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두 명의 공무원이 있다. 한 명은 40대 중반의 남성 공무원으로, 부서에서 일 잘하는 공무원으로 꼽힌다. 이유는 기초생활수급자 한 명 상담을 한 시간 안에 끝내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기초생활수급자 수십 명을 상담한다. 요건이 되는 사람은 바로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하고, 아니면 바로 탈락시킨다.

또 다른 공무원은 50대 초반의 여성 공무원으로, ‘비효율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기초생활수급자 한 명 상담하는데 하루 종일 걸리기 때문이다. 이 공무원은 신청자가 기초생활수급를 받아야하는지 아닌지 정말 꼼꼼하게 검토하고 이야기를 하나하나 다 듣는다. 그래서 늘 일이 밀리고 밤늦게까지 전화기를 붙들고 있다.

두 명의 공무원은 기자가 구청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할 때 실제로 만난 공무원들이다. 일 잘한다는 남성 공무원은 구청 문에 붙어있는 ‘이달의 공무원’ 자리를 여러 번 차지했다. 반면 상담하는데 하루종일 걸리던 여성 공무원은 ‘일을 답답하게 한다’는 평가를 자주 받았다. 한 과장급 공무원은 “성과로 평가하면 둘 연봉 차이가 꽤 날 텐데”라는 농담을 던졌다.

이 농담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1월28일 간부직 성과연봉제를 비간부직까지 확대하는 내용의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권고안을 발표했다. 성과연봉제 적용대상을 기존 간부급(1~2급)에서 최하위직급을 제외한 비간부직(전체의 70%)까지 확대하고, 평가가 가장 낮은 사람과 가장 높은 사람 사이의 전체연봉 격차가 20%~30% 이상 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 성과연봉제 개선방안. 기획재정부 보도자료.
“귀족노조 파업” 성과연봉제 밀어붙이는 정부

정부는 노조의 반대를 무릅쓰고 성과연봉제를 밀어붙이고 있다. 노동계는 일제히 반발한다. 금융노조는 23일 서울 마포구월드컵 경기장에서 하루 총파업을 벌였다. 9월27일 철도노조와 공공운수노조가 파업에 돌입하고, 9월28일 보건의료노조, 금속노조 등이 파업을 이어갈 예정이다.

정부·여당은 이번 파업을 기득권 귀족노조의 밥그릇 지키기 파업이라고 비난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22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최고 수준의 고용보장과 상대적으로 고임금을 받는 공공·금융부문 노조가 임금체계 개편반대를 명분으로 연쇄적으로 파업을 벌인다고 하니 과연 얼마나 많은 국민이 이에 공감하고 동의할지 의문”이라며 “국민을 볼모로 제 몫만 챙기는 기득권 노조의 퇴행적 행태”라고 말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새누리당 간사를 맡고 있는 하태경 의원은 23일 보도자료를 통해 국내은행 평균연봉이 2015년 기준 8990만원이라며 “성과연봉제 저지를 이유로 파업을 벌이는 것은 일반 국민들에 눈에는 고소득을 누리는 일부 귀족노조의 기득권 사수 파업으로 보여 질 것”이라고 밝혔다. 많은 언론이 이런 발언을 인용해 성과연봉제에 반대하는 파업을 비판했다.

정부가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는 근거는 생산성과 효율성이다.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1월28일 공공기관운영위원회 회의에서 “2010년부터 간부직 성과연봉제 도입, 기능조정 등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고 있지만 여전히 공공기관의 생산성은 민간기업의 70~80% 수준에 머물고 있다”며 “공공기관은 내부경쟁이 부족하고 조직·보수체계는 동기유발 기능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고 말했다. 한 마디로 성과에 따라 보상을 차등 지급해야 노동자가 일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동기를 유발할 수 있고, 그래야 생산성이 높아진다는 논리다.
 
공공기관에서 성과가 나면 국민도 좋을까

하지만 이 당연해 보이는 가설은 금융기관과 공공기관에서 실시된다는 ‘조건’ 앞에서 ‘성과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마주한다. 앞서 이야기한 두 명의 공무원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구청 입장에서는 한 시간에 한 명씩 상담하고 수급 탈락 여부를 결정짓는 공무원이 성과가 좋은 공무원일 것이다. 그렇다면 민원인, 즉 기초생활수급을 받아야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어떨까?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22일 매일노동뉴스에 기고한 글에서 “(기초생활수급자의) 근로능력 평가의 객관성을 강화한다며 국민연금공단이 해당 업무를 수행하게 됐다. 공단이 근로능력 평가 업무를 이관 받은 이후 ‘근로능력 있음’ 판정이 세 배 늘어났다”고 밝혔다. 수급자의 70% 이상을 지역 고용센터의 취업성공 패키지 사업에 연계할 경우 기관평가 가점을 받도록 한 이후 벌어진 일이다.

김 국장은 “왜 빈곤층을 취업 시키는 것이 성과 척도일까”라고 묻는다. 빈곤층이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안정된 일자리와 기초생활 보장이 필요한데도 효율성이라는 목적 하에 무조건 시장으로 내몬다는 것이다.

