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4일 “나라가 위기에 놓여 있는 이러한 비상시국에 굳이 해임 건의의 형식적 요건도 갖추지 않은 농림부 장관의 해임건의안을 통과시킨 것은 유감스럽다”고 말하며 국회가 가결시킨 김재수 장관 해임건의안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 대통령은 국회에서 가결된 국무위원 해임 건의안을 거부한 헌정 사상 첫 대통령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

국무위원 해임 건의안이 가결된 것은 역사상 여섯 번째로, 앞서 다섯 명의 장관은 해임 건의안이 가결된 후 자진 사표형식으로 물러났다. 박 대통령은 그러나 24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장·차관 워크숍을 주재하며 “20대 국회에 국민들이 바라는 상생의 국회는 요원해 보인다”, “우리 정치는 시계가 멈춰선 듯하고 민생의 문제보다는 정쟁으로 한 발짝도 못 나가고 있는 실정”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워크숍엔 해임대상자 김재수 장관 등 정부부처 고위인사 100여명이 참석했다.

▲ 박근혜 대통령. ⓒ연합뉴스
해임대상자가 자리한 행사에서 해임건의안을 가결시킨 국회를 비판하며 ‘수용불가’ 입장을 강하게 밝힌 셈이다. 이날 대통령이 밝힌 ‘형식적 요건도 갖추지 않은 해임건의안’이란 의미는 새누리당이 주장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장관의 직무상에 문제가 있을 때는 해임 건의를 할 수 있지만 장관이 되기 전에 일어난 도덕적 문제를 두고 해임을 건의할 수는 없다는 의미다.

야당은 박 대통령의 ‘수용불가’ 입장을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더불어민주당 윤관석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해임건의안 수용거부는 박근혜 정부의 인사 참사에 대한 국민들의 경고를 무시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당 장진영 대변인은 “온갖 비리의혹으로 점철된 우병우 민정수석과 최순실을 감싸고돌고, 야당이 일치하여 장관자격이 없다고 결정한 김재수 후보 임명을 강행하는 등의 ‘아몰랑 정치’로 국론분열을 초래한 장본인은 박 대통령”이라고 비판했다.

이날 박 대통령은 재단법인 미르와 케이스포츠 재단 설립에 최순실씨와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등 박근혜 대통령 주변 인물들이 관여한 정황이 드러난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대통령직을 수행하면서 한시도 개인적인 사사로운 일에 시간을 할애하지 않았다”며 선을 그었다. 

그러나 보수언론에서도 “청와대는 사안의 심각성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해명할 필요가 있다”(동아일보 9월21일자 사설)고 말하고 있다. 전경련은 보름 사이 19개 기업으로부터 800억 상당의 재산출연증서를 받아냈다. 성격이 다른 두 재단에 돈을 내는 기업의 이름은 거의 겹쳤다. 당장 재단 출연금의 80%는 비자금으로 쓸 수 있는 운영재산으로 알려진 상황이다.

박제균 동아일보 논설위원은 22일 칼럼에서 “최순실 씨가 비교적 자주 청와대를 드나든다는 사실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항간에는 최 씨가 청와대를 출입할 때 몰라본 파견 경찰이 원대 복귀 조치됐다는 얘기도 돈다”고 적기도 했다. 박제균 논설위원은 미르·케이스포츠 재단 설립 의혹 보도를 주도한 TV조선과 한겨레를 가리키며 “청와대의 눈으로만 보면 부패기득권 세력과 좌파 세력의 적대적 합작”이라고 촌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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