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비판하고 보다 나은 대안을 제시하는 입장에 있는 언론인들이 왜 공인들이 소중히 여기는 투철한 직업의식과 자존심을 모르는 걸까. 무디어진 윤리의식으로 좋은 게 좋다 식의 자기 독선에 빠져 애써 어두운 부분을 외면하면서 받는 금품과 향응 속에 언론인 스스로 자기비하의 길을 걷고 있다.” (1989년 1월20일자 기자협회보 우리의 주장 ‘이제 촌지는 거부해야 된다’)

우리는 27년 전 한국기자협회의 사설이 지금도 유효한, 불행한 시대를 살고 있다.

지금껏 기자들은 자신의 지갑을 쉽게 열지 않았다. 얻어먹는 데 익숙했기 때문이다. 기사는 ‘얻어먹은 만큼’ 기울어질 수밖에 없었다. 얻어먹고 떳떳하려면 보통은 자신의 기사로 ‘밥값’을 해야 하했다. 고급 한정식에 골프에 취재를 빙자한 해외여행까지 공짜로 누릴 수 있는 ‘달콤한 접대’를 위해 기자는 홍보맨을 자처했다. 기자를 지칭하는 사회적 용어는 1990년대 ‘사이비 기자’에서 2010년대 ‘기레기’로 추락했고, 김영란법 적용대상자가 되는 걸 자초했다.

김영란법이 시행되는 오는 28일부터 언론계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취재환경을 맞이하게 됐다. 과잉입법 논란에도 헌법재판소가 언론인을 김영란법에 포함시킨 이유는 지금껏 지속되어온 반저널리즘 관행을 법으로 강제하지 않고서는 바로잡을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중앙일간지의 한 기자는 “그간 공짜 밥·공짜 술 먹고 골프 치고 명절에 선물 받는 걸 본업으로 삼아오신 분들이 자연스럽게 삶의 의미를 잃고 이 바닥을 떠나게 되길 바란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영란법 자초한, 언론계 부정부패의 역사

▲ 언론노보 1991년 11월4일자.
언론계의 부정부패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과거에 비해 촌지는 많이 사라졌고 언론인의 특권도 크게 줄어들었지만 언론계를 바라보는 눈은 여전히 곱지 않다. 과거 언론의 가장 큰 문제는 촌지였다. 1991년 보사부 기자단 거액 촌지수수 파문이 대표적이다. 이 사건은 보사부 출입기자단 간사가 보사부 산하 및 관계 기관들로부터 8850만원의 기금을 조성해 기자단의 여행경비 등으로 사용한 사건으로, 언론이 썩을 대로 썩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출입기자들이 출입처에서 돈을 뜯어 사적으로 유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당시 간사를 맡았던 연합통신기자는 사표를 냈고, 각사는 잇따라 기자들에게 중징계를 내렸다. 문제의 진원지가 출입기자단 제도였기 때문에 각 출입처별로 출입기자단 해체결의와 자정선언이 등장했다. 당시 보사부를 비롯해 서울시교육청, 경기도청 등 기자단이 해체를 결의했다. 그러나 반성은 오래가지 않았다. 관행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1996년 서울시청 기자들은 15개 구청장들로부터 1500만 원대 촌지를 수수한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됐다.

1995년 KBS 스포츠취재부 기자들은 최아무개 부장의 인사 조치를 요구하는 집단행동에 나섰다. 기자들은 “각종 스포츠행사를 치루는 데 관계자들이 돈 봉투를 가져오지 않을 경우 (최 부장이) 기자들에게 비판기사를 쓰도록 강요했고 돈 봉투를 가져오거나 자신의 이익이 관련된 행사에 대해선 뉴스가치의 경중을 가리지 않고 확대·미화 보도하도록 지시했다”고 폭로했다. KBS는 최 부장을 인사 조치했지만 여론은 ‘최 부장 한 명뿐이었겠느냐’며 시선이 곱지 않았다.

1992년 한국기자협회가 전국의 기업 정당 정부부처 홍보담당자 4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촌지를 줬다는 응답자의 62.1%는 “한 번에 10만 원 이상 줬다”고 답했다. 50만 원 이상 줬다는 응답도 7.8%에 이르렀다. 촌지는 언론계 전체에 걸쳐 만연했다. 받는 것보다 받지 않는 게 더 힘들 정도였다. 언론계의 부정부패 척결은 1987년 민주화이후 한국사회의 시대적 화두였지만 개선 과정은 더디기만 했다.