우리은행 입장에서는 우리은행 메신저 ‘위비톡’ 가입자 수를 가장 많이 늘려온 직원이 최고 성과자이고, 하나은행 입장에서는 하나은행의 ‘하나 멤버스’ 고객을 가장 많이 유치한 직원이 최고성과자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경쟁이 고객 입장에서 도움이 되느냐는 것이다.

은행에 다니는 20대 A씨는 “지인들을 통해 통장 개설하게 하고 애플리케이션 가입하게 하고 이런 일은 이제 약과일 것이다. 성과연봉제가 도입되면 지금보다 더 실적 압박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며 “더 큰 문제는 금융상품을 판매할 때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채 판매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2011년 조사에 따르면 은행 노동자 2188명 중 58%가 새 상품 파악과 업무숙지를 하는데 일주일에 1시간 미만의 노동시간을 투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상품이 늘어나면서 새 상품을 숙지하는데 투여할 시간이 줄어든다는 것.

▲ 융노조가 성과연봉제 도입에 반대하며 대규모 총파업에 돌입한 23일 오전 서울 중구 한 은행에 총파업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포커스뉴스

이런 상황에서 벌어지는 실적 경쟁은 불완전 판매를 부추길 수 있다. A씨는 “은행원들은 대출, 외환, 기업대출, PB 업무 등 자기의지와 관계없이 업무가 계속 변한다는 점도 성과연봉제가 부담스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김문호 금융노조 위원장 역시 20일 기자회견에서 “성과연봉제는 금융산업 고객에게 불편을 끼칠 불완전 판매를 극대화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영국에서는 2000년대 중반 지급보증 보험 관련 불완전 판매 사건이 발생한 이후 그 원인으로 판매실적에 따라 계단식으로 확대되는 보상체계가 지목됐다. 영국 금융당국은 22개 금융회사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한 뒤 보상체계를 적절히 마련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몇몇 은행을 상대로 28억 파운드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지난 9일 미국의 4대 은행 중 한 곳인 ‘웰스파고’에서 성과압박에 시달리던 은행 직원들이 고객들의 개인정보를 이용해 임의로 계좌를 개설하고 운용했다 발각되는 일도 있었다.

공공기관에도 같은 질문이 적용될 수 있다. 병원에서 성과의 기준은 무엇일까. 진료 수입이나 1인당 환자 진료 건수? 병원에서 진료를 많이 한다는 것을 성과의 기준으로 삼으면 과잉진료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상윤 건강과대안 책임연구원은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에서 “병원에서 환자를 많이 진료하고 더 많은 수술이나 처치를 했다고 해서 연봉을 더 주게 되면 의사와 병원 직원들은 환자의 건강이나 필요와 관계없는 처방과 처치 등을 늘리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위원은 또한 “‘진료량’이 아니라 ‘환자 만족도’ 등 ‘의료의 질’과 관련된 지표로 성과를 평가한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어떠한 지표가 의료의 질을 가장 잘 반영하는지에 대해 논란이 많다”며 “병원에서 유일한 성과는 환자 건강 증진과 빠르고 안전한 회복이다. 그런데 이러한 추상적 목표를 어떻게 수치화하여 측정하고 성과로 평가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지난 9월8일 국회 토론회에서 병원에서 실시하는 성과연봉제의 폐해를 공개했다. 보훈병원이 대표 사례다. 서울, 부산, 대전, 대구, 광주 등 전국 5개 광역시에 설립된 보훈병원은 3급 이상의 간부직과 의사직을 대상으로 성과연봉제를 실시하고 있다. 전재수 보건의료노조 정책국장은 성과연봉제 실시 이후 “진료건수를 확대하기 위해 이중진료, 이중오더 등 과다한 검사, 과다처방 등 과잉진료가 남발되고 있다”며 “진료건수를 늘리다보니 의사 과부하, 진료시간과 상담·설명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 서비스 질이 하락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 국장은 2005년부터 성과연봉제를 실시한 서울시동부병원에서도 “수익창출이 어려운 취약계층 환자보다 일반환자와 보험환자 중심으로 병원이 운영되면서 일반환자와 보험환자 비율을 높이라고 하거나 의료장비 활용도를 높이라고 하는 등 공공병원이 수행해야할 방향에 역행하는 일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서울시동부병원은 2015년 호봉제로 전환했다.

서울대병원에서 시행 중인 의사성과급제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담당하는 내원환자의 진료비가 올라가면 의사의 성과급 액수도 올라가다보니 자연스레 환자의 진료비가 높아진다는 것. 노조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성과급을 실시하기 전인 2013년 1월~6월과 실시 후인 2014년 1월~5월을 비교하면 환자는 1%대로 증가했는데 의료부문 수익은 4%대의 증가율을 보였다.

한국전력공사는 9월 말 전 직원에게 평균 2000만 원의 성과급을 지급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영실적이 좋다는 것이 이유였다. 하지만 올 여름 국민 대다수는 전기료 누진제로 인해 분통을 터트렸다. 전기료 누진제를 유지하는 것이 한전 입장에서는 성과일 수 있지만 국민 입장에서는 성과가 아닐 수도 있다. ‘성과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누구를 위한 성과인가’라는 반문으로 이어진다.

