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행이 직원의 퇴근까지 금지하며 파업 불참을 종용해 파문이 이는 가운데 해당 부당노동행위가 경영진 지침 사항이라는 녹취록이 확인돼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이 지난 22일 공개한 녹취록에는 지점장으로 추측되는 임원이 금융노조 ‘9·23 총파업’을 하루 앞둔 22일 영업종료 후 모인 직원들에게 “경영전략본부장 주재 하에 각 지역본부장이 컨퍼런스 콜을 했고 경영진 지침이 내려왔다”면서 “각 지점마다 조합원의 50%는 무조건 남아서 일을 해야 한다. 만약에 다 가겠다는 경우에는 가도 되지만 은행에서 인사상 조치가 취해질 것”이라 말한 사실이 드러났다.

▲ 지난 9월22일 '파업 불참자 50% 명단 작성'을 이유로 퇴근을 하지 못했던 기업은행 한 지점의 풍경. 사진=금융노조 제공
이 임원은 이어 “시중은행 참여가 매우 낮고 농협 (파업 참가율)이 한 50% 정도(된다). 모든 은행이 파업을 하는 경우가 없는데 기업은행만 이런(파업 참가율이 높은) 상황이 돼 경영진이 이에 대한 모든 것을 해결하고 책임지겠다는 컨퍼런스콜 내용이 있었다”면서 “경영진에서 그렇게 했기 때문에 일단 개인 의사를 물어보고, 안 되면 강제 명령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 직원이 “그건 개인의사를 존중하는 게 아니”라고 하자 이 임원은 “본인이 따르기 싫으면 가면 된다”고 답했다.

지난 22일 기업은행 다수 지점은 지점별 파업불참 인원을 최소 50% 이상으로 정하고 불참 인원이 결정될 때까지 직원을 퇴근시키지 않았다. 금융노조가 22일 오후 8시 확인한 바에 따르면 기업은행 불광동지점, 종로지점, 중곡동지점, 중곡중앙지점, 서소문지점, 동대문지점, 목동PB센터, 반포지점, 강남구청역지점 등에서 이같은 일이 일어났다. 퇴근이 금지됐던 직원들은 이날 오후 11시에 귀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노조는 이를 “사실상 감금”이라 규정하며 “인권유린에 가까운 파업불참 강요 행위”라 비판하고 나섰다. 노조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81조는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조직 또는 운영하는 것을 지배하거나 이에 개입하는 행위를 부당노동행위로 보고 금지하고 있다. 기업은행의 경우 사측이 파업 불참을 종용하고 “파업 참여 시 불이익을 준다”는 협박을 하면서 노조 파업에 대해 지배·개입을 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녹취록은 이번 사태에 기업은행 본부가 개입된 정황을 드러냈다. 경영전략본부장이 사측의 파업 대응을 논의한 '컨퍼런스콜' 회의를 주재했고 각 지역 본부장이 참여해 '경영진 지침'을 받았다는 언급이 확인되기 때문이다.

금융노조는 23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녹취 정황을) 구체적으로 밝힐 순 없으나 사실”이라며 “사측에 법적 대응을 하기 위해 부당노동행위 사례를 수집하고 있다”고 밝혔다.

▲ 지난 9월22일 '파업 불참자 50% 명단 작성'을 이유로 퇴근을 하지 못했던 기업은행 한 지점의 풍경. 사진=금융노조 제공

한편, 신한은행, 농협 등 다른 은행기관에서도 이와 유사한 문제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신한은행 노조(금융노조 신한은행지부)에 따르면 사측은 파업에 참여할 직원들에게 ‘무단결근’으로 근태를 등록하라고 지시했다. 노조는 이를 “불이익을 주겠다는 암시를 통해 노조를 위축시켜 파업참여율을 떨어뜨리는 것”이라 말했다.

NH농협은행에서도 지점장이 조합원과 면담을 진행하며 파업 불참을 종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배성화 NH농협 수석부위원장은 "지점장이 조합원을 일대일로도, 단체(노조)로도 만나 불참을 거론해왔다"면서 "노조를 위축시키는 행위"라고 말했다.

금융노조는 “신한은행에서 부행장급 임원이 ‘조합원 중 단 한 명도 파업에 참여해선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조합원들을 겁박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NH농협은행에 대해서도 금융노조는 “정부 쪽에서 사측에 파업 참여 인원을 4천명 이하로 줄이라는 지시가 내려온 것으로 알려졌다”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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