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이 국회에서 연일 ‘보이콧’을 행사하며 여소야대 국면에 ‘밀려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전략 부재에 강경 일변도 밀어붙이기가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여야는 2일 밤 본회의를 열어 11조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을 통과시켰다. 당초 1일 20대 국회 첫 정기국회를 열어 추경을 통과시킬 예정이었지만 새누리당이 정세균 국회의장의 개회사를 문제 삼으며 보이콧에 나서면서 2일 밤에서야 추경이 통과될 수 있었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1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정기국회 개원식 개회사에서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논란은 국민 여러분께 참으로 부끄럽고 민망한 일이다. 고위 공직자가 특권으로 법의 단죄를 회피하려 한다”고 말했다. 정 의장은 또한 고위공직자 비리수사처 신설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사드 배치 관련해서도 정부의 대국민 소통 부재를 지적했다.

그런데, 사드 배치 관련된 발언이 나올 때부터 새누리당 의원들 사이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새누리당은 급기야 정세균 의장이 정치중립을 지켜야할 국회의장의 의무를 저버렸다며 본회의장에서 집단 퇴장했다. 새누리당이 ‘민생예산’이라며 통과를 요구하던 추경을 스스로 보이콧해버린 것이다. 여당 의원 80여명은 1일 밤 국회의장실로 몰려가 정세균 의장을 둘러싼 채 사과를 요구했고, 이 과정에서 한선교 새누리당 의원은 국회 경호원의 멱살을 잡아 논란을 일으켰다.

▲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346회 국회(정기회) 개회식에 참석한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정세균 국회의장에게 개회사 내용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포커스뉴스

새누리당의 보이콧은 반복됐다. 1일 개원식 사태 이후 새누리당은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에 불참했다. 가습기 살균제 청문회도 보이콧했다.

새누리당은 앞서 31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도 보이콧했다. 31일 오전 10시에 열릴 예정이었던 청문회는 10시55분에서야 시작됐는데, 새누리당의 집단항의 때문이었다. 새누리당은 29일 누리과정 관련 예산이 포함된 추경안이 야당의 단독표결로 교문위를 통과했다는 이유로 유성엽 교문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했으나 유 위원장은 새누리당 의원들 없이 청문회를 진행했다.

정부가 내정한 장관 후보자를 여당이 보이콧한 것은 인사청문회 도입 16년 만에 처음 벌어진 일이다. 국회 교문위 소속 안민석 의원은 “야당은 청문회를 하자고 그러고 여당은 하지말자고 하는 보기 드문 장면이 연출됐다”며 “인사청문회 도입 이후 최초로 야당단독으로 인사청문회를 하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3일 간 벌어진 새누리당의 국회 보이콧은 여소야대에 처한 새누리당의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2일 새벽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의 의장실 난동. 야당 되는 연습 잘하네요”라며 “우리가 그 짓하다 야당 되었답니다”라고 밝혔다. 이재정 더민주 원내대변인은 1일 브리핑에서 “새누리당이 이제 본격적으로 ‘야당 연습 하냐’는 힐난마저 있는 마당”이라고 비판했다.

▲ 31일 열린 조윤선 문체부 장관 후보자 앞으로 텅 빈 새누리당 의원들의 자리가 보이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그간 국회 의사일정 보이콧이나 퇴장, 압박은 야당이 주로 사용하던 방법이다. 19대 국회에서 야당의 반대에도 여당이 인사청문회를 강행하거나 본회의 법안 처리를 강행하려 할 경우 야당은 퇴장하거나 아예 회의에 참가하지 않는 방식으로 보이콧했다. 새누리당은 그 때마다 법안을 통과시켰고 야당이 민생을 내팽개치고 국정을 발목잡는다고 비판했다.

이번에는 새누리당이 ‘발목잡기’라는 비판에 직면하게 됐다. 기동민 더민주 원내대변인은 2일 브리핑에서 “추경은 속도와 타이밍이라며 야당을 겁박하던 것이 엊그제 일이다. 정진석 원내대표가 우상호 대표에게 추경이 타결되지 않으면 개원식에 참석할 수 없다는 문자를 보내기까지 했다”며 “하지만 정작 판이 깔리자 추경은 관심 밖이고, 국회 파행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기국회 시작부터 새누리당이 보이콧을 시도한 배경에는 ‘밀려선 안 된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종인 더민주 의원은 1일 개원식 이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국회의장이 그 정도 얘기해도 여당 의원들은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야 한다. 여소야대인데 자기들이 아직도 힘 있는 줄로 착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과반을 차지하지 못한 여당이 아직도 다수당인 것처럼 힘으로 밀어붙이려 한다는 뜻이다. 뒤집어 말하면 여소야대 상황에서 다수야당을 향해 ‘나 아직 죽지 않았다’고 경고하는 차원의 시위이기도 하다.

