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러 언론사에는 조선일보를 공격하는 온갖 내용들이 전달되고 있다고 한다. 정권이 다 달려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9월1일자 조선일보 사설)

언론사 세무조사·종합편성채널 재허가 심사에 대한 위기감 앞에 결국 조선일보가 청와대를 향한 ‘공세의 필봉’을 꺾었다.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은 지난 3일자 사보를 통해 “송희영 전 주필과 관련한 불미스러운 일들로 인해 조선일보 독자 여러분께 충격과 실망을 드린 데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그동안 불거진 의혹에 대해서는 당국에서 엄정하게 수사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 문장은 ‘송희영 전 주필 선에서 조선일보 관련 수사를 멈춰 달라’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보수정부로부터 한 순간에 ‘부패척결 대상’이 된 보수신문 사주에게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지난 8월29일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이 조선일보 발행인 송희영 주필의 실명을 공개하며 그가 대우조선해양으로부터 초호화 관광 등 2억 원 상당의 향응을 받았다고 폭로한 다음날인 30일 조선일보는 송 주필의 사표를 수리하고 31일 1면에 사과문을 게재하며 빠르게 대응했다. 우병우 민정수석 의혹 관련 기사도 지면에서 눈에 띄게 줄었다. 박근혜정부의 언론탄압을 비판하며 청와대와 전면전을 펼치는 대신, 송희영 주필 관련 의혹에 대해 전사적으로 반성하는 방향을 선택한 것이다.

▲ 조선일보 3일자 사보(위)와 조선일보 8월31일자 1면 사과문(왼쪽 아래), 2일자 조선일보 노보(오론쪽).
방 사장은 사보에서 “신문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비판 정신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지만 역설적으로 기자들의 비판 정신을 잃게 만들고 있는 당사자로 방 사장이 지목되고 있다. 방 사장은 2001년 국민의정부 시절 세무조사로 법인세·증여세 등 63억 원 포탈 및 회삿돈 45억원 횡령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후 참여정부 시절인 2006년 대법원에서 징역3년 집행유예4년, 벌금25억 원 유죄판결을 받았다. ‘사주 리스크’는 언론사 세무조사를 벌일 수 있는 현재도 존재한다.

이미 수사방향이 방상훈 사장으로 향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TV조선 주주인 동국제강 장세주 회장이 원정도박과 횡령 혐의로 수사를 받을 때 조선일보 고위 관계자가 우병우 민정수석에게 불구속 수사 의뢰 청탁을 건넸다는 주장이 뉴데일리를 통해 등장했다. 장 회장은 방상훈 사장과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일보의 현 판단은 현 정부 임기가 1년6개월이나 남은 점, 박근혜 대통령이 민정수석 교체를 고려하지 않는 점, 리스크 없는 방상훈-방준오 경영권 승계를 고려한 것이란 분석이다.

▲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왼쪽)과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오른쪽). ⓒ연합뉴스
조선일보가 사실상 패배를 선언한 상황에서 ‘언론탄압’ 프레임은 당분간 꺼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조선일보는 8월30일자 사설에서 “권력이 싫어하는 보도를 한다고 취재기자를 압수 수색한 것은 언론을 적대시했던 좌파 정권에서도 없던 일”이라며 “이 사건은 권력과 언론의 관계에서 중요한 악례(惡例)로 두고두고 남을 것”이라 비판했으나 적극적으로 송희영 주필 건에 대한 반성에 집중함에 따라 해당 프레임은 전략적으로 힘을 잃게 됐다.

하지만 송희영 조선일보 주필의 혐의와는 별개로 조선일보에 가해지는 권력의 압박에 대해선 조선일보의 의지와 상관없이 정치권과 언론계에서 지속적인 비판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이강혁 민변 언론위원장(변호사)은 조선일보를 둘러싼 수사움직임을 두고 “검찰이 청와대의 청부 수사 도구로 전락하는 양상으로 보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조선일보의 보수편향논조를 비판해왔던 전국언론노조도 8월31일 성명에서 “부패권력이 부패언론을 잡겠다며 애먼 언론자유를 옥죄고 있다”고 주장했다.

9월2일자 조선일보 노보에서 조선일보 한 기자는 “우리가 독자들께 부패 기득권 세력의 구태라며 낱낱이 지적해오던 사안들이 존경해오던 회사 선배의 일이기도 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충격적”이라고 심경을 밝힌 뒤 “기득권 세력의 핵심으로서 오랜 세월 경쟁자 없이 군림해오면서 쌓인 무서운 ‘관성’이 오늘의 사태를 낳았다”고 비판했다. 정치·자본권력과의 유착으로 비판받고 있는 조선일보가 위기극복을 위해 오래된 ‘관성’을 깨 나갈지, 아님 더욱 더 ‘관성’에 집중할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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