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은 예능이란 틀을 벗어난 전무후무한 프로그램이다. 논두렁에서 구르고 돈 가방을 들고 달리던 이들은 민주주의의 가치를 일깨워주는가 하면(선택2014특집) 잊혀져가는 역사를 되새겨주며(우토로‧안창호 특집) 예능의 한계를 넘어섰다. 1년간의 장기프로젝트로 탄생했던 정형돈의 드롭킥은 예능이라기 보단 다큐멘터리였으며(레슬링 특집) 2012년 공정방송을 위한 170일 파업에 동참하며 제작을 멈추는 무모한 도전으로 공영방송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무한도전’은 21세기 지상파방송, 그 자체였다. ‘무한도전’이 시작된 2005년(무모한도전)이후 케이블TV의 성장과 IPTV의 등장 속에 지상파의 독점적 플랫폼은 힘을 잃기 시작했다. 2010년 이후 보편화된 스마트폰과 2012년 종합편성채널 4사 개국은 지상파의 입지를 더욱 흔들기 시작했다. 이제는 MCN(멀티채널네트워크) 사업자들이 유튜브를 타고 거실의 IPTV에서, 스마트폰에서 등장하며 지상파 콘텐츠와 대결하고 있다.

▲ MBC '무한도전' 멤버. ⓒMBC
‘무한도전’은 격변의 방송史를 헤쳐 나가며 지상파의 ‘영광’을 붙들고 걸어왔다. 경쟁자였던 KBS 나영석PD와 신원호PD가 tvN으로 건너가 ‘삼시세끼’, ‘응답하라 시리즈’ 등으로 대박을 터뜨릴 때도 프로그램몰입도 1위를 유지했다. 종편이 출범했을 때는 ‘TV전쟁’ 특집을 통해 방송가에 펼쳐질 치열한 경쟁을 예능의 소재로 사용하는 배짱을 보였다. 시청자의 기대만큼 점점 스케일이 커진 ‘무한도전’은 이제 영화를 제작(무한상사)하고 우주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무한도전’은 오는 10월1일 500회를 맞는다. 500회 동안, MBC ‘무한도전’에게는 아직까지 해보지 못한 도전이 하나 있다. 조금 황당하게 들릴 수 있는 이야기지만, ‘토요일 오후 6시30분 MBC’라는 편성을 벗어나는 ‘도전’이다.

오늘날 미디어환경은 특정 시간대 특정 방송사에 편성되는 것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은 다양한 플랫폼에서 콘텐츠를 쪼개보고, 빠르게 감아서 보고, 주요장면만 보고, 반복해서 본다. 시간과 공간은 콘텐츠소비에 있어 더 이상 변수가 아니다. 변수는 오직 콘텐츠의 수준이다. 시청자들 역시 ‘무한도전’을 MBC의 한 예능프로그램으로 분류하지 않는다. ‘무한도전’은 거칠게 말하면 김태호PD와 유재석의 플랫폼이자 콘텐츠다.

▲ MBC '무한도전'. ⓒMBC
언젠가 김태호PD가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무한도전’의 마지막 도전은 “박수칠 때 떠나는 것”이다. 지금껏 예능프로그램의 역사는 대게 “이젠 재미가 없다”는 냉소 속에 언제나 시청률이 곤두박질치며 비참한 말로를 맞이하는 식이었다. 예능프로그램이 갖는 숙명이기도 하다. 때문에 ‘무한도전’이라면, 예능의 숙명에서 벗어나길 고대하는 시청자들이 많다. 정상의 자리에 있을 때, 박수칠 때 과감히 프로그램의 종영을 선언하는 것이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무한도전’은 지금 지상파 편성이란 틀 속에서 중장년층 중심의 고정형TV 시청률에 일희일비하며 새로운 도전보다는 여태껏 성공했던 포맷을 약간씩 비트는 수준에 그칠 수밖에 없는 구조에 놓였다. 스케일이 커진 만큼 제작비를 충당하느라 방송 곳곳에 PPL을 꽂으며 눈살이 찌푸려지는 일이 많아졌다. 캐릭터 중심의 프로그램이 11년째 쉬지 않고 달려온 데 따른 한계도 보인다. 김재철 사장 이후 제작 자율성이 위축되며 과거처럼 과감한 사회풍자도 보기 힘들어졌다.

▲ MBC '무한도전'. ⓒMBC
만약 ‘무한도전’이 MBC를 벗어나 ‘무한도전’ 그 자체로 시청자와 소통할 때, 많은 장벽이 허물어질 수 있다. 시청률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고, 부장→국장→본부장→사장→대주주로 이어지는 심의와 검열의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양복입고 불려나갈 걱정도 하지 않을 수 있다. ‘무한도전’의 마지막은 새로운 도전의 시작점이 될 수도 있다. 4년 전 우리는 그 가능성을 봤다. 2012년 4월 김태호PD가 제작했던 ‘무한도전’ 파업특별편이다.

‘유재석TV’란 이름으로 유튜브에 등장했던 무한도전 멤버들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고 자유로워보였다. 하하는 파업 때문에 새 음반이 망했다고 투덜댔고 멤버들은 각종 상표를 노출하며 웃음을 자아냈다. 검열 없는 이들의 방송은 자유로웠고, 직설적이었다. 김태호PD와 유재석이라면, MBC라는 ‘견고했던 둥지’를 벗어나 온라인에서 지금보다 더 자유롭게, 위대한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어느덧 500회를 맞이한 ‘무한도전’의 ‘마지막 도전’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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