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한국 정치인의 표준조건은 ‘55세 남성’이다. 20대 국회의원을 조사한 결과 평균 나이는 55.5세, 남성 비율은 83%가 나왔다. “한국 사회에서 누가 정치를 할 자격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메세지다.” 김주온(26)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은 ‘중장년의 엘리트 남성’이 정치를 독점해온 반면 ‘젊은 여성’은 정치에 대해 말하는 것부터 낯설어 해왔다고 말했다. 공당의 대표자리를 역임하고 있는 그는 이 말을 몸으로 느껴온 ‘20대 여성’이다.

김씨는 지난 9일 녹색당 '여성공동운영위원장'에 당선됐다. 공동운영위원장은 기존 정당의 ‘당 대표’와 유사한 자리다. 녹색당은 ‘여성 당대표’, ‘남성 당대표’를 각각 한 명씩 뽑아 총 2명의 운영위원장을 뽑는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23일 서울 중구 덕수궁 인근에서 김주온 공동운영위원장을 만나 청년 여성의 정치이야기를 들었다.

▲ 김주온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정치인 후보라 해도 “결혼했냐” “아버지 운동원으로 나왔냐” 물어

2년 전 녹색당에 가입해 활동을 이어온 그는 지난 20대 총선 녹색당 비례대표후보기도 했다. 20대 총선은 그가 처음 활동가에서 ‘정치인’으로 거듭난 시점이기도 하다. 당시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들은 각기 동물권, 탈핵, 주거권 등의 의제를 대표하고 있었다. 김씨의 의제는 ‘기본소득’이었다. 당원이 되기 전부터 김씨는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의 활동가로서 한국사회에 기본소득 정책을 알려왔다.

‘어린 여성’이 운영위원장에 나서는 데 당 내 편견이 적지 않았냐는 말에 그는 “녹색당은 상대적으로 평등 문화가 발달해 대부분이 지지하고 응원해줬다. 직접적인 반대는 없었다”면서 “당이 아닌 활동 자체에서 매번 '젠더 편견'을 맞닥뜨린다. 그래서 이번 선거를 통해 청년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이 굉장히 명확해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젠더 편견은 ‘여성 혹은 남성은 이래야 한다’는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을 뜻한다.

김씨는 사소하게는 악수를 하느냐 마느냐 여부부터 정치인으로서 가지는 기대감까지 다방면에 걸쳐 편견이 확인된다고 말했다. 출사표를 던진 여성에겐 “예상못했다”, “전장의 최전선에서 어떻게 견딜거냐”, “할 수 있겠냐” 등 남성에게 하지 않는 솔직한 반응들이 가감없이 제기된다는 것이다. 그는 “결혼했냐”고 대뜸 묻거나 “아버지가 후보로 나오셨냐”면서 후보로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유권자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피켓팅, 악수 등 거리에서 하는 단순한 활동에서도 악수를 하고 손을 놓지 않는다거나 스킨십을 시도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지난해 썰전에서 나경원 의원과 조윤선 장관을 두고 미모 대결을 시킨 것만 봐도 보이지 않느냐.” 그는 이미 '거물급'이 된 여성정치인도 외모평가에 시달리는 세태를 지적하며 정치라는 공간이 남성중심적이기 때문에 여성이 진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들은 편견과 싸워야 한다. 능력보다 외모로 평가받는다. 실수를 하면 ‘여성이기 때문에’ 손가락질 받고 ‘여성 전체를 욕되게 하는 사람'이 된다. 소수의 남성에 의해 발탁된 여성이 아니면 돈, 인맥 등 자원을 얻거나 미디어에 노출되는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다."

▲ 김주온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얘기가 될 만큼’ 수를 확보하고 여성정치인에 대해 얘기하라

그는 현재 사회에 “정치는 이래야 한다”와 “여성은 이래야 한다”는 기준이 있고 여성은 정치에 맞지 않는 존재로 그려진다고 말했다. 예로 들면 ‘여성은 야심과 권력욕이 없어서 정치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은 여성 내 다양성을 삭제해서 잘못됐을 뿐더러 권력욕만으로 정치행위를 재단한다는 것이다.