▲ 기자협회보 1993년 2월18일자.
1996년 홍두표 전 KBS사장은 신동아그룹 최순영 회장으로부터 우호적 보도청탁과 함께 1억 원을 받은 혐의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KBS 이아무개 기자는 1999년 한 업체의 세금 문제를 해결해주고 1000만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고, 또 다른 KBS 이아무개 기자는 주가조작에 가담해 4억7500만원의 부당차익을 올려 논란이 됐다. 당장 가장 윤리적이어야 할 공영방송의 현실이 이랬다.

2000년대에는 일부 영화사가 홍보대행사와 논의를 거쳐 스포츠지 기자들에게 한국영화의 경우 200만~500만원, 외화의 경우 50만~100만원까지 촌지를 준 것으로 드러나 검찰이 대가를 받아온 일부 기자에 대한 수사에 나서기도 했다. 한 홍보대행사 관계자는 “돈을 지불하지 않으면 기사화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영화담당기자를 만나 돈을 보도 자료에 넣어 건네주며 통상적으로 영화 시작할 때와 끝날 때 나눠서 지불한다”고 전했다.

언론인들은 정보를 이용해 부당이득을 취하기도 했다. 중앙일보 길아무개 기자는 미공개 기업정보를 동생에게 넘겨 주식투자로 4억6000만원의 시세차익을 남긴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년6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매일경제TV 조아무개 PD는 다음커뮤니케이션 측에 수차례에 걸쳐 주식을 팔라고 요구해 이를 취득한 뒤 코스닥 상장을 전후로 되팔아 수십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 조PD는 당시 비난여론이 일자 사표를 냈을 뿐 그에 대한 법적 조처는 이뤄지지 않았다.

2002년 ‘윤태식 게이트’에선 벤처기업과 언론의 유착관계가 드러나 사회적인 충격을 줬다. 당시 검찰은 언론인 25명이 ‘패스21’ 주식을 3000주 가까이 가지고 있었다고 밝혔다. 이들은 수십 분의1 시가로 싸게 주식을 구입해 되파는 식으로 이득을 챙겼다. 신문에서 조금만 벤처기업을 띄워줘도 주가가 올랐기 때문에 유착은 심했다. 일부 벤처기업들은 주식의 10%를 공무원과 기자 로비를 위해 따로 관리하는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2002년 분당 파크뷰 특혜분양 사건에는 언론인 9명이 연루된 것으로 드러났고 같은 해 타이거풀스 로비사건에는 10개 언론사가 지분에 참여하고 자사 매체를 통해 이를 홍보까지 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정작 언론인들은 제대로 법적 처벌을 받지 않았다. 2004년에는 건설회사에 신문을 강매하고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자 2명이 구속되고 기자 4명이 불구속 입건됐다. 이들은 건설현장의 먼지 등을 꼬투리 삼아 리베이트 등을 챙겼다. 죄질에 비해 형벌은 낮았다.

▲ ⓒGettyImages.
언론인들은 정치자금도 받았다. 1997년 대통령 선거 당시 동아일보 이아무개 정치부장은 이아무개 전 국세청 차장에게 1500만원을 받았다. 이 돈은 한나라당의 1997년 대선불법자금 가운데 일부였다. 이 부장은 대선 당시 선거정당팀장을 맡고 있었고, 이 돈은 기사 청탁 대가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2003년 이 사건을 수사하던 서울지검은 이 부장 외에도 20여명의 언론인에게 돈이 건너간 사실을 포착했다. 이 부장은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법적처벌을 받지 않았다.

대전MBC 고아무개 기자는 법조출입기자라는 지위를 이용해 금품을 갈취하고 이권에 개입했다가 2001년 대전지법으로부터 징역3년 추징금 2억1800만원 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오락실 불법 영업을 보도하지 않는 대가로 400만원을 갈취하고, 특정 병원장을 구속되도록 해주겠다며 7600만원을 수수했으며, 아파트 사업승인을 받게 해주겠다며 건설업자로부터 1억4200만원을 받기도 했다. 고 기자는 여전히 부패한 언론의 현주소를 드러낸 문제적 인물이었다.

2001년 국세청은 대대적인 언론사 세무조사 결과 23개 중앙 언론사의 세금탈루액이 1조3500억 원이라고 발표했다. 당시 국민들의 충격은 컸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당시 13개 중앙언론사가 최근 4년간 5434억 원 규모의 부당내부거래를 한 사실이 적발돼 242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고 밝혔다. 사주와 친인척 등 특수 관계인에게 비상장주직을 저가 매각한 뒤 고가매입하게 하는 식의 부당거래였다.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언론사의 ‘부패’는 언론의 신뢰도를 떨어뜨렸다.

