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이 11명 죽으면 이렇게 조용할까.”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렸던 ‘조선 하청노동자 구조조정 실태 대안 모색 국회 토론회’에서 나온 말이다. 11명은 올해 현대중공업 그룹에서 일하다가 사망한 노동자 수다.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9명, 현대미포조선에서 1명, 현대삼호중공업에서 1명이 산업재해로 사망했다.

한 해 10명이 넘는 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한 경우는 올해가 처음이 아니다. 2014년엔 12명이 현대중공업 그룹에서 목숨을 잃었다. 사망자가 갑자기 두 자리 수를 기록하고 그 해 4월에만 노동자 3명이 목숨을 잃으면서 2014년은 현대중공업 산업재해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 고용노동부는 전면적인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했고 현대중공업은 ‘안전경영 쇄신대책’을 내놨다. 그런데 2년이 채 지나지 않아 상황은 제자리로 돌아갔다.

▲ 디자인=이우림 기자

2014년 12명, 2016년 11명 사망 사고 발생

2014년 4월28일 일어난 익사 사고는 현대중공업의 안이한 안전관리를 총체적으로 드러냈다. 사내하청업체 김아무개씨(39)는 오후 8시40분 경 동료 세 명과 대형 작업차 ‘트랜스포트’를 이용해 블록을 옮기던 중 높이 2m 안벽에서 바다로 떨어졌다. 뒷걸음질 치며 트랜스포트에 신호를 보내다 뒤를 확인하지 못했던 것이다. 안벽엔 안전펜스가 없었다. 작업장 조도는 최소한 75럭스 이상이어야 하지만 당시 조도는 20~30럭스였고 강한 비바람이 불어 체감 조도는 더 낮았다. 동료들이 백방으로 주변을 수색해 찾은 구명장비는 긴 막대였다. 그들은 8분이 지난 후 사고 현장을 찾았지만 그는 보이지 않았다. 물에 빠진 중공업 노동자의 골든타임은 2~3분으로 알려져 있다. 작업복이 무거워 익사할 위험이 더 높기 때문이다.

하청노동자였던 김씨는 작업을 중지할 수 있는 비바람이 부는 야간에 작업을 했고 충분히 밝은 곳에서 일을 해야 했으나 ‘현저히 어두운’ 환경에서 일을 했다. 철제로 된 안전펜스만 설치돼있었다면 추락은 방지할 수 있었다. 구조 장비를 찾는데 8분이나 걸린 이유는 가까운 주변에서 장비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구명장비는 적정거리마다 배치돼있어야 한다. 인근에 구명튜브가 있었지만 철 구조물로 가려져 있었을 뿐더러 작업자들은 위치를 사전에 고지받지 못했다. 트랜스포트를 이용할 땐 작업 시작 전 안전 문제를 점검하는 작업계획서를 작성해야 하지만 당시 작업자들은 그런 내용을 알지 못했다.

▲ 사진=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부산지역본부 조선업재해예방팀 중대재해속보

왜 유사한 사고가 반복되나

고층에서 추락해 사망한 사고는 2014년 4건, 2016년 4건이다. 안전시설이 미비하고 작업장이 어두웠다는 원인이 반복됐다. 2014년 11월 이아무개씨(51)는 어두운 탱크에서 청소 작업을 하다 추락된 채 발견됐다. 2016년 8월 몽골 출신 이주노동자 A씨(42)도 안전난간이 없는 18m 높이에서 터치업(페인트칠) 작업을 하던 중 추락해 사망했다. A씨가 있던 화물칸의 조도는 빛이 거의 없는 1~2럭스였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최소한 75럭스 이상이 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창민 사내하청노조(금속노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지회장은 “탱크, 엔진룸, 데크 가릴 것 없이 선박 내부는 굉장히 어둡다. 특히 소지 작업처럼 마무리 단계 작업엔 조명을 거의 빼버린다”면서 “어두우니 발을 헛디뎌 추락하는 것이다. 작업장 높이가 2~3m부터 수십 미터까지 돼 조명이 없으면 위험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안전난간, 안전대, 안전방충망 등 안전시설 없이 작업하는 게 조선소의 일상이라고 말했다.

