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 JTBC보도담당 사장이 차기 대선후보로 출마하는 것만큼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 홍석현 중앙미디어네트워크 회장의 대선 출마다. 대중적 인지도가 없고, 입법부 경험도 없으며, 1년이 채 안 되는 주미대사 시절을 제외하면 행정부 경험도 없다. JTBC·중앙일보는 사주가 출마할 경우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언론사로서 신뢰도에 큰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 사주와 언론사, 그리고 홍 회장과 특수 관계인 삼성그룹까지 대선출마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

그런데 자꾸 ‘홍석현 대망론’이 언론계를 떠돌고 있다. 최근 조한규 전 세계일보 사장은 책 <제3의 개국>에서 ‘홍석현 대망론’을 공식적으로 이슈화했다. 사실 홍 회장을 둘러싼 주변의 각종 추측은 홍 회장이 자초했다.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이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던 8월 중순, 홍 회장은 블라디보스토크 등 극동 러시아지역을 답사하며 “대북정책을 놓고 보수와 진보가 초당적인 원칙에 합의할 때”라고 제안하고 있었다.

▲ 홍석현 중앙미디어네트워크 회장. ⓒ이치열 기자
홍석현 회장은 더 이상 언론사 사주에 관심이 없다. 지난해 중앙일보 창간 50주년을 기점으로 중앙일보·JTBC 경영권을 상당부분 홍정도 사장에게 넘겼다. 중앙미디어네트워크는 홍석현-송필호 체제에서 이미 홍정도-반용음 체제로 교체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홍 회장의 관심은 ‘미래권력’이다. 그는 한반도포럼 고문으로서 북·중 국경지대를 답사하고, 한국기원 총재로서 알파고에게 명예9단 인증서를 전달하는가하면, 최근에는 민간싱크탱크 ‘여시재’의 이사직을 맡기도 했다.

일련의 행보는 진보·보수 인사를 망라하는 모임을 주도하고 있다는 데 특징이 있다. 홍 회장의 중앙일보는 지금껏 중도보수를 지향해오며 참여정부와 이명박정부 모두와 원만한 관계를 가져왔다. 사실 홍 회장은 이명박정부보다는 참여정부와 가까웠다. 2005년 주미대사 시절에는 ‘홍석현 대망론’이 공공연하게 등장했다. 만약 그가 ‘삼성X파일’ 사건 없이 주미대사를 마치고 유엔 사무총장 자리에 올랐다면 오늘날 반기문의 지지율이 홍석현의 지지율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앞서 밝혔듯 홍 회장이 직접 대선후보로 나설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렇다면 홍 회장의 바람은 뭘까. 여기서 홍 회장이 가진 ‘힘’을 떠올려보자. 삼성家와의 혼맥, 삼성코닝 주식을 통한 재력, 진보·보수와 국내·국외를 망라한 넓은 인맥 등이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가장 강력한 힘은 언론사를 쥐고 있다는 것이다. 홍 회장은 개국 5년 만에 각종 언론신뢰도·영향력 조사에서 1위를 기록하고 있는 JTBC와, 조선일보에 이은 국내유료부수 2위 중앙일보를 소유하고 있다.

▲ 중앙일보 사옥(왼쪽)과 JTBC 사옥(오른쪽).
조선일보·TV조선과 동아일보·채널A의 신문방송 논조를 비교했을 때 중앙일보·JTBC의 이질적인 논조는 분명 낯설다. 하지만 여기서 홍 회장의 ‘진가’가 나타난다. 1997년 대선에서 노골적으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지원하며 비판을 받았던 중앙일보는 김대중정부에서 세무조사와 사주의 구속수사를 경험했다. 당시 사건을 반면교사로 삼았던 걸까. 새가 좌우의 날개로 날듯이, 홍 회장은 지금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JTBC와 중앙일보란 ‘두 날개’로 절묘하게 날고 있다.

본래 한국 언론史를 돌이켜보면 주류언론은 킹메이커를 자처해왔다. 주요 신문과 방송을 가진 킹메이커라면 원하는 프레임을 통해 여론을 주도할 수 있다. 그러나 홍 회장이 제왕적으로 특정 기사를 주문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언론사와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언론사 모두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홍 회장은 그저 중앙일보 지면과 JTBC 리포트를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홍석현 회장의 야망이 킹메이커라면 그는 지금 최적의 고도에 오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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