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이 정세균 국회의장을 만만하게 봤다. 지난 23일 밤 자정 국회 의장석을 둘러싼 새누리당 의원들은 '독재자 의장'이라고 외쳤지만 끝내 정 의장은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단식 농성에 나서 정 의장 사퇴를 촉구했고, 새누리당은 직권남용 등 혐의로 정 의장을 고발하기에 이르렀지만 정 의장은 흔들리지 않고 있다. 정 의장은 국회법에 따라 정당하게 해임건의안을 통과시켰는데 새누리당이 금도를 넘는 정치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고 보고 있다.

정세균 국회의장의 행보를 놓고 예상외라는 평가가 많다. '미스터 스마일'이라는 별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정 의장은 합리적인 인물로 통한다. 관리형 지도자라는 꼬리표도 따라붙는다. 야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정 의장을 평가하는 대표적인 말이다. 무색무취하는 평가도 많아 대중성이 떨어진다는 얘기도 있다.

정 의장이 변했다는 얘기가 나오는 건 기존의 모습과는 달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 정 의장에 대한 평가는 언론의 프레임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도 많다.

언론은 정 의장이 강한 모습을 보이면 '예상을 깨고 결기를 세웠다'라는 평가를 으례적으로 내놨고 ‘미스터 스마일이 변했다’는 타이틀을 붙였다. 정 의장에겐 족쇄처럼 '미스터 스마일'이라는 별명이 따라붙은 이유다.

다소 유해보이고 타협을 중시하는 이미지는 언론의 평가 속에 굳어진 것이고 오히려 자기 주장이 강해 원칙주의자로서 면모를 줄곧 유지해왔다는 것이 정치권의 평가다.

안일원 리서치뷰 대표는 "미스터 스마일로 회자돼 왔지만 정 의장이 당 대표였을 당시 당직 인선이나 당 운영을 보면 상당히 자기 스타일이 강한 분으로 평가된다. 실제 캠프에서 접한 사람들에 따르면 정 의장은 자기 주장이 강해 일반적으로 보는 이미지와는 차이가 크다"고 전했다.

정 의장은 당 대표만 3번을 역임했고, 원내대표 2번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 6선의 선거 이력만 보더라도 강자와 맞대결에서도 불리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승리해왔다.

정 의장이 단식 농성과 장외 투쟁을 벌이는 일도 있었다. 지난 2009년 정 의장은 당 대표를 맡고 있을 때 언론관계법 강행 처리를 여권이 압박해오자 당 대표실에서 단식을 벌였다. 정 의장은 단식 농성에 대해 "목숨을 걸겠다는 각오 없이 국민 앞에서 쇼하듯 유행처럼 해서는 안된다"면서도 "숫자로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려고 하는데 제대로 대항할 길이 없어 송구스럽다"며 농성을 이어갔다.

정 의장은 당시 김형오 국회의장에게 의원직 사퇴서까지 제출했다. 헌정사상 야당 대표가 사퇴서를 제출한 것은 처음이었다. 보좌진을 면직 처리하는 등 사퇴 의사를 분명히 하면서 '정치쇼'라는 비난도 피해갔다. 이뿐 아니라 정 의장은 "언론악법의 무효와 민주주의 회복을 염원하는 모든 세력과 연대할 것"이라며 100일 장외 투쟁에 나섰다. 

당시에도 정 의장의 행보를 놓고 '예사롭지 않다', '보통의 결기가 아니다' 등 예상외라는 평가가 쏟아졌다. 현재 정 의장의 행보에 대한 평가와 비슷하다.

지난 2012년 대통령 경선 후보로 나섰을 때 ‘위험한’ 발언을 내놓으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당시 정 의장은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을 비판했는데 발언의 수위가 만만치 않았다.

정 의장은 2012년 8월 14일 가계부채 해결 정책 발표회 자리에서 "청산되지 않은 친일의 잔재가 여전히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1910년 한일강제병합 이후 50여 년이 지나고 나서 일본군 중위 다카키 마사오가 대한민국 대통령이 됐다”며 "50년이 지난 후 그의 딸이 다시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려하는 것 자체가 청산되지 않은 친일의 잔재"라고 일갈했다. 정 의장은 이틀 후 전북을 찾아 "독립군 장준하 선생이 친일파 박정희에 의해 타살이 됐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내일신문 2012.8. 17일자)

대통령 경선 후보라는 위치에서 상대당 유력 후보였던 박근혜 대통령과의 대결구도를 만들기 위한 전략적 발언으로도 해석됐지만, 발언의 주인공이 정세균 의장이라는 점에서 더욱 수위가 센 발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현재 강대강 대치 속 정 의장이 쉽사리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과거 정 의장이 일촉즉발 위기 앞에서 원칙을 고수하고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 것처럼 새누리당의 공세가 심해질수록 정 의장의 반작용도 커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 국정운영을 비판적으로 지켜봐왔던 정세균 국회의장이 ‘정상화’ 작업에 나서면서 앞으로도 갈등이 커질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이와 관련해 정 의장은 한 언론 매체와 인터뷰에서 "정부와 국회와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일방통행을 했다. 국회의장은 물론이고 국방위원회, 외교통일위원회와도 소통이 없었다. 그 정도 중차대한 일은 국민 이해를 구해야 하는데 국민 대표기관이 국회와 상의하지 않고 어떻게 할 수 있느냐. 이 정부가 소통에 관한 한 빵점"이라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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