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정부 시절을 생각하면 박근혜정부는 보수신문에게 고난의 시기다.
조선일보 한 기자가 “보수지에서 우병우 민정수석이 물러나야 한다고 말하는데도 (청와대의 대응이) 저 정도다. 해도 해도 너무 한다”고 말한 건 엄살이 아니다. 이명박정부는 조선·중앙·동아일보와 매일경제에 종합편성채널을 선물로 안겼다. 공영방송을 탄압하는 사이 종편에는 각종 특혜를 안겼다. ‘피아’ 구분이 명확했던 이명박정부에서 청와대가 보수신문을 상대로 소송에 나선 적은 없었다.
그러나 박근혜정부는 달랐다. 청와대는 현재 못마땅한 보수신문을 길들이기 위해 친박계 여당 의원과 익명의 청와대 관계자를 앞세워 ‘폭로정치’에 나서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2013년 박근혜정부 최대 위기였던 국가정보원 대선개입에 의한 부정선거논란을 ‘검찰총장 혼외자식’ 보도로 잠재운 조선일보를 3년 뒤 ‘부패기득권세력’으로 조준한 장면은 상징적이다. 밀월관계로 여겨졌던 보수정부와 보수신문이 맞붙은 것은 이례적(한국일보)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014년 4월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과 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제1부속실장, 안봉근 제2부속실장 등 4명은 시사저널을 상대로 정정보도 및 8000만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시사저널이 “청와대 비서진과 박근혜 대통령의 남동생 박지만씨가 갈등을 빚고 있다”는 의혹보도가 사실과 다르다는 이유였다. 청와대는 그해 5월 시사저널과 유사한 내용을 보도한 일요신문을 상대로도 4000만원 상당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대통령비서실 명의로 서울중앙지법에 제출했다.
그해 8월, 검찰은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가토 다쓰야의 칼럼을 문제 삼아 그를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하며 국제적 망신을 당했다. 청와대는 그해 11월 청와대 비서진 8명이 11월 말 정윤회씨의 국정개입 의혹을 담은 청와대 내부보고서를 폭로한 세계일보 기자 등을 고소했고, 12월에는 ‘박근혜 대통령 비선실세 의혹을 받는 정윤회씨 동향 문건이 김 실장 지시에 따라 만들어졌다’는 취지의 보도를 한 동아일보 기자를 검찰에 고소했다. 보수신문들을 상대로 한 이 같은 일련의 법적 대응은 박근혜 대통령의 의지 없이 이뤄질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 “여당의 친박 의원이 기관이 아니면 도저히 입수할 수 없을 듯한 내용을 폭로”(9월1일자 조선일보 사설)하며 조선일보가 위기에 몰렸다. 조선일보는 방상훈 사장의 최측근이었던 송희영 주필이 사퇴할 만큼 거센 검찰 수사의 압박 속에 긴장했다. 우병우 민정수석 처가의 강남 땅 의혹을 최초 보도했던 조선일보 기자의 스마트폰은 검찰에 의해 압수됐고, 또 다른 조선일보 기자는 우병우 민정수석 차량 차적 조회를 경찰에 부탁했던 것이 드러나 불구속 입건됐다.이명박정부는 광우병 위험을 다룬 MBC ‘PD수첩’ 제작진에 수갑을 채우고 한겨레에 정정보도 및 3억 원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으며, “촛불 배후는 주사파 친북세력”’이란 제목의 기사를 낸 오마이뉴스를 상대로는 정정보도 및 5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나서기도 했다. 이명박정부 당시 검사 10명은 ‘이명박 대통령 후보에게 유리한 진술을 해주면 형량을 줄여주겠다’는 BBK ‘김경준 메모’를 폭로했던 시사인을 상대로도 소송을 제기했다.
박근혜정부에서도 한겨레나 시사인·CBS노컷뉴스 등을 상대로 한 소송이 있다. 하지만 박근혜정부의 특징은 진보와 보수를 떠나 ‘못마땅한 신문’을 소송으로 압박한다는 사실이다. 이 같은 차이는 무엇보다 대통령 개인의 캐릭터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유력 중앙일간지의 한 논설위원은 “이명박 대통령은 기업인 출신으로 흥정과 거래를 통해 문제를 풀었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내가 잘못한 게 뭐 있느냐’라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예컨대 이명박 대통령이 2008년 임기 첫해 제일 먼저 한 일은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송필호 중앙일보 사장, 김병건 동아일보 부사장, 조희준 국민일보 사장, 이재홍 중앙일보 경영지원실장에 대한 8·15 특별사면 및 특별 복권이었다. 반면 박근혜 대통령이 현재 보여주는 모습은 심기를 건드리는 보도를 하면 방상훈 사장이 다시 감옥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경고’에 가깝다.
박근혜정부가 보수정부의 정권재창출에 기여해온 보수신문을 압박하는 또 다른 이유로는 권력을 나눠줄 생각이 없는 박 대통령의 ‘소신’이 꼽힌다. 박근혜 정부 임기초기부터 보수신문은 줄곧 박 대통령의 ‘인사 참사’를 비판해왔다. 이는 바꿔 말해 보수신문을 비롯한 보수진영의 ‘인사 청탁’이 대통령에게 상당부분 통하지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제4권력’이었던 보수신문 입장에선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을 것이다. 이는 보수신문과 권력을 나누며 보수신문의 메시지를 충실히 이행했던 이명박 대통령과 대조적이다.
한국기자협회가 “사정당국이 우병우 비판 언론 압박을 위해 정보전을 펼치고 있다”(8월31일)고 우려했지만, 박 대통령 입장에선 자신을 음해하기 위해 보수·진보를 떠나 언론을 이용하는 비박계와 야당에 대처하는 것은 언론탄압이 아니다. 앞으로 남은 임기는 1년 6개월 남짓. 대통령이 달라지지 않는 한 임기 말로 갈수록 보수신문을 상대로 한 청와대의 소송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