“일단 수가 많아져야 한다.” 김 운영위원장은 여성 정치인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는다면 여성 정치인에 대해 제대로 얘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수가 적으면 여성 내 다양한 스펙트럼을 고려할 전제가 만들어지지 않고 그들에게 ‘대표성’이 쏠린다는 평가다. “청년 여성 한두 명을 비례대표로 뽑아 놓고서 ‘결국 여성·청년 의제 활성화를 제대로 못했다’고 한다. 여성가족부 장관 등 소수로 존재하는 여성에게 모든 여성 의제가 떠넘겨져 평가된다.” 그는 이같은 상황에서 여성 정치인들이 ‘잘하면 예외적인 여성, 못하면 여성인 탓’이라는 딜레마의 부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정치인에게는 동료가 주는 용기의 중요성도 간과할 수 없다고 말했다. 녹색당에는 김씨 외에도 서울시당 공동운영위원장, 서울시당 강남서초지역위원장, 파주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등 20대 여성이 선출직 대표가 된 경우가 다수 있다. 김씨는 “물론 모두와 다 (입장이) 맞지 않다. 그러나 혼자면 아무 것도 못한다”면서 “청년 여성으로서 같은 자리에서 고민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정말 큰 의지가 됐다. 다른 사람 ‘있다’는 것만으로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녹색당은 당헌의 조직구성원리로, 실질적인 성평등을 위해 당의 모든 대의기관 및 위원회 구성시 여성 비율이 50% 이상이 되도록하는 평등의 원칙을 채택하고 있다. 녹색당 내 여성 대표자의 비율이 높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장애인ㆍ청년ㆍ소수자 등의 정치참여를 위해서도 일정 비율 또는 일정 숫자 이상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김 운영위원장은 여와 남의 ‘동수’를 보장하는 이 제도를 “매우 적극적인 할당제 조치”라고 하면서 “다른 소수자의 대표성 확보에 대해서도 발전적 논의를 이어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사가 수십개 나도 제대로 다뤄지지 않는 ‘청년 여성의 문제’

좋은 변화를 이끄는데 ‘정치인의 정체성’은 얼마나 중요할까. 청년 여성 정치인이 소수자의 문제를 더 잘 대변할 수 있을까. 좀 더 생각해봐야 할 문제겠지만 김씨는 현재 사회를 “청년 여성의 어려움이 얘기되지 않는 사회”라 진단했다. 최근 불거졌던 ‘메갈리아 논란’이 이를 보여줬다는 것이다.

“청년 여성의 어려움은 이야기되지 않았다. 폭력, 살해, 강간 등 범죄에 노출되는 문제, 성별 편견으로 대상화되는 문제, 단톡방에서 확인된 외모평가, 언어폭력 문제까지… 여성청년의 취업이 더 어렵고 비정규직 고용이 더 많고 임금격차도 크다. 의무가 된 화장, 능력을 그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문화도 있다.” 김씨는 이런 문제들이 줄곧 문제제기돼 왔지만 정치가 “진지하게 수용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들이 “여기에 관심을 가져 달라고 말하기 위해 어떤 수단(미러링)을 택”했고 “수단이 옳냐, 그르냐”로만 논의가 되면서 메갈리아 논란이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는 “수단만 얘기하는 건 성차별 문제를 해결하기 싫다는 뜻과 같지 않느냐. 이 시대에 정치를 하는 정당은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없애는 일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 사진=김주온 공동운영위원장 페이스북

“녹색당 ‘자연 사랑’ 오해 금물… 생태문제는 생존과 정의의 문제라는 것”

세계적으로도 녹색당은 청년과 여성의 정치 발판 역할을 하고 있다. 독일녹색당의 안나 뤼어만은 만 19세 때 독일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스웨덴 녹색당 소속의 구스타프 프리돌린(33)은 현재 교육부장관을 역임하고 있다. 독일 녹색당의 페트라 켈리, 영국 녹색당의 캐롤라인 루카스, 나탈리 베넷 등은 세계적으로 알려진 여성 정치인이다.

김 운영위원장은 현재 당 규모 확대에 가장 관심이 많다. 그는 "지금은 1만 명 정도 되는데 4만 명으로 늘리는 게 목표다. 정당 득표율이 당원수에 비례하는 정도가 있는데 안정적으로 3%를 받으려면 4만 명이 돼야 한다"면서 "목표가 높을 수 있지만 대선과 지방선거에도 당선자를 내서 인지도를 높여야 한다. 녹색당은 성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녹색당이 정치에 대한 혐오를 긍정으로 바꿀 연결고리라며 '녹색당의 정치'를 사람들에게 뿌리내리고 싶다고 말했다. "정치 자체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싶다. 풀뿌리 정당인 녹색당은 언제 어떻게 참여할 지 모르는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플랫폼이 될 수 있다." 현재 녹색당 지역 당원들은 일상적으로 지역 정당연설회를 진행하고 3명 이상만 모여도 지역 별 기초 모임을 꾸릴 수 있도록 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김 운영위원장은 녹색당에 대한 오해를 풀고 싶다며 "녹색당은 '자연을 사랑해요'라고 말하는게 아니라 생태문제가 곧 우리의 생존 문제라 말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세먼지, 해수면 상승, 폭염과 한파, 녹조, 식량자급율, 핵발전소 방사선, 지진문제 등 기후·생태 문제가 산적해 있는 상황에서 이에 대한 기조를 바꾸지 않으면 답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가장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부터 피해를 입는다. 생태 문제를 해결하는 건 정의를 세우는 정치의 문제"라면서 "사회구성원이 이를 생존에 직결된 중요한 정치 문제로 인식하는 것부터 필요한 상황이다. 이루어갈 것"이라 말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