안전펜스가 미비해 바다에 추락한 사고도 반복됐다. 2014년 1건, 2016년엔 2건이다. 현대중공업은 2014년 사고를 계기로 해안벽에 추락을 방지하는 안전펜스를 설치한다고 했지만 모든 해안벽에 설치하지 않았고 일부 펜스의 경우 실효성이 낮았다. 지난 3월 하청노동자 서아무개씨(44)씨가 추락한 곳엔 밧줄로 연결된 이동식 스탠드가 놓여있었다. 7월26일 노아무개씨(72)는 해상 크레인 작업을 위해 안전난간을 해체시킨 해안벽에서 추락했다. 추락 익사 사고에 대해 안전보건공단은 “해안 벽에 1.8m 높이 이상의 방책을 세워야” 한다거나 “작업장으로 바로 갈 수 있는 임시통로를 설치하거나 고정식 안전난간을 설치할 것”을 권고해왔다.

크레인 탑재물 고박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자재물 인근에 접근을 금지시키는 관리를 하지 않아 사망한 사고도 반복됐다. 하 지회장은 “물량 압박 때문에 자재를 빨리 올리기 바쁘지 안전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면서 “표준작업지시서를 지키지 않는 게 일상이지 지킬 때가 매우 드물다. 안전관리자가 현장을 제대로 관리하는 걸 본 적도 별로 없다”고 지적했다. 2014년 10월 크레인에 연결된 ‘슬링벨트’가 2.8m 높이에서 끊어지면서 3톤에 달하는 자재가 안아무개씨(55)를 덮쳤다. 벨트는 날카로운 부분을 피해 둥근 부분에 감겨야 한다고 규정돼있지만 “정신없는 현장에서 그런 부분을 지키기가 힘들다”는 것이 현장 노동자들의 평가다. 2015년 10월에도 무게중심을 잃은 자재가 인근에서 작업을 하던 노동자를 쳤고 노동자는 튕겨져 나가 바다에 빠져 사망했다.

안전관리자의 부재에 따른 사고도 이어졌다. 2014년 10월 ‘해치커버(화물칸 덮개) 사고’는 ‘닫지 말라’고 말한 피해자의 말을 멀리 맞은편에 선 동료가 ‘닫으라’는 말로 이해하고 덮개를 닫아 벌어진 사고다. 2016년 4월 크레인 운전을 유도하던 신호수 이아무개씨(44)는 5톤 지게차에 치여 사망했다. 지게차를 비롯해 중공업 내 중장비는 시야 확보가 어려워 유도자를 두게 돼 있지만, 당시엔 유도자가 없었다.

고용노동부 특별근로감독 결과, 3년 동안 대동소이

현미향 울산산재예방운동연합 사무국장은 “2014년에 그렇게 특별근로감독을 했지만 2016년에도 똑같이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있다”며 “제대로 된 대책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아니냐”고 비판했다.

▲ 사진=2015년 7월 고용노동부 현대중공업 특별근로감독 결과보고서 중

실제로 고용노동부가 제시한 대책과 특별근로감독 결과를 보면 동일한 내용이 반복되고 있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안전보건공단이 발표한 중대재해속보를 보면 추락 사망 사건마다 △추락 방지 안전 난간 설치 △적절한 조도 확보 △철저한 안전대 부착 설비 등이 안전대책으로 권고되고 있다.

설비에 끼여 사망한 사고의 경우는 △작업지휘자의 관리감독 철저 △잠금장치 설치 및 표지판 설치 등이 반복됐다. 추락한 자재에 깔리는 사고에는 △인양 중 하물 아래 접근 금지 △중량물 작업 계획서 작성 △작업방법 개선 등의 대책이 권고됐다.

