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정씨(가명·20대)는 지난 20일 새벽 수면제 과다 복용 상태로 자택에서 발견됐다. 고질적인 불면증에 시달리던 김씨는 수면제 60알을 가지고 있었고 자살을 결심하며 수면제를 계속해서 삼켰다. 약을 먹는 동안 김씨는 자신의 트위터와 포털 게시판에 유서를 올렸다. 그는 "죽음으로써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고 싶다고 썼다.

지난 2개월 여간 회사와 진실공방을 벌여 온 김씨는 자신이 300만원의 벌금형으로 기소되자 현실에 대한 비관과 지난 싸움 동안 쌓인 울분이 폭발해 자결을 시도했다. '명예훼손죄'로 기소된 김씨는 "자신은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는 지난 6월부터 자신이 부당해고를 당했다고 여론에 호소해왔다. 김씨는 해고 배경엔 해고 한 달 전에 있었던 사내 성추행 사건이 있다고 말했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27일 자살시도 후 서울 소재 한 병원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는 김씨를 만났다.

▲ 지난 8월19일 김선정씨(가명)가 온라인 게시판 네이트판에 올린 유서. 사진=네이트판 캡쳐

성추행 사건으로 불안증세 심각, 일상무너져… 길 거닐다 대성통곡 여러 번

이야기의 전모는 5월5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휴무였던 당일, 김씨는 친하게 지냈던 동료 직원들과 술자리를 가졌다. 회사측 진상조사 사건 일지에 따르면 1차에서 술을 마신 후 2차로 간 노래방에서 김씨는 성희롱과 성추행을 당했다. 술에 취한 선배 남성 직원 A씨가 "왜 이렇게 야한 팬티를 입었냐"라고 말했고 또 다른 선배 B씨가 똑같은 말을 연이어 했다. 당시 김씨는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이후 김씨의 옆자리에 앉게 된 A씨는 김씨의 허벅지를 3~4차례 쓰다듬었다.

김씨는 곧장 "이건 잘못한 거다. 사과하셔야 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술에 취해있던 A, B씨는 ‘너도 나 만졌잖아’ 등의 농담을 건네며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씨는 그날 밤부터 다음 날까지 하루 종일 집 밖을 나올 수 없었다. 김씨는 충격과 수치심으로 눈물이 멈추질 않았고 '내가 잘못한 건가' '내가 더러워 진건가' 하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 다음 날 김씨는 진정제를 맞았다. 가해자에게 사과를 요구했으나 가해자는 "나도 굉장히 당황스럽고 섭섭하다"고 말하는 등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화가 누그러지지 않아 이대로 있으면 "사람이 미칠 수 있겠다" 싶어 김씨는 병원을 찾았다. A씨는 그날 병원을 찾아와 김씨에게 진중한 사과를 전했다. 김씨에게 A씨는 회사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따돌림을 당하던 상황에서 친분이 있던 몇 없는 동료직원이었다. 김씨는 "잘못을 덮고 넘어갈테니 내 편이 돼주고 일하는 것도 도와달라"고 말했다.

김씨는 B씨의 사과는 받지 않았다. 진심어린 사과로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씨는 B씨가 사과 자리에 결혼을 예정한 연인과 동석해 ‘여자친구의 말을 들어보니 사과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든다는 뉘앙스로 사과를 했다고 말했다. 자신이 어떤 잘못을 했는지 말이 없는 태도에 화가 난 김씨는 "내가 여자친구라면 당신같은 사람과 결혼 안 한다"고 쏘아붙이고 자리를 빠져나왔다.

김씨는 9일 회사에서 일하던 중 실신했다. 지난 4일 간 성적 수치심으로 인한 억울함에 시달리고 뜬 눈으로 밤을 새우는 등 스트레스가 누적된 상태였다. 그러던 중 9일 김씨는 A, B씨와 실랑이가 붙었다. 팀원 간 점심식사 자리에서 김씨는 두 사람을 가만히 응시하는 등 공격적인 태도를 취했고 이에 두 사람이 "왜 째려보느냐. 누구 약점 잡아서 노는 거냐"고 따져 물었다. 피해 사실에 대한 분노감도 있었지만 회사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따돌림을 당했던 김씨는 두 선배 직원에게 의지해 오기도 했다. 김씨는 사람을 잃을까 두려워 "내가 잘못했다. 속상한게 풀리지 않아서 그랬다"며 눈물로 호소했다. 사무실로 복귀했지만 김씨는 일이 하나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손이 떨릴만큼 불안증세가 심해지다 결국 쓰러진 것이다.

▲ 성추행 사건에 대해 사과를 요구한 김선정씨와 가해자 A씨의 대화.

