의 교수님과의 상의가 필요하며, 경우에 따라 호스피스센터 또는 법률팀, 의료윤리위원회 등에서의 조율이 필요할 수 있음에 대해 설명함"이라고 적었다.

투쟁본부는 사고 당일 의료진이 수술을 포기하고 있었던 상황에서 백선하 교수가 등장한 배경에도 의혹을 제기했다. 백씨는 사고 당일 오후 7시40분경 서울대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백씨를 담당한 조아무개 신경외과 교수는 오후 9시30분경 '1%도 회복가능성이 없으니 주말 이후 요양병원으로 이송할 것'을 제안했다. 백선하 교수는 1시간 여 후인 오후 10시30분 '등산복 차림'으로 병원에 도착해 유족에게 '연명을 위한' 수술을 제안했다.

투쟁본부는 백 교수의 등장과 구은수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장 간의 모종의 관계가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백남기 유족 측은 지난 3월22일 정부와 경찰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피고인인 구은수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은 피고인 답변서에서 "당시 혜화경찰서 경찰서장의 근무를 종료시키고 곧바로 원고 백남기가 후송된 서울대병원으로 보내 원고 백남기 치료를 위해 최선을 다하게끔 조치했다"면서 "서울대 병원장에게 긴급히 협조요청해 서울대 병원 신경외과 최고 전문의인 백선하가 급히 서울대 병원으로 와서 백남기의 진료 및 수술집도를 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했다"고 적었다.

유족 측은 가족의 의사에 반하는 연명치료가 수차례 이뤄졌다는 입장이다. 지난 7월 백씨 유족은 인공호흡기 사용만 동의한 연명치료거부 서명서에 싸인을 했다. 8월 말엔 인위적으로 심장을 뛰게 하는 승압제, 항생제 등 연명치료제 사용도 거부했다. 그럼에도 병원은 연명치료제를 사용했다. 이는 지난달 22일, 24일 의무기록에서 확인된다. 백씨 유족은 이같은 유족의 의사에 반하는 치료가 수차례 반복돼왔다고 지적했다.

투쟁본부는 "다른 누군가를 위해 가족에 반하는 치료를 계속 해 온 것이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하면서 "사망원인은 너무나 분명해 부검은 불필요하다. 유족은 부검을 원하지 않는다. 부검을 하면 안된다"고 주장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