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김환균)이 지난해 고대영 KBS 사장 선임에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폭로를 근거로 제기했던 국민감사청구가 지난 9일 기각됐다.

그러나 감사원의 청구사항 조사 과정에서 이인호 KBS 이사장이 “KBS 사장 임명 제청과 관련해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과 전임 KBS 이사장인 손병두의 조언도 들었다”는 답변을 서면 제출해 ‘청와대의 고대영 낙점’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언론노조는 “고대영 KBS 사장 후보 선임에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강동순 전 KBS 감사의 언론 인터뷰를 바탕으로 지난 2월 국민감사청구를 제기했다. KBS 이사장이 KBS 이사가 아닌 인사들과 KBS 사장 임명 제청에 대해 논의한 것은 방송법 위반 사안이라는 것이었다.

▲ 지난해 11월13일자 뉴스타파 보도. 강동순 전 KBS 감사는 청와대의 고대영 사장 낙점설을 제기했다. (사진=뉴스타파)
강 전 감사는 지난해 11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추석 연휴 때 청와대 수석이 KBS 이사 2명에게 전화를 걸어 고대영씨를 후보로 검토해달라고 했다고 소문이 파다했다”고 ‘청와대의 고대영 낙점설’을 폭로했다.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이 이인호 KBS 이사장과 아무개 이사에게 전화를 걸어 당시 고대영 전 KBS 보도본부장을 청와대 지명 후보로 검토해달라는 요청이 있었다는 주장이었다.

지난해 KBS 사장 후보에 공모해 1차 서류 심사에서 고대영 후보와 같은 5표를 받았던 강동순 후보는 2차 면접 후 최종투표에서 한 표도 받지 못해 ‘고대영 밀어주기’라는 청와대의 의중과 지시에 따른 결과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감사원은 9일 국민감사청구를 기각했지만 언론노조에 통보한 ‘청구 사항에 대한 조사결과’에는 청와대가 자신에게 조언했다는 이 이사장의 답변 내용이 쓰여 있다.

감사원은 “이인호 KBS 이사장은 KBS 사장 임명제청과 관련해 각계의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는 과정에서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과 전임 KBS 이사장인 손병두의 조언도 들었으나 특정인을 임명제청하는 것을 논의한 적은 없었고 KBS 이사 추천은 방송통신위원회의 권한이고 자신조차 이사 재선임 여부가 문제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이사 추천에 관해 누구와도 논의한 적 없다고 답변하고 있다”고 밝혔다.

감사원은 이어 “청구인의 주장과 관련자의 답변이 서로 엇갈리는 상황에서 당사자의 진술 외에는 문서 등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 불가능해 녹취 자료가 없는 이상 감사를 실시하더라도 사실관계를 증명하기 어렵다”며 감사 청구를 기각했다.

▲ 이인호 KBS 이사장(왼쪽)과 고대영 KBS 사장. (사진=노컷뉴스, 미디어오늘)
의견 청취 차원에서 김 수석 등이 조언했다고 밝혔지만 KBS 사장뿐 아니라 이사장 임명도 대통령이 결정한다는 점에서 이와 같은 조언이 사실상 지시로 받아들여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인호 이사장은 12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청와대 말 한마디에 (KBS 사장) 임명 결정이 좌지우지되느냐”며 “(청와대 홍보수석의 조언은) 여러 사람의 조언 가운데 하나였다”고 밝혔다.

이 이사장은 ‘청와대 수석과의 논의 내용’과 관련해 “누구를 뽑느냐 이런 식으로 의논하지 않는다”며 “사장으로서 어떤 요건이 필요한지 등 여론을 수렴하는 차원이었다. (청와대 인사라는 이유로) 의견 수렴에서 배제하는 게 더 웃기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대통령이고 누구고간에 나는 남의 말을 듣고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그쪽(청와대)이 하라는대로 하는 사람이 아니”라며 “어느 시대인데 특정인을 감히 거론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이영환 언론노조 정책실장은 “이 이사장이 김 수석과 연락한 사실은 확인된 것”이라며 “KBS 이사장이 사장 선출을 앞두고 청와대 인사와 통화했다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 KBS 이사회의 독립성을 저해하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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