나의 성과와 너의 성과가 구별될 수 있나

성과연봉제에 제기할 수 있는 두 번째 질문은 ‘성과를 측정할 수 있는가’라는 점이다. 성과를 기준으로 각자 다른 급여를 지급하려면 성과를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고, 이 성과를 개인 단위로 분할할 수 있어야한다. 하지만 많은 경우 성과는 개인의 것이 아니라 팀이나 조직 간 협업의 결과물이다.

예컨대 병원에서 가장 중요한 업무는 환자의 병을 치료하는 일이고, 따라서 환자 입장에서 병원의 성과란 ‘병을 얼마나 빠르고 안전하게 회복 시켰나’이다. 하지만 성과에 따른 배분은 여전히 난제다. 내가 병원에 입원해 한 달 만에 완치했다면 그 성과는 누구의 것이냐는 의문이 남는다. 의사와 간호사, 병의 원인을 찾느라 옮겨 다닌 많은 부서 중 누가 성과급을 받아야할까.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이 2016년 3월 발표한 이슈페이퍼에서 “성과급은 산출된 성과를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단순 생산직 분야에서 발전한 임금체계”라고 지적한 이유가 이 때문이다.

▲ 전국공공산업노동조합연맹 소속 조합원들이 22일 서울 중구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공공노동자 총력투쟁 결의대회'에서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오히려 성과연봉제는 협업의 분위기를 해칠 수 있다. 정부는 성과연봉제가 동기유발로 이어져 열심히 일하는 분위기가 형성될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예측과 달리 정반대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노광표 소장은 “일할 수 있는 분위기 강화란 동기부여와 제도의 공정성, 수용성 등과 관련된 것인데 성과연봉제가 지닌 개인주의 원칙, 지나친 경쟁심 유발과 고용불안의 분위기 속에서 (이것이) 실현가능한 일인지 의문스러울 뿐”이라고 강조했다.

전재수 보건의료노조 정책국장도 “성과연봉제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다루는 병원업무의 특성이나 조직문화에 전혀 맞지 않는 제도”라며 “병원 업무는 환자진료, 검사, 지원파트 등 70여개의 다양한 직종과 수많은 진료과 및 구성원들 간의 신뢰와 협조가 절대적이다. 경쟁시스템을 도입하면 부서 간 이기주의, 부서 간 경쟁으로 인해 업무협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거나 부족한 의료용품을 빌려주지 않는 사례도 발생할 것”이라 경고했다.

30대 철도공무원 B씨는 “이미 2014년 입사자부터 연봉제를 실시하고 있기 때문에 임금체계가 변동하는 것에 대해서는 크게 우려하지는 않는다. 다만 철도 업무는 노동집약적으로 팀이나 조직 전체 단위의 업무인데 개개인별로 나눠서 평가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회사에서는 소속(팀에 대한) 평가를 기준으로 한다고 말은 하는데, 아무래도 팀 간, 상급자와 하급자 간 업무 노하우를 공유하는 문화가 사라질까 뒤숭숭하다”고 전했다.

세계적인 기업들도 이런 이유로 성과연봉제를 포기하고 있다. 미국 GM이 대우자동차를 인수한 이후 만들어진 한국GM은 2003년 모든 사무직을 대상으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했다가 2014년 4월 다시 연공급제로 전환했다. 임금 격차가 늘어나면서 조직 문화와 직원들 간 업무 협조에 차질이 빚어졌다는 점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혔다.

마이크로소프트에는 직원들을 1~5등급으로 나눈 다음 최하등급 직원을 내쫓는 ‘스택랭킹’ 제도가 있었다. 하지만 이 역시 2013년 11월 폐지됐다. 조직 내에 유능한 직원과 함께 일하기를 꺼리는 분위기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2012년 7월 미국 월간지 ‘베니티페어’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스택랭킹을 분석한 기사에서 “직원들은 구글 등 떠오르는 IT 강자들과 경쟁하는 대신 동료들과 경쟁했다”고 지적했다. ‘성과를 측정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다시 ‘누구를 위한 성과인가’라는 반문으로 이어진다.
 
국민 70% “부실 원인은 낙하산”

이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성과연봉제에 반대하는 파업을 ‘기득권 사수파업’이라고 비난하며 밀어붙이고 있다. 성과연봉제는 박근혜 정부가 추진 중인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의 일환이다.

하지만 국민들이 생각하는 ‘공공기관 정상화’의 방안은 따로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금융노조가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0.5%는 금융 및 공공기관 부실의 원인으로 ‘낙하산 인사와 관치금융’을 꼽았다. ‘직원의 태만 및 저성과’라는 응답은 19.2%였다. 또한 72.8%가 금융 및 공공기관의 운영 가치로 ‘국민복리, 공익성’을 꼽았다. ‘영업성과와 효율성’이라는 응답은 18.5%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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