“무릎꿇고 빌었는데 ‘기회는 없다. 다른 회사 알아보라’는 말만…”

김씨 실신으로 사측이 문제를 인지한 후 회사 차원의 진상조사위원회가 열렸다. 가해자 A씨는 “팬티가 보여 팬티가 보인다고 말했을 뿐(보이지 않게 하라는 의미)이고, 허벅지는 넘어지며 스친 것이다”라고 해명했다. 조사위는 김씨의 진술을 토대로 사건을 정리해 양자 간 합의, 가해 측 공식 사과, 자리 이동, 가해 측 3개월 10% 감봉 등의 사후 조치를 취했다. 진상조사위의 수습은 5월27일 마무리됐다.

김씨가 해고 통보를 들은 날은 자리 이동이 있고 부터 일주일 후다. 김씨는 6월2일 이아무개 대표이사, 윤아무개 이사와 면담을 했다. 김씨에 따르면 윤 이사는 일주일에서 한 달 안으로 회사생활을 정리할 것을 통보했다. 이유는 회사 기물을 파손했고 상사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었다. 김씨는 ‘당신을 믿을 수가 없다. 같이 일을 할 수가 없다. 다른 회사에 지원할 시 '크리틱(도움)' 해 주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김씨에게 임원의 말은 황망했다. 윤 이사가 말한 기물 파손은 지난 주 조직 개편 시 모니터를 옮기던 김씨가 손목이 삐끗해 모니터를 잘못 내려놓은 것을 뜻했다. 모니터는 문제없이 작동됐다.

거짓말의 경우도 김씨는 적극적으로 해명했다. 윤 이사는 회사 임원이 밤 늦도록 김씨 가방이 사무실에 놓여있는 것을 보고 귀가 여부를 문자로 물어봤는데, 김씨가 동료 직원과의 술자리에 있었음에도 "집에 잘 들어가고 있다"고 속였다고 지적했다. 답 문자는 동료 직원이 김씨 모르게 보낸 문자였다. 당시 김씨는 술을 많이 마신 상태였다.

선배 직원이 일을 도와달라고 했음에도 "할머니를 뵈러 가야 한다"고 속이고 나가 해당 직원이 혼자 일을 해야 했다는 지적에 대해 김씨는 사실무근이라고 항변했다. 김씨는 정규 업무 시간 종료 시 퇴근을 한 적이 한 번 있는데, 그때도 “도와드릴 일 없냐”고 묻고 “없다”는 대답을 들어서 퇴근한 것이라 해명했다.

김씨는 설령 자신이 거짓말을 했더라도 이것이 왜 해고 통보의 이유가 되는 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회사에 큰 타격을 주거나 업무적인 피해를 주는 사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사정했다. 오래 준비해 힘들게 입사한 회사인데다 김씨는 집안 사정이 넉넉하지 못했다. 그는 임원들 앞에서 "내가 모든 것을 잘못했다. 집도 어렵고 힘들게 들어온 회사다. 다 사과 드리고 앞으로는 잘 하겠다"고 말했다. 김씨는 윤 이사가 ‘이러지 말자. 이미 끝났다. 이미 기회는 지나갔고 다른 회사를 알아보라’고 답했다고 말했다.

김씨가 회사와 싸우기 시작한 시점은 바로 이 때부터였다.

▲ 김선정씨가 최초로 올린 폭로글에 대해 회사가 제시한 사실확인서. 초록색 밑줄은 김씨가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회사측의 반론이다. 김씨는 줄 친 부분에 대한 반박글을 다시 네이트판에 게시했다. 사진=김선정씨 제공

‘통보’ 당일 온라인에 억울함 호소해… “이렇게 잘릴 순 없어서 그랬다”

"1년을 준비해 들어온 회사였다. 이렇게 잘리는 건 말이 안된다." "나 죽을까. 그냥 떨어져 죽을까." 동료직원은 그날 억울함과 불안을 호소하던 김씨와 동행을 해줬고 김씨는 불상사없이 귀가했다. 김씨의 심리가 나아지지 않은 덴 이유가 있다. 진상조사위원회가 성추행 사건을 수습했지만, 사건이 일어난 이후로 김씨는 하루도 괜찮은 적이 없었다. 김씨는 사건 자체나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상처를 받아 거리에서 대성통곡을 하거나 수면제 없이 잠을 못 자는 등 일상이 망가진 상태였다.

김씨는 팀장급 직원에게 ‘너는 회사에 미안해 해야 한다. 이 사건 때문에 회사 전체가 못 굴러간다. 이사도 이 부분을 걱정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대표이사로부터도 ‘너 때문에 회사가 이게 뭐냐’ ‘다른 애들은 사회생활 잘 하는데 왜 너만 그러냐’고 지적받았다고 말했다.

