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고위직을 청와대가 벼른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앞뒤 짚어보니 송희영 주필이 분명해 씁쓸했다. 더러 그의 칼럼에선 ‘기자정신’이 엿보였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에서 이름까지 거론해 공격할 때는 청와대의 ‘보복’이 더 문제라고 판단해 동정심마저 일었다.

하지만 씁쓸한 동정심은 한낱 감상에 지나지 않았다. 배신감마저 들었다. 그가 편집국장 시절에 저지른 만행이 ‘증언대’에 올라서다. 조선일보 전 노조위원장이 전한 ‘고발’은 충격이다.

2005년 12월 편집국장 송희영은 그해 조선일보의 광고 상황이 예상보다 좋아 돈이 있다면서 “10년차 이상인 편집국원 전체를 대상으로 명예퇴직을 실시한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하고 강행했다. 기자들이 “해고 사유라도 알려 달라”면서 국장실을 찾았을 때 송희영은 ‘스윙 연습’을 하고 있었다.

“사색이 된 얼굴로 찾아온 후배기자들”에게 무안을 주며 ‘스윙’을 계속 한 이 자가 과연 기자일까? 편집국장실에서 저는 ‘스윙 연습’을 하며 후배기자들을 해고하는 ‘기레기’야 말로 진즉에 기자직을 떠났어야 옳지 않은가.

▲ 송희영 조선일보 주필. ⓒ 연합뉴스
송희영, 그 이름을 청암 송건호와 나란히 견준다면 결례를 넘어 무례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편집국장’이란 무엇인가를 실감 못할 언론인들을 위해 선생의 일화를 소개한다. 1975년 동아일보 사주가 박정희 정권과 야합해 자유언론을 실천하려는 기자들을 대량 해직할 때다. 편집국장 송건호가 사장실로 들어갔다. 송 국장은 사장에게 눈물로 호소했다. “울면서 재고를 간청했으나” 사장은 그동안 보여준 ‘친밀감’과 전혀 달리 “냉랭했다.”

청암은 사장실을 나와 농성하던 기자들 몇몇을 국장실로 모아놓고 “내 능력으로는 어찌할 수가 없어 신문사를 떠난다”며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송건호는 그 순간을 “언론계 생활의 마지막이 될 작별임을 생각해서 눈물이 자꾸 흐르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말하는 내 이야기를 듣던 그들도 모두 함께 울었다”고 회고했다.

젊은 언론인들은 그 울음을 이해 못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니다. 언론을 천직으로 삼은 기자가 중간에 타의든 자의든 떠날 때는 울컥하게 마련이다. 나 또한 언제나 경건하게 옷깃 여미며 올라갔던 신문사 계단을 내려갈 때 “언론계 생활의 마지막”을 직감하자 곧장 눈시울이 뜨거워왔다.

청암과 동아투위 기자들이 모두 함께 울었던 편집국의 풍경은 30년이 지나 편집국장이 기자들의 목을 자르며 ‘스윙’하는 살풍경이 되었다. 언론계 선후배 사이가 어쩌다 이렇게 망가졌는가.

새삼 톺아보니 송희영만이 아니었다. 권력이 사장을 임명하는 방송사들로 시야를 넓히면, 송희영 못지않은 ‘나쁜 선배’들이 곳곳에 있다.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에서 해직당한 방송인들의 ‘목’도 모두 선배들의 ‘칼’에 잘렸다.

왜 그럴까. 기자가 기자를 살천스레 자르는 모든 만행에는 제 자리 보전이나 감투를 쓰려는 작태가 숨어있다. 물론, 기자들도 ‘자리’와 ‘감투’를 욕망할 수 있다. 하지만 기자의 ‘감투’는 후배 기자들이 진실과 정의를 소신껏 보도해나가도록 보호해줄 때 의미가 있다.

청암이 병상에서 고투할 때 훗날 ‘송건호전집’을 출간한 아들이 쓴 글은 울림을 준다. 청암은 아들에게 평소 역사의 진실이나 사회의 논리에 앞서 인생의 올바른 자세가 앞서야 한다는 것을 늘 강조했다. “인생의 자세가 바르지 못하면 결코 역사의 진실을 깨닫지 못하며 오늘의 논리를 파악하지 못한다.” 아들의 증언이 아니더라도 내가 겪은 청암은 “지극히 소박”했고, “말과 행동에 전혀 꾸밈이 없”었다. 자리 욕심은 더욱 없었다. 모든 기자가 송건호의 자세를 지닐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송희영의 권세와 그 추한 몰락을 거울로 삼을 필요는 있다. 숱한 ‘송희영’이 지금도 언론사마다, 아니 먹물 사회 곳곳에서 활개치고 있기에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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