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암에 걸려 사망한 삼성전자 반도체·LCD 생산 노동자가 업무상 재해자로 최초 인정받았다. 이로써 법원 및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인정받은 '반도체 직업병' 질환은 8종으로 늘어났고 직업병 피해자는 14명을 기록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지난달 29일과 30일, 삼성전자 반도체·LCD 공장에서 일했던 고 이경희씨와 고 송유경씨의 폐암 사망을 직업병 산업재해로 최초 인정했다. 공단은 “고인들이 비소 등 유해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됐다고 판단되며,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에 폐암을 진단받고 사망한 점 등을 고려할 때 업무관련성이 인정 된다”며 결정 요지를 밝혔다.

고 이경희씨는 1994년부터 2010년까지 16여 년을 삼성전자 기흥·화성 공장에서 일했다. 이씨는 2010년에 폐암이 발병해 2012년 5월 숨을 거뒀다.

고 송유경씨는 1984년 삼성전자 부천 공장에 입사해 기흥·천안 공장을 거치며 2001년까지 총 17여 년을 일했다. 송씨는 2008년 폐암이 발병해 2011년 2월 숨을 거뒀다.

▲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이 지난 2013년 3월 서울 곳곳에서 전자산업 피해자 추모주간 행사를 열었다. 사진=반올림 제공

이들은 모두 삼성전자 반도체.LCD 공장에서 '식각' 공정을 맡은 설비 엔지니어였다. 식각은 반도체 웨이퍼나 LCD 패널에 회로패턴을 형성하기 위해 화학물질이나 가스 등을 이용해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는 공정이다. 두 사람은 이 과정에서 식각 설비의 설치와 유지보수를 맡았고 설비 챔버를 개방해 내부 벽면을 닦거나 각종 부품을 교체·세정하는 업무를 맡았다.

근로복지공단은 이들이 폐암 유발물질로 알려진 '비소'에 지속적으로 노출됐다 판단했다. 근로복지공단의 요청으로 본 사건 업무환경을 조사한 직업성폐질환연구소는 식각 공정의 특성과 고인의 업무 내용 등을 고려할 때 "고농도의 비소 노출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2012년 국내 반도체 공장을 조사한 결과 기준량의 6배에 달하는 비소 노출이 확인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삼성전자 반도체·LCD 공장 직업병 산재 인정 및 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하는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은 지난 1일 성명을 내 "이번 처분을 적극 환영한다"면서도 공단의 늑장 대처 문제가 여전히 발견된다고 지적했다. 이씨의 경우 산재 인정 처분까지 3년 10개월이 걸렸고 송씨의 경우는 2년 7개월이 걸렸다.

업무상 질병 여부를 일관되게 부인해 온 삼성전자의 신뢰도 문제도 제기됐다. 삼성전자는 이 사건 조사 과정에서 "발암물질을 사용하지 않는다", "(유해물질 노출이) 저 농도로 안전하게 관리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의 피해자들은 ‘유기화합물 감지시스템’이 도입된 2007년 이전에 이미 퇴사해 이들이 비소를 포함한 각종 유해물질에 얼마나 노출됐는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15~16년을 일했다. 삼성전자가 제시한 근거는 비소가 제외된 HBr(브롬화수소), Cl2(염소), CO(일산화탄소)에 대한 작업환경측정 결과였다.

작업장 내 정보 은폐 문제도 한계로 남았다. 직업성폐질환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이 사건 피해자의 업무 중 상당 부분이 삼성전자 사내·외 협력업체로 이전됐으나 연구소는 해당 업체들이 일제히 조사 자체를 거부해 노출평가 등 조사를 실시할 수 없었다.

반올림은 "(삼성전자는 이번 사태에도) 협력업체들의 조직적인 조사 방해 행위에 아무런 관여를 하지 않았다고 강변할 셈인가"라 의혹을 제기했다.

반올림은 삼성전자가 지난해 9월 일방적으로 구성한 보상위원회의 보상 절차에도 매우 심각한 문제가 드러났다고 규탄했다. '폐암'은 보상위원회의 보상 대상 질환에서 제외된 상태기 때문이다. '난소암'의 경우도 올해 1월 법원으로부터 반도체 공정 산재 질병으로 인정받았으나 삼성 측 보상위원회 기준에 따르면 가장 낮은 보상을 받는 '3군' 질환에 분류돼있다.

반올림은 "보상의 절차가 폐쇄적이었을 뿐 아니라 보상의 수준과 범위 또한 매우 협소했다"며 "보상절차를 거부하고 있는 피해자들, 그리고 이 사건 유족들처럼 보상대상에서 완전히 배제된 피해자들에게 2중, 3중의 고통을 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현재까지 법원 및 근로복지공단으로 부터 인정받은 업무상 질병은 백혈병, 림프종, 재생불량성빈혈, 유방암, 다발성신경병증, 뇌종양, 난소암, 폐암 등 8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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