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을 제대로 좀 만들어 달라. 세월호 유족이 겪은 어려움을 백남기 어르신 가족도 똑같이 겪고 있다."

백남기대책위가 책임자 처벌 및 진상규명을 위한 대국민 운동을 선언한 가운데, 장례식장에서는 언론 보도에 대한 불신이 터져 나왔다.

백남기대책위(생명과 평화의 일꾼 백남기 농민의 쾌유와 국가폭력 규탄 범국민대책위원회)는 26일 오후 고 백남기 농민이 안치된 서울대 장례식장 3층 입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책위를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 진상규명 책임자 및 살인정권 규탄 투쟁본부'로 전면 개편하고 특검 도입을 위한 전 국민 서명운동을 전개해 나갈 것이라 선언했다.

▲ 백남기대책위 및 유족이 9월26일 오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3층 입구에서 '백남기농민 상황 및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대책위는 '대국민 운동'으로 국면이 전환됨에 따라 오는 29일 비상시국선언 개최를 시작으로 사회 각계각층의 릴레이 기자회견이 이어질 것이라 밝혔다. 각 지역에 백남기 농민을 추모하는 시민분향소가 설치되고 매일 저녁 7시 장례식장 입구에서 촛불문화제가 열릴 예정이다.

오는 10월1일 오후 3시엔 '살인 정권 박근혜 정권을 규탄하고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범국민대회'가 개최된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장례식장 입구를 가득 메운 취재진을 향해 제대로 된 보도를 해줄 것을 거듭 요청했다.

연대발언에 나선 김금옥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는 "국민을 대상으로 이런 잔혹한 행동을 하는 정권이 어디 있느냐"면서 "농업과 식량주권을 위해 푸른 밀밭을 가꾸며 생명 평화를 일궈 온 백남기 농민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이곳에 있는 언론과 방송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기를 간곡히 호소 드린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언론의 오보 및 왜곡보도로 피해를 입은 바 있는 ‘경빈 엄마’ 전인숙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대외협력분과장은 "참사가 있고 2년 6개월이 넘었다. 지금까지 누누이 외치고 있는데 제발 제대로 된 방송을 내달라"면서 "백남기 농민에 대한 방송, 취재를 보면서 '제 2의 참사'라 생각했다.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정보, 알아야 할 권리 제대로 알려 달라"고 누차 강조했다.

▲ 지난 9월25일 백남기 농민의 시신이 장례식장에 안치된 후에도 부검을 위한 경찰의 진입시도는 계속됐고 시민들이 막아섰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백남기 농민 사태에 대한 축소 보도 및 왜곡보도는 사건이 발생한 2015년 11월14일부터 꾸준히 제기돼왔다.

지난달 29일 국회 언론공정성실현모임이 주최한 ‘박근혜 정부 언론왜곡보도 피해자 증언대회'에서 최석환 대책위 사무국장은 "단물이 빠지니 보도를 하지 않기 시작했다. 무관심이 이어지고 있다"면서 "정부에 비판적인 보도는 바라지도 않는다. 최소한 백남기 농민이 왜 서울에 올라왔는지는 다뤄야 할 거 아니냐"고 비판했다.

백씨가 공권력에 의해 317일간 사경을 헤매다 숨을 거둔 지난 25일에도 본질을 흐리는 축소보도가 이어졌다는 지적이다. 민동기 미디어평론가는 26일 PD저널에 실린 '정부책임과 진상규명이 없는 백남기 농민 보도'에서 "‘보도 프레임’이 ‘부검 공방’에 집중됐다"며 "‘부검 공방’ 프레임은 백남기 씨 죽음에 대한 경찰 책임론을 희석시키고, 박근혜 정부의 책임론을 교묘하게 돌리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많다"고 비판했다.

그는 "10개월 동안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검찰과 경찰이 갑자기 ‘사인 규명을 위해 부검을 하겠다’는 것을 비판하는 게 오히려 상식적인 보도태도가 아니냐"면서 "상당수 언론은 ‘검경책임론’ ‘정부책임론’과 ‘진상규명’은 외면한 채 ‘부검 공방’에 방점을 찍었다. 전형적인 ‘물타기 보도’"라고 평가했다.

이날 MBC 뉴스데스크는 백씨 사망에 대해 두 문장으로 이뤄진 26초 길이의 리포트를 한 꼭지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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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장 인근에서 검·경의 부검을 막기 위해 밤을 새운 시민들은 일제히 언론에 대한 불신감을 표했다.

25일 오후 3시부터 서울대병원에 있었다는 고아무개씨(43)는 "공정하지 않은 것은 공정하지 않다고 보도하는게 언론"이라면서 "경찰이 소극적으로 수사하고 새누리당이 이를 감싸는 태도가 옳지 않다면 그대로 보도해야 한다. 법원이 경찰의 물대포가 불법이라고 했으면 보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부산대에서 '거꾸로'라는 언론비평동아리에서 활동하고 있는 대학생 황성제씨(26)는 "한 사람의 생명이 꺼졌는데 슬퍼할 시간조차 주지 않고 있다. 경찰의 부검 시도는 '시신탈취'로도 보이는데 이런 비상식적 일이 일어나는데 언론은 한 꼭지로만 보도한다."면서 "백남기 농민이 왜 쓰러졌는지, (대책위는) 왜 싸우고 있는지를 보도해야 한다. 심층·집중보도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찰 병력이 에워 싼 25일 장례식장 현장에서는 채널A, MBN 등 종합편성채널 취재진들이 취재거부로 곤욕을 겪기도 했다. 이틀간 서울대병원을 지켰던 권명숙씨는 "촛불문화제 때 시민들이 채널A보고 '나가라'고 소리쳐 취재진이 잠시 자리를 비우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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