2일 밤 김씨는 온라인 게시판 '네이트판'에 글을 올렸다. 자신이 성추행 피해자이자 그 사건으로 부당해고까지 당한 피해자라는 내용이었다. 김씨의 생각에 자신의 해고 사유는 설득력이 없었다. 김씨가 떠올릴 수 있는 근거는 성추행·성희롱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자신이 회사의 미움을 받았다는 것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회사 “그런 말 한 적 없다… 허위 사실, 회사 명예 실추돼”

사건은 커졌다. 온라인 여론은 회사를 비난했다. 회사는 사측 반박이 담긴 '사실확인서'를 주면서 글을 지우지 않으면 명예훼손으로 고소한다는 의지를 전했다. 김씨는 사실확인서도 반박했다. 김씨는 이를 다시 네이트판을 통해 공론화했다. 반박문은 네 차례 올라갔다.

현재 남은 문제는 '명예훼손죄'다. 회사는 '부당해고' 혹은 '해고' 자체가 아님에도 김씨가 허위 사실을 유포해 회사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입장이다. 윤아무개 이사는 29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6월2일 면담에서 '한 달 안에 정리해라', '다 끝났다', '더 이상 그런 기회는 없다' 등의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면담자리는 모든 직원이 3~6개월 주기로 갖는 업무평가자리였고 일반적인 수준의 근태평가가 이루어졌다고 밝혔다.

지난 24일 공개된 회사 입장문은 김씨가 자진퇴사했음을 강조하고 있다. 김씨가 지난 6월15일 스스로 퇴사할 것을 회사에 통보했고 6월24일 부당해고가 없었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직접 온라인에 게시까지 했다는 것이다.

김씨는 회사와 합의를 본 건 사실이지만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 및 명예훼손 고발을 피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대로는 더 괴로워서 회사를 다니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6월13일, 김씨의 백부가 회사와 만나 합의를 봤다. 사측은 손해배상은 청구하지 않기로 했고 김씨는 사과문을 작성하고 SNS를 통해 공유된 글 전체와 관련 기사를 삭제하고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상호합의했다. 이 과정에서 '부당해고가 없었다'는 사과문을 올렸고 사직서도 제출하게 됐다는 것이다.

▲ 김씨가 작성한 근로계약서. '인턴' 정의 및 기간에 대한 언급은 없다. 사진=김선정씨 제공.

“나는 거짓말 한 게 아니다… 무죄 밝히고 일상 되찾을 것”

김씨가 다시 온라인에 글을 올리며 싸움을 시작했고 자결 시도까지 하게 된 것은 '300만 원 벌금형 기소' 때문이다. 김씨는 회사와의 합의로 명예훼손 문제도 재고될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이후 검.경 조사가 이뤄졌고 검찰의 합의 주선 과정에서 회사는 합의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김씨는 8월17일 명예훼손죄 위반 300만원 벌금형으로 약식기소됐다.

김씨는 "명예훼손 문제를 없던 일로 한다고 해서 트위터 유저들에게 일일이 멘션을 보내며 글을 지워달라고 요청했고 언론사에도 일일이 전화해 기사를 다 내렸다"면서 "대표이사가 '인터넷에 글 삭제가 제대로 안 됐다‘며 명예훼손 고발을 취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윤이사는 "합의 당시 손해배상 철회 얘기는 오갔지만 명예훼손을 재고한다는 말은 한 적이 없다. 녹취록도 있다"고 반박했다.

부당해고 여부는 아직 판가름 나지 않았다. 말을 한 당사자는 "해고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김씨는 유서를 통해 "나는 무릎까지 꿇어가며 해고는 거두어 달라고 했"고 "이게 허위사실이라면 나는 인터넷에 문제를 공론화 시키지도 않았을 것이고 명예훼손죄 조사를 받을 때 '사실은 거짓말이었다' 라며 반성하고 있다고 선처를 호소했겠지"라고 밝혔다.

사측이 사실확인서를 통해 언급한 '통상적인 인턴 평가 기간'도 진술이 엇갈린다. 김씨의 고용계약서엔 '인턴, 시용' 등의 언급이 없으며 김씨 또한 지난 2월15일 입사한 이래로 인턴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회사 측은 "김씨는 정규직원이 맞다"면서도 "이전 직원들은 정부가 지원하는 인턴제도로 들어와 지원을 받았는데 그런 (관례적인) 기간을 지칭하는 것"이라 밝혔다.

"어려운 가정 환경 등 아무리 힘들게 살았어도 나에겐 미래가 있었으니까 죽고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지금은 여기서 매장되면 끝이다." 현재 김씨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의 도움을 받고 힘을 얻어 소송을 준비중이다. 김씨는 자신의 결백을 입증해 이 일을 떨쳐버리는 게 현재 가장 우선적인 목표라고 했다. 이후 평범한 일상을 되찾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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