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가 동시에 같은 특집 기사를 냈다. 국립 흑인역사문화박물관(Museum of African American History and Culture)이 워싱턴D.C.에 문을 여는 역사적인 날을 기념하는 기사다.

워싱턴D.C.는 기념관과 박물관의 도시다. 같은 주제의 다른 기념관이 있어도 대개의 경우 이 도시에 들어서는 것이 미국을 대표한다. 제한된 공간이라 쉽지도 않고 하나하나 들어설 때마다 허용 여부나 건축 디자인, 전시 내용을 두고 10년 이상을 갑론을박 논의하는 건 기본이다.

▲ 국립 흑인역사문화박물관(Museum of African American History and Culture) 위키미디어 사진.
그런 오랜 준비과정을 끝내고 드디어 개장하는 이 박물관(나는 이미 개장한 줄 알았다. 작년에 D.C.에 갔을 때 건물은 번듯하게 완성된 듯 보였다)을 알리는 특집 기사를 미국을 대표하는 두 신문이 오늘 아침 동시에 낸  거다.

지면 사진 두 장을 놓고 신문 이름을 보기 전에 마음에 드는 걸 골라봤다. 당연히 왼쪽이다.

뉴욕타임스는 이 건축물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는 각도에서 찍고 과감하게 잘랐다. 특히 건물 표면의 화려한 이국적 질감이 특징인데 그게 잘 살아났다. 반면 워싱턴포스트의 사진은 사진 자체로는 좋지만, 건물의 개성이 살지 않는다. 그 동네신문(?)이라 독자들이 잘 알고 있으니 그런 선택을 했을 거라고 억지추측을 해보지만..

▲ 왼쪽이 뉴욕타임스, 오른쪽이 워싱턴포스트다. JH Choi님 제공 사진.
뉴욕타임스의 승리는 사진 만이 아니다. 포스트는 제목을 “빛과 반사(Light and Reflection)”라고 뽑았다.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박물관의 의미보다 건축물에 초점을 두었다. 물론 다른 면에서 박물관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을 수는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혹은 그렇다 해도 이미 오래 전에 완성된 건물을 꼭 개장에 맞춰서 설명해야 했을까?

둘째, 빛과 반사(Light and Reflection)는 인터내셔널 스타일(International Style)의 건물이라면 어디에도 쓸 수 있는, 심심하고 밋밋한 설명이다. (게다가 이건 인터내셔널 스타일의 건물도 아니다).

반면, 뉴욕타임스는 할렘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작가, 랭스턴 휴즈의 시를 가져와 제목으로 삼았다. “나, 역시, 미국을 노래하네(I, too, sing America)”는 정말 적절하고 멋지지 않은가!!

뉴욕타임스 온라인 판.
(다음 링크에서 디지털 스토리텔링 기사로도 볼 수 있다. http://www.nytimes.com/interactive/2016/09/15/arts/design/national-museum-of-african-american-history-and-culture.html?_r=0)

미국 흑인들의 레거시(전통)를 보여주는, 가장 최근에 등장한 박물관을 설명하기에 이만큼 적절하고 완벽한 문구를 찾기는 힘들 거다. 이 제목을 뽑은 에디터는 편집실에서 기립박수를 받았어야 한다.

워싱턴포스트는 좋은 신문이고 특히 요즘 들어 선전하고 있지만, 뉴욕타임스와 이렇게 정면으로(head to head) 품질 대결을 하면 아직 상대가 되지 못한다(내가 그 신문 빠라서 하는 얘기 만은 아니다).

▲ 뉴욕타임스 9월22일자. JH Choi님 제공 사진.
뉴욕타임스의 기사 뒷면에는 랭스턴 휴즈의 시, “나, 역시(I, TOO)”가 적혀 있다. 뉴욕타임스가 흑인 역사 문화 박물관의 개장을 알리는 시로 휴즈를 고른 것이 왜 적절한 선택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지난주에 김현종 메디치미디어 대표와 산책 중에 미국 남부 흑인들의 집단 이주인 흑인 대이동(Great Migration) 이야기를 잠깐 한 적 있는데, 그 대규모 이주에 이어 1920년대에 일어난 할렘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극작가가 랭스턴 휴즈다.

할렘 르네상스는 노예에서 해방은 되었으나 열등한 존재로 차별받던 흑인들이 자신의 문화와 레거시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기 시작한 시점이다. 아프리카가 어두운 대륙이 아니라 찬란한 인류의 근원이라는 자부심, 이집트 문명을 비롯한 다양한 문화유산이 자신들의 레거시라는 인식이 흑인들 사이에 확산되던 시기가 할렘 르네상스다.

할렘 르네상스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하지만, 거기에서 시작된 흑인들의 자부심은 60년대 인권운동의 기반이 되었고, 많은 흑인 지식인과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준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랭스턴 휴즈의 시를 보면 왜 그가, 특히 이 시가 할렘 르네상스를 대표한다고 하는지 쉽게 이해가 된다. 할렘 르네상스의 특징과 정서를 가장 잘 표현했을 뿐 아니라, 그 뒤에 올 흑인인권의 회복을 바라며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집에 손님이 오면 부엌에 가서 먹어야” 하는 지금의 처지에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웃으며 받아들이고 “잘 먹고, 튼튼해져서” 언젠가는 가족(=미국인)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손님들과 밥을 먹을 날이 올 거라는 낙관적인 태도가 할렘 르네상스의 정신을 잘 보여준다.

그 날이 오면 그들은 “내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게 될 것이고, 지금의 행동을 부끄러워하게 될 것이며, “나 역시 미국(I, too, am America)”이라는 당당한 선언.

미국에서는 인종편견으로 흑인들이 경찰에게 억울한 죽임을 당하는 일이 끊임없이 일어나면서 갈등이 심각해지고 있는데, 하필 이 시점에서 흑인들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랭스턴 휴즈의 이 시를 소개하기에 가장 완벽한 기회다.

뉴욕타임스는 그걸 놓치지 않았다. 그게 이 신문의 실력이다.

I, too, sing America. 나도, 미국을 노래한다.

I, too, sing America. 나도, 미국을 노래한다.
I am the darker brother. 나는 검은 피부의 형제
They send me to eat in the kitchen 그들은 부엌에서 먹으라며 나를 보낸다,
When company comes, 친구들이 찾아오면.
But I laugh, 하지만 나는 웃고
And eat well, 밥도 잘먹고
And grow strong. 튼튼하게 잘 큰다.
Tomorrow, 내일,
I'll be at the table 나는 밥상에서 밥을 먹을 것이다
When company comes. 친구들이 찾아오면.
Nobody'll dare 아무도 감히 내게
Say to me, 말하지 못할 것이다.
“Eat in the kitchen,” ”부엌에서 먹으라고“
Then. 그 때에는
Besides, 뿐만 아니라
They’ll see how beautiful I am 그들은 내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게 될 것이고
And be ashamed— 부끄러워하겠지.
I, too, am America. 나도, 미국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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