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후 7시44분 규모 5.1의 1차 지진과 8시32분 규모 5.8의 유례없는 지진이 한반도에서 일어난 순간, 재난방송 주관 방송사 KBS 1TV에선 교양프로그램 ‘우리말 겨루기’와 일일연속극 ‘별난 가족’이 방영됐다. KBS는 7시47분 첫 속보 자막을 내보냈고 8시와 8시45분 경 각각 4분짜리 특보를 내보냈지만 구체적인 피해상황이나 대피요령 등의 정보가 부족했다. KBS는 “확인된 정보가 한정돼 더 이상 특보를 진행하기 어려웠다”고 밝혔지만 재난보도에 소홀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날 오후 8시부터 9시30분까지 메인뉴스를 편성한 JTBC는 상대적으로 빠르게 특보체제로 운영할 수 있었고 이 때문에 시청자들은 KBS와 JTBC를 비교하며 비판을 쏟아냈다. 물론 일부 비판은 KBS에게 가혹했다. “일본 공영방송 NHK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발생 1분30여 초 만에 전면 특보로 전환했다”(동아일보)는 비판의 경우 수십 년 간의 지진사태로 재난방송에 익숙한 일본과 처음으로 대규모 지진을 경험한 한국의 재난방송을 단순 비교해 다소 무리가 있는 지적이었다.

곧바로 특보체제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비판도 해명을 들을 필요가 있다. 무조건 빨리 내보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방송사 입장에선 ‘과잉대응’도 염두해야 한다. 또한 드라마는 파업 기간 중에도 쉽게 멈추지 않는 편성이다. 드라마 편성을 멈추기 위해선 국장단과 본부장단 회의 등 절차를 거쳐야 한다. 현실적으로 드라마 시청률도 방송사 입장에서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별난 가족’ 12일 시청률은 21.4%(닐슨코리아, 전국 가구 기준), 19일 시청률은 23.4%였다.

▲ KBS의 재난보도를 비판했던 신문지면 갈무리.
하지만 KBS는 방송통신발전기본법에 따른 재난주관방송사로 재난상황과 대응책에 대해 신속하게 전달할 의무가 있다. KBS가 펴낸 ‘KBS 공정성 가이드라인’ 재난재해 보도항목에 따르면 KBS는 “예상되는 재난의 유형과 대처 요령 등 재난 관련 정보를 국민에게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고 명시했다. 때문에 KBS는 모든 언론사보다 특보체제를 빨리 가동할 의무가 있다. 이와 관련 KBS의 한 간부급 기자는 “이번 지진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보도국 간부도 어느 정도로 대응해야 하는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일본과의 결정적 차이도 경험의 유무였다”며 대응 미숙을 인정했다.

그러나 초반 대응미숙보다 큰 문제는 보도내용이다. KBS는 12일자 메인뉴스에서 ‘원전은 안전하다’, ‘지진 발생지 근처 월성 원전은 안전’과 같은 제목의 리포트를 배치했다. 지진 발생지역 부근에 밀집한 원자력발전소(핵발전소)가 안전하다는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주장을 그대로 내보냈다. 국민안전처 등 정부당국의 초동 대응 실패에 대한 비판은 찾기 어려웠다.

13일 메인뉴스 역시 ‘첫 수동 정지… 월성 원전 이상 없어’, ‘원전 안전은? 규모 6.5~7.0 내진 설계’와 같은 리포트를 내보내며 원전의 안전을 강조하는 보도에 나섰다. 그러나 정작 한수원측 주장을 검증하는 대목은 찾기 어려웠다. KBS는 19일자 메인뉴스에서도 ‘규모 4.5지진…원전 안전 이상 없다’, ‘고리 B급 비상 발령… 원전 안전 이상 없어’란 제목의 리포트를 내보냈다.

▲ 고리원전. ⓒ이치열 기자
▲ 9월 19일자 KBS '뉴스9' 화면 갈무리.
이 같은 보도에 대해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지금 원전 주변의 주민들은 모두 원전 안전을 우려하고 있다. 검증 과정을 생략하고 정보는 공개하지 않으면서 원전이 안전하다고 말하는 건 제대로 된 대답이 아닐뿐더러 주민들을 더욱 불안하게 만든다”고 우려했다. 양이원영 사무처장은 “공공성을 담보해야 하는 공영방송은 원전이 안전하다며 앵무새처럼 반복할 것이 아니라 객관적이며 신뢰할 수 있는 근거를 통해 안전이 검증됐다는 보도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한수원은 국내 원전 대부분이 0.2G에서 0.3G까지 버틸 수 있으며 0.2G는 규모 6.5 정도의 지진에, 0.3G는 규모 7.0 정도의 지진에 버틸 수 있다고 밝히고 있지만 허점이 많다. 해당 지역의 현재 지질 상태에 따라 진도가 다르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국가의 평균 지질 상태를 기반으로 한 환산식과 실제 상황은 다를 수밖에 없다. 최대지반 가속도(Peak Ground Acceleration, PGA, 지반이 얼마나 강하게 흔들리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와 지진 규모 관계에서도 올해 뉴질랜드 지진이 규모 5.7에 PGA 0.4G를 나타내고 있어 예측에 변수가 많다.

19일 오후 8시33분 규모 4.5의 지진이 일어나자 KBS는 11분 뒤인 8시44분부터 드라마 ‘별난 가족’를 중단하고 뉴스특보를 내보냈다. 특보 시청률은 27.8%를 기록했다. KBS는 메인뉴스가 끝난 10시부터 11시까지 뉴스특보를 이어갔다. 대응은 12일보다 나아졌다. 하지만 원전의 안전과 관련한 검증보도는 여전히 부족했다. KBS를 비롯해 대다수 언론은 이번 재난과 관련해 전문가로 등장하는 이들이 친 원전 인사인지를 검증하는 대신 무비판적으로 이들 발언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는 비판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는 친 원전세력으로부터 각종 광고와 협찬을 받고 있는 언론의 구조와도 무관하지 않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추혜선 정의당 의원은 “강력한 지진과 계속되는 여진으로 경주, 울산, 부산 시민들이 원전의 상황을 알 수 없어 불안해하는데도 KBS는 원전이 안전하고 정상적으로 운영 중이라고 했을 뿐이다”라며 “침몰해 가는 세월호의 학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한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이냐”고 비판했다. KBS를 비롯한 주요 언론은 인간이 수습할 수 없는 대규모 재난을 예고하고 있는 이번 지진 사태와 관련해 적극적으로 원전의 안전문제를 점검하며 근본적으로 ‘탈핵’에 대한 공론의 장을 이끌어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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