새누리당의 정 의장에 대한 압박은 강경 일변도였다. 새누리당은 1일 본회의장 집단 퇴장에 이어 의원총회를 열어 정세균 의장을 성토했고, 모든 국회일정을 보이콧했다. 급기야 국회의장 해임촉구결의안을 제출하고, 1일 밤에는 의장실을 점거하는 일까지 감행했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2일 의원총회에서도 정 의장에 대한 비난을 쏟아냈다. 이정현 대표는 “민생을 볼모로 잡고 국회를 인질로 잡고 그리고 예상되는 피해를 감안한 정치테러”라며 정 의장 사퇴를 요구했다. 염동열 의원은 “정세균 의장(의 이름 마지막 자), ‘균’은 동식물에 기생해서 부패 일으키는 단세포 미생물로 규정돼 있다. 정세균 의장은 악성균이고 테러균이고 이 사회에 암과 같은 바이러스”라는 막말을 퍼부었다.

강경파의 목소리만 넘쳐났다. 2일 오전 정세균 의장은 “추경안을 비롯한 민생현안을 원만히 처리하지 못해 국민들께 송구스럽게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개회사와 관련된 새누리당 의원들의 지적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는 문구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무겁게 받아들인다’는 표현은 사과가 아니며 사과의 대상을 국민이 아니라 새누리당으로 명시해야 한다며 이를 거부했다.

김정훈 새누리당 의원은 1일 의총에서 “정세균 의장의 발언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면서도 “우리가 너무 강하게 하면 의장도 체면이 있지 않나. '의장님 기분 나빠도 사과해달라'고 간곡하게 설득하자”고 제안했으나 이런 의견은 묵살됐다. 친박 김태흠 의원이 “거 쓸데없는 소리 좀 마세요”라고 반발했다.

▲ 2일 새누리당 의원들이 국회의장실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민중의소리

이처럼 목소리는 컸지만 전략은 부재했다. 원래 보이콧을 할 때는 출구전략을 마련해놓고 상대의 반응을 봐가며 대응 수위를 높인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첫째 날 집단 퇴장, 의원총회 성토, 국회일정 보이콧, 해임촉구결의안, 의장실 점거 등 쓸 수 있는 수단을 모조리 쏟아냈다. 따라서 2일에는 말로 성토하는 것 말고는 마땅히 압박할 카드가 없었다. 정진석 원내대표만 바쁘게 의장실을 찾아다녔을 뿐이다.

그 결과 새누리당의 요구는 사퇴에서 ‘부의장에게 사회권을 넘겨 추경안을 처리하고 사과하라’는 것으로 물러선다. 당초 새누리당 소속 심재철 국회 부의장의 사회를 요구했으나 그마저도 국민의당 소속 박주선 부의장도 괜찮다고 후퇴했다. 결국 정 의장은 사과를 하지 않았고 박주선 부의장에게 의사봉을 넘겨 추경은 처리됐다. 다음 본회의 때부터 정 의장은 다시 정상적으로 의사봉을 잡을 예정이다.

새누리당은 정 의장 사태를 통해 힘을 과시했으나 이런 과시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점이 딜레마다. 정 의장 해임촉구결의안을 제출했으나 여소야대 국회에서는 통과될 가능성은 전무한 상황이었고 추경이 통과되자 새누리당은 해임결의안을 철회했다.  

지난 29일 교문위에서 야당이 누리과정 예산을 추경에 포함시키자 새누리당은 회의를 보이콧했으나 1시간 반 정도 기다리던 야당은 단독으로 추경을 처리해버렸다. 이에 반발해 31일 조윤선 후보자 청문회를 보이콧했으나 유성엽 교문위원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청문회를 진행했고 ‘부적격’ 의견을 채택했다. 야당은 새누리당이 보이콧한 김재수 후보자 청문회도 진행했고 부적격 의견을 채택했다. 새누리당의 여소야대 가시밭길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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