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출입기자들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익명의 청와대 관계자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라는 단서를 달고 말을 흘리는 상황이 연일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출입기자들은 청와대와 조선일보의 싸움이 격화되면서 어느 때보다 청와대의 반응을 살피는 것이 절실할 때다. 하지만 청와대의 공식적인 입은 닫혀 있다. 익명 관계자와 연합뉴스가 한팀을 이뤄 말을 흘리고 이를 뒤늦게 받아쓰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불만이 쌓여 가고 있는 것이다.

관계자는 취재원 보호가 필요한 경우 혹은 민감한 정보를 다룰 때 흔히 쓰이는 표현이기는 하다. 하지만 최근 등장한 ‘청와대 관계자’는 특정 의도를 가지고 국가통신사 연합뉴스를 창구로 이용하고 있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청와대가 전면에 나서지 않고 익명에 기대 속내를 전달하면서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전략을 쓰고 있다는 분석이다.

청와대 관계자가 한 발언은 청와대 공식 입장으로 나올 수 있는 발언의 성격이 아니다.

최초 조선일보를 겨냥해 관심을 끌었던 "부패 기득권 세력"이라는 표현도 청와대 관계자가 연합뉴스 기자와 통화에서 나온 말인데 특정 언론사를 대놓고 청와대가 공식적으로 깎아내리는 것은 여러모로 부담스러울 수 있다.

이어 연합뉴스 보도에서 등장한 청와대 관계자는 더욱 센 발언을 내놨다. 그는 30일 송희영 조선일보 주필이 대우조선해양 고위층의 연임을 부탁하는 로비를 했다면서 조선일보와 대우조선해양의 유착관계가 드러나는 것을 막기 위해 조선일보가 우병우 민정수석의 사퇴를 요구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찌라시로 떠도는 조선일보와 청와대의 갈등 배경을 여과 없이 말한 것이다.

청와대가 만약 공식 입장으로 이 같은 내용을 밝혔다면 사실을 확정해야 한다. 하지만 익명의 청와대 관계자는 항간에 떠도는 소문을 의혹으로 제기하면서 조선일보를 깎아내리는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송희영 주필이 청와대에 직접 연임 로비를 했다는 내용 역시 청와대가 공식 발표하면 즉각 검찰의 수사가이드 논란이 전면에 등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익명의 관계자를 통해 흘린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익명의 관계자는 '정권 흔들기'에 강하게 대응할 수 있는 효과적인 전략 무기가 되고 있는 셈이다.

연합뉴스 기사에서 익명의 관계자가 또다시 등장할 가능성도 크다. 그동안 익명의 관계자는 ‘부패 기득권 세력’이라는 추상적인 단어를 사용하고 난 뒤 점점 표적을 좁혀 송희영 조선일보의 주필의 구체적인 행적을 흘리고 있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익명의 관계자가 A수석일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그동안 A수석이 우 병우 민정수석의 입장을 대변한 발언을 해왔기 때문이다. 정무 쪽 발언에 능하고 강한 뉘앙스로 입장을 전달하는 스타일로 비춰봐서도 A수석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출입기자들은 결국 박근혜 정부 들어 청와대 소통 방식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다. 

그동안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청와대 수석들과 전화 연결조차 힘들다고 하소연해왔는데 청와대가 위기에 직면했을 때 특정 언론사를 통해서만 입장을 전달하고 있다는 불만으로 연결된다.

한 청와대 출입기자는 "정치 이슈와 관련해서는 특히 청와대 입장과 잘 맞는 기자들과 소통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과거 청와대가 언론보도에 등장하는 핵심 관계자와 고위관계자라는 말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던 것에 비춰 최근 익명의 관계자를 통한 흘리기 전략이 이중적이라는 비난도 예상된다.

지난 2013년 4월 외교안보 기사에 관계자를 인용한 기사가 쏟아지자 청와대는 적극 나서 관계자라는 표현을 쓰지 마라는 요구를 언론에 해왔다.

당시 김행 전 청와대 대변인은 언론에 보낸 편지에서 "청와대가 논의한 적도 없고 심지어는 대통령의 생각과 동떨어진 이야기가 청와대 관계자 명의로 자주 나오는데 이는 청와대는 물론 해당 언론사의 신뢰마저 손상시키는 바람직하지 못한 사례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 전 대변인은 "청와대는 관계자라는 이름으로 입장을 밝히지 않는다. 이름업이 관계자로 나간 기사는 청와대와 무관함을 명백히 밝히며 당연히 책임질 수 없다"고까지 했다. 당시 정무수석을 맡았던 이정현 정무수석도 앞으로 자신의 이름을 써달라고 요청했다.

청와대가 불리할 때는 익명의 관계자를 질타하면서 정국을 유리하게 만들 때는 익명의 관계자를 앞세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최진봉 교수(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는 "청와대가 입장을 가지고 있다면 홍보수석이 나와 발표하면 된다. 그런데 익명의 관계자를 내세워 뒤로 숨는 것은 무언가를 숨기고 다른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상징적 태도로 볼 수 있다"며 "관계자를 통해 말을 흘리는 방식은 보통 특정한 개인이나 세력을 비난하고, 특정 의도를 가지고 여론을 주도하기 악용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관계자라는 표현이 정보원을 보호하기 위한 것일 수 있지만 권력기관의 발언들은 확인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악용될 소지가 크다. 이번 익명의 청와대 관계자를 인용한 보도는 자신들이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언론사를 홍보 도구로 활용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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