현대중공업 산재 문제 해결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특별근로감독 보고서는 3년 째 같은 총평을 담고 있다. 2013년부터 2015년까지 특별근로감독 결과 보고서의 총괄 평가에는 “재해가 증가하고 있음에도 안전이 최고 경영자의 경영철학으로 자리잡지 못했다”, “생산부서별 안전업무분장이 불명확하다”, “원·하청 안전 관리 협조가 필수적이나 유기적인 협조가 미흡하다” 등 세 가지가 빠짐없이 적혀있다.

현대중공업도 지난 3년 동안 대책 마련에 나섰다. ‘안전경영실’을 신설하고 ‘안전혁신 자문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안전책임 조직을 정비하고 ‘안전 절대수칙’을 제정했다. 이를 어기는 위반자에 대한 제재 강화, 안전준수자에 대한 포상제도 도입 등을 마련했다. 교육 강화에 방점을 찍고 안전아카데미를 신설하고 하청업체에 대한 안전교육을 내실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며 ‘상생과 협력의 안전문화 정착’을 위해 노사 공동 안전실천협의회도 설치했다.

현대중공업 홍보실은 매년 2500억 원을 안전보호용품, 안전교육 확대 등에 쓴다고 밝혔다. 향후 안전 시설 투자 예산을 5년에 걸쳐 매년 500억 원씩 추가로 투자해 매년 3000억 원 수준으로 확대해 나갈 것이라 밝혔다.

2500억원 투자에도 왜 사고는 줄어들지 않나

노동계에서는 고용노동부가 왜 근본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지 않는지 의구심을 표한다. 수년 째 같은 대책이 제안되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왜 반복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장 노동자들은 고용노동부의 산재 예방 의지에 회의를 표하고 있다. 하 지회장은 “상황이 이 정도인데 검찰이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책임자 구속을 ‘요구하는 척’이라고 해야 하는 게 고용노동부 아니냐”면서 “2014년 하청노동자들이 숱하게 죽었을 때 근로감독에 하청노조도 참여하게 해달라 했지만 고용노동부는 거부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2014년 특별근로감독 당시 고용노동부가 현대중공업에 부과된 과태료 10억여 원 중 4억여 원을 감면해준 것에 대해서도 의심을 품었다.

노동계는 안전난간을 설치하고 철저한 작업계획서 작성을 권고하는 등 사고 현장에 맞춰진 대책에도 의구심을 표한다. “‘조명이 어두우니 조명을 추가한다’가 아니라 ‘왜 조명이 없었는지, 왜 추락사가 되풀이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개별 사고 현장의 조명이 어두웠던 게 아니라 공장 내 모든 현장의 조명이 어두운 가운데 사고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런 환경을 만드는 시스템이 있으며 시스템이 바뀌지 않기 때문에 매해 같은 원인의 사고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 현대중공업 하청업체 기린테크 직원 A씨(42)는 지난 8월11일 청소작업을 하던 중 18m 높이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작업 장소엔 안전펜스가 설치돼있지 않았다. 조도는 1~2럭스 수준이었다. 사진=현대중공업노동조합

이들은 문제를 ‘하청 중심의 생산구조’로 보고 있다. 기본적인 안전 규칙을 지킬 수 없는 데엔 물량 압박에 시달리는 하청노동자가 있고 200개가 훨씬 넘는 하청업체가 일부 공정만 맡다 보니 작업계획과 안전문제에 대한 이해가 제대로 이뤄질 리 없다는 것이다.

하 지회장은 “하청노동자는 물량 쳐내는 거 자체가 전쟁이다. 공기(공정기일)를 맞추려면 안전 문제에 신경 쓰기보다 무조건 빨리, 많이 일하도록 압박을 받는다”고 지적했다. 물량 처리만 강조되는 작업환경에서 산업안전보건법이 금지하는 ‘혼재작업’은 당연하게 이루어진다. 크레인이 수십 톤의 자재를 옮길 때 그 아래에서 보강재를 철거해야 하는 사람은 규정을 어기고 자재 아래에서 일을 할 수밖에 없다. 지난 1일 산재로 사망한 하청노동자 고 박아무개씨의 얘기다.

