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검경의 고 백남기 농민 부검 영장 재청구에 추가자료제출을 요구한 가운데 의료전문가들이 백씨의 사인은 의학적 논란을 삼을 대상이 아니라고 지적하고 나섰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소속 전문의 3인은 27일 오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3층 입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건 발생 당시 백남기 농민은 의학적으로 명백히 즉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서 "경찰은 의학적 논쟁의 대상이 아닌 것을 의학적 논쟁의 대상으로 자꾸 몰고가지 말라"고 주장했다. 기자회견엔 백씨 유족, 유족 법률대리인, 백남기 농민 투쟁본부(백남기 농민 국가폭력 진상규명 책임자 및 살인정권 규탄투쟁본부)도 함께 했다.

▲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백남기 농민 유족과 법률대리인, 백남기 농민 투쟁본부는 9월27일 오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3층 입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은 의학적 논쟁의 대상이 아닌 것을 의학적 논쟁의 대상으로 자꾸 몰고가지 말라"고 주장했다. 사진=손가영 기자

이들에 따르면 지난해 11월14일 사고 후 백남기 농민의 상태는 이미 손쓸 도리가 없었다. 김경일 신경외과 전문의는 사고 당일 백씨의 CT 촬영 사진과 의사소견서를 보며 "뇌 오른쪽 부분에 발생한 급성 경막하 출혈이 뇌를 얼마나 심하게 눌렀는지 뇌 중심선을 반대쪽으로 밀어내고 있었다"면서 "경막 아래에 뇌를 감싸고 있는 지주막 아래에도 전체에 걸쳐 출혈이 보였다"고 말했다. 김 전문의는 유족 요청으로 사고 당일부터 사망 때까지 백씨를 지켜 봤다.

김 전문의는 백씨의 뇌 촬영 기록에는 뇌 경막이 찢겨져 생긴 공기방울이 보였고 두개골, 눈을 둘러싼 협골과 안와도 골절된 상태였다고 밝혔다.

그는 "사건 발생 당일 응급실에서 찍은 CT 소견서만 보더라도 백씨는 명백히 즉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서 "진단명이 확실하지 않으면 진단명을 확실히 하기 위해 부검하게 되지만 백씨의 경우 진단명 논란은 없다. 부검이 필요없다"고 강조했다.

사고 당일 백씨를 진료했던 서울대 병원 담당의는 급성 경막하 출혈이라 진단했다. 백씨의 사망진단서에도 원 사인으로 급성 경막하 출혈이 기재돼있다.

백도라지씨는 사고 당일 서울대병원 응급실에서 백씨의 소생 가능성이 없다며 퇴원을 권유 받은 바 있다.

기자회견에 참가한 백도라지씨는 당시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이 정도의 부상이면 수술 자체가 의미가 없다. 아버지가 살아나기 힘들 거고 수술도 힘들 것"이라면서 "일단 여기서 주말을 보내고 이후 집 근처 요양병원으로 옮기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해당 의사는 백씨가 피부를 꼬집어도 움직이지 않거나 눈꺼풀을 열어봐도 동공 반응이 없는 상태를 확인하며 "심한 출혈로 인해 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라 설명했다.

이후 경막하 출혈제거술 및 감압을 위한 두개골 절제술을 결정한 집도의는 백도라지씨에게 "수술을 해도 생명 연장 정도일 뿐"이라고 말했다. 수술 후 의료진은 "백씨는 대뇌의 절반 이상과 뇌뿌리가 손상돼 의식 회복 가능성을 기대하는 건 매우 어렵다"고 설명했다.


백씨의 부검이 불가피하다는 경찰의 근거 중 하나는 서울대 의료진이 작성한 백씨의 사망진단서다. 의료진은 백씨가 '병사'했다며 '급성신부전으로 인한 심폐정지'가 사인이라 기재했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부검 영장이 기각된 지난 26일 "백남기 농민의 사인이 불명확해 부검할 필요가 있다"고 재청구 의지를 밝혔다.

대한의사협회 및 통계청의 진단서 작성지침에 따르면 서울대 의료진은 오류를 범했다. 지침은 '심폐정지'를 사인에 쓰지 말 것을 권고한다. 심장과 폐의 정지는 사인이 아니라 사망의 징후이기 때문이다. "사망원인에는 질병, 손상, 사망의 외인을 기록할 수는 있지만 심장마비, 심장정지, 호흡부전, 심부전과 같은 사망의 양식(mode of death)은 기록할 수 없다"가 그 내용이다.

이에 따르면 '병사' 기재도 오류다. 우석균 인의협 공동대표는 "암환자가 (투병 후) 폐렴으로 죽어도 암 때문에 사망했다고 하고 교통사고 환자가 (투병 후) 장기부전으로 사망했다 하더라도 교통사고를 사인이라 한다"면서 "백씨의 경우 지침은 외상성 뇌출혈(급성 경막하 출혈)을 원사인으로 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 공동대표는 백남기 농민의 뇌출혈은 시위 진압 당시 경찰의 물대포 살수에 의해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외인사'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 대한의사협회가 발간한 '진단서 등 작성·교부 지침'(2015.3) 중 사망원인 기재 부분
▲ 대한의사협회가 발간한 '진단서 등 작성·교부 지침'(2015.3) 중 심폐정지를 사인에 기재하지 말 것을 권고하는 부분.

경찰은 영장을 발부받기 위해 27일 중으로 법원에 추가 자료를 제출할 예정이다.

영장 발부 가능성이 여전히 열려 있는 가운데 백씨 유족은 27일 직접 탄원서를 작성해 영장심사를 맡은 서울중앙지법에 전달했다.

백씨 유족은 "영장이 발부되기 전에 그리고 서울대병원에서 공식적으로 시설 보호 요청을 하지 않았음을 밝혔는데도 병원 주변에 경찰차 수십대와 경찰 수백명을 배치해 유족, 대책위, 소식을 듣고 찾아오신 시민들께 불필요한 긴장을 일으켰고 무력으로 시신을 탈취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불러일으켰다"고 적었다.

백씨 유족은 이어 "경찰의 손에 돌아가신 고인의 시신에 다시 경찰의 손이 절대로 닿게 하고 싶지 않다"면서 "존경하는 판사님께서 유족들의 뜻을 받아주시고, 부검 영장 발부를 반려해주시길 눈물로 호소 드린다"고 밝혔다.

▲ 백도라지씨가 27일 작성하고 서울중앙지법에 제추한 백씨 유족의 탄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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