“접대를 많이 받았던 언론사는 김영란법을 극구 반대한 언론사”

언론인들도 언론계 부패를 인식하고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실시한 2013년 기자의식조사에 따르면 언론계에서 촌지가 ‘자주 혹은 매우 자주 수수되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무료티켓’과 ‘선물’이 54.6%, ‘향응이나 접대’가 53.1%, ‘취재 관련 무료 여행’이 44.6%, ‘외유성 취재 여행’이 21.7%, ‘금전’이 18.4%였다. 응답자의 40.3%는 “촌지 수수가 기사에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다. 언론재단은 “촌지 유형별 수수 빈도가 2009년 조사에 비해 전체적으로 높아졌다”고 밝혔다.

수십 년 간 쌓여온 언론인의 윤리에 대한 불신은 결국 김영란법으로 등장했다. 헌법재판소는 “언론의 공정성을 유지하고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언론인에게도 공직자에 버금가는 높은 청렴성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올해 한국기자협회가 기자 3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기자들의 66%는 김영란법 합헌 결정을 두고 ‘잘된 결정’이라고 응답했다. ‘잘못된 결정’이란 응답은 26.3%에 그쳤다.

▲ 뉴스타파 보도화면 갈무리.
최근에는 뉴스타파가 산업은행의 경영관리를 받고 있는 (주)STX의 법인카드 사용 내역을 분석 공개한 결과, 지난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언론사나 기자를 상대로 한 접대비가 2억5000만 원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기도 했다. 접대대상으로 지상파3사, 조선·중앙·동아일보 등 주요 신문과 경제지, 인터넷 언론 등 모두 36개 언론사 이름이 나왔다. 최승호 뉴스타파 앵커는 “접대를 많이 받은 기자들은 대체로 김영란법을 극구 반대한 언론사 소속이었다”고 꼬집었다.

오늘날 언론계 부정부패의 가장 큰 문제는 처벌이 쉽지 않다는 점이었다. 앞서 언급한 부패 사례들은 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 2항 공정보도(우리는 뉴스를 보도함에 있어서 진실을 존중하여 정확한 정보만을 취사선택하며, 엄정한 객관성을 유지한다), 3항 품위유지(우리는 취재 보도의 과정에서 기자의 신분을 이용해 부당이득을 취하지 않으며, 취재원으로부터 제공되는 사적인 특혜나 편의를 거절한다) 5항 올바른 정보사용(우리는 취재활동 중에 취득한 정보를 보도의 목적에만 사용한다) 10항 광고·판매활동의 제한(우리는 소속회사의 판매 및 광고문제와 관련, 기자로서의 품위를 손상하는 일체의 행동을 하지 않는다) 위반 소지가 높지만 법적 처벌 규정이 없어 여태껏 처벌이 어려웠다.

예컨대 출입처의 지원으로 외유성 출장을 떠나도, 고급 한정식집에서 근사한 대접을 받고 공짜 골프를 쳐도 법적으로는 처벌이 쉽지 않았다. 당장 ‘언론자유 침해 소지가 있는 과잉수사’라는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에 고강도 수사도 어렵다. 1997년 김영삼 정부는 전국 50곳에 사이비 기자 신고센터를 열었지만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었다. 이런 가운데 협찬을 받고 기사를 쓴 뒤 협찬고지를 하지 않는 식으로 지면은 홍보지로 전락했고 견제 받지 않는 취재원과 기자간의 공생관계는 저널리즘을 후퇴시켰다.

기자들은 수십 년 간 기자증을 팔거나, 취재원의 약점을 미끼로 금품을 갈취했고, 광고게재를 강요하고, 접대골프와 공짜 해외여행을 즐기며 펜을 휘둘렀다. 법적 구속력이 없는 기존 기자협회 윤리강령이나 각 언론사가 자체적으로 갖고 있는 윤리강령으로는 근절할 수 없었다. 신문윤리실천요강 15조1항(언론인은 이해당사자로부터 금품, 향응, 취재여행경비, 제품 및 상품권, 고가의 기념품 등 경제적 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을 위반해도 관행이란 이름으로 각종 접대와 향응은 정당화됐다. 이제 언론계는 ‘법이 없는 한 언론은 구제불능’이라는 사회적 합의로 탄생한 김영란법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됐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