지난해 10월5일 권상(자재를 올린다는 작업 용어) 중이던 블록에 맞아 12m 밑으로 추락했던 이아무개씨(28)의 죽음도 하청노동자의 물량 압박없이 설명하기 힘들다. 하 지회장은 “업체들마다 자기 자재를 크레인에 빨리 실어서 빨리 처리하겠다는 생각밖에 없다. 권상 중인 자재 주변에 접근해선 안 되는데 그거 신경쓰지 않고 주변에서 작업하거나 표준작업 규칙을 지키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하청노동자 이씨는 크레인 주변에서 작업 케이블을 정리하다 자재에 맞았다. 자재는 급한 작업 과정에서 무게중심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채 크레인에 연결됐고 권상되면서 중심을 못 잡고 좌, 우로 흔들리게 됐다는 것이 하 지회장의 분석이다.

하청노동자는 작업환경이 위험해도 작업중지 요구를 하기 힘들다. 현 사무국장은 “안한다고 말하는 순간 ‘내일부터 나오지 마’라고 하니, 크레인 밑에 들어가지 말라는 말을 듣고서도 들어가게 된다”고 지적했다.

200여개를 훌쩍 뛰어넘는 하청업체들이 조선소 생산의 70~80%를 맡는 상황에서 각 공정이 유기적으로 연계되기도 어렵다. 현 사무국장은 “하청노동자들은 오로지 자기 일만 한다. 작업 흐름이나 작업의 위험성에 대한 이해나 고려를 하기 힘들다”면서 “누가 언제 어떻게 이 작업을 했는지, 용접 상태는 어떤지 등 공정이 일치가 안 되니 산재 사망 사고가 더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반복되는 대책, 이제 노동계 측 주장 들을 때 됐다”

현 사무국장은 지금껏 변화가 없었다면 정부와 현대중공업은 노동계 측의 주장을 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고 경영자의 경영철학에 변화를 줄’ 대안, 원·하청 간 협조 단절 문제를 해결할 대안을 논의해야 한다는 뜻이다.

노동계는 “한 사람이라도 산재로 희생이 되면 기업이 문을 닫을 수 있다는 명확한 사회적 잣대를 보여줘야 한다”며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 법은 기업과 경영책임자가 안전조치를 이행하게끔 이들에게 중대재해에 대한 형사책임을 명확히 지우는 법이다. ‘벌금 100만 원 이하’ 등의 처벌규정이 달려있을 경우에만 처벌을 받는 현행법에 대해 현 사무국장은 “벌금 물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더 이상 못하게 해야 하고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는 실질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 사진=노동건강연대

산재사망자 수가 2014년에 정점을 찍은 이유에 대해 현대중공업 노조와 사내하청노조 모두 “하청노동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시기와 맞물린다”고 지적했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 현대중공업이 해양플랜트 사업에서 무리하게 저가 수주를 하며 ‘싸게 인력을 쓸 수 있는’ 하청 노동자를 대거 투입했다는 것이다.

하 지회장은 고용구조의 변화를 강조했다. 하청 중심의 생산 구조가 변하지 않는다면 물량 압박으로 인한 위험성 증가나 업체 간 작업 단절 등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다. 그는 “현재 중공업에서 ‘다치지 말라’는 말은 외나무다리 위를 뛰어가되 넘어지지 말라고 하는 것과 똑같다”면서 “원청이 공장 내 모든 장비를 소유하고 하청업체의 작업 내용도 다 관리하는데 사내하청노동자들은 다 불법 파견된 셈이다. 상시·지속적인 업무에는 정규직 고용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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