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공적 인물’(정치인 등)에 대해서는 제대로 보도하지 못하고, ‘공개적 인물’(연예인 등)에 대해서만 선정적 보도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언론이 국회의원이나 재벌총수 등 공적 인물에 대해 제대로 보도하지 못하는 이유로는 △정치·자본권력의 작용 △언론을 향한 명예훼손 고소 남발 △피의사실공표죄 등 언론자유를 제한하는 법 등이 꼽혔다. 반면 연예인 등에 대한 보도가 넘쳐나는 이유로는 언론의 ‘먹고사니즘’(먹고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가치관)이 가장 큰 이유로 지적됐다.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유명인 범죄보도,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토론회에서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아직도 권력에 의해 보도지침이 내려지는 한국 언론의 현실을 비판했다. 연예인들의 범죄보도가 시시콜콜 보도되는 데에 비해 공적인물에 대한 보도는 그렇지 못하다는 말이다.

▲ 30일 표창원 의원실과 언론인권센터에서 주최한 '유명인 범죄보도,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정민경 기자
표창원 의원은 “이정현 전 수석이 KBS보도국장에게 세월호 보도 보도지침을 내린 사건, 용산참사 당시 '강호순 살인사건'을 활용하라는 청와대 이메일 사건 등 여전히 언론은 권력에 의한 보도지침을 받고 있다”라며 “이렇게 드러난 사례들은 빙산의 일각이고 여전히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보도지침들이 내려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표창원 의원은 공적 인물에 대한 범죄보도를 할 때 형식적인 법 논리만 따지면 오히려 언론 자유를 제약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권력을 가진 이들이 보도지침뿐 아니라 명예훼손이나 피의사실공표죄 등으로 언론사나 기자를 고소해 압박한다는 것이다.

표창원 의원은 “공적 인물에 대한 범죄보도에서 형식적 법 논리만 앞세운다면 권력을 가진 이들이 언론에 명예훼손을 거는 행위를 옹호하게 된다”며 “이로 인해 언론 종사들은 엄청난 자기 검열을 하게 되고 이를 해소하지 않으면 한국은 언론자유지수 70위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표 의원은 해당 사례로 주진우 시사인 기자가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 조카 살인사건 보도로 인해 명예훼손 고소를 당한 일과 산케이 전 서울지국장의 명예훼손 피소 사건을 꼽았다.

▲ 30일 열린 토론회에서 표창원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정민경 기자
문소영 서울신문 사회2부장도 ‘공적 인물’(국회의원, 재벌 총수 등)과 ‘공개적 인물’(연예인 등)에 대한 보도 건수의 차이가 자본권력과 정치권력의 통제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건희 동영상’이 지금까지 보도된 건수는 네이버 검색을 기준으로 333건, ‘이정현 녹취록’ 보도건수는 635건, ‘박유천 성폭행’ 보도 건수는 3034건이다.

문소영 부장은 “실질적인 자본의 통제를 두려워해서 기사를 쓰지 못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며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이 ‘법대로’라며 언론에 가하는 고소 등으로 인해 수많은 언론인은 칠링이펙트(Chilling effect, 위축효과)에 직면해있다”고 말했다.

피의사실공표죄, 언론중재법도 언론인을 위축시킨다는 지적도 나왔다. 피의사실공표죄는 검찰이 기소하기 전에 수사한 내용을 공표하는 것을 범죄라고 규정한다. 문소영 부장은 “만약 이런 법만으로 따지면 이번 송희영 조선일보 주필이 비리에 연루됐다는 건에도 실명을 밝히면 안 되는 것”이라며 “피의사실공표죄 등이 만들어진 배경을 안다면 언론에 ‘법대로 하자’는 말은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책 ‘한국 언론의 품격과 언론 법제’(심석태 지음)에 따르면 피의사실공표죄는 한국에서 6.25전쟁이 종결되기 전 권력자들이 정치적 반대자들을 타격하려는 의도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어 문소영 부장은 “언론이 특정사안에 대해 정보공개 요청을 하면 ‘피의사실 공표죄’를 근거로 거부하는 일이 빈번하다”며 “하지만 검찰 등은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알리고 싶은 수사 내용이 있으면 그 사실이 어떻게든 보도되게 한다. 이중적이다”고 비판했다.

▲ 이건희 전 회장과 박유천씨. 사진=연합뉴스, 디자인=이우림 기자
또한 토론회에서는 언론이 ‘공적인물’에 대한 보도에서는 실명이나 얼굴을 밝히는 것을 조심하면서도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 등 ‘공개된 인물’에 대해서는 거리낌 없이 실명을 밝히는 보도관행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표창원 의원은 “최근 박유천‧이진욱‧엄태웅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유사한 성폭력 보도는 대부분이 무고로 종결되고 있지만 언론은 끊임없이 관련 보도를 낸다”며 “반면 중학생을 성폭행해 임신시킨 40대 연예기획사 대표에 무죄 판결을 내린 사건에 대해서는 언론의 관심이 적었다. 유명세보다 권력에 대한 보도를 더 강하게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태진 연세대학교 교수(커뮤니케이션 대학원)는 “연예인 성폭행 피소 관련 보도들이 터무니없이 많이 생산된 이유는 언론사의 ‘클릭수 장사’때문”이라며 “언론이 남의 성생활 등 대중들의 저속한 호기심을 채워주면서 ‘국민의 알권리’로 포장하는 것은 그만둬야한다”고 지적했다.

▲ 21일 공개된 뉴스타파의 보도 장면 갈무리.
한편 토론회에서는 ‘뉴스타파’의 이건희 전 회장의 성매매 동영상 보도에 대한 논의도 오고갔다.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이 공적 인물이자 공개적 인물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었지만 보도 내용이 국민의 알권리에 해당하는 지에는 논란이 일었다.

해당 보도는 단순히 개인이 성매매특별법을 위반한 사안이 아니라 그룹 차원에서 성매매를 알선했다는 것이 문제였기 때문에 보도가치가 있다는 의견이 먼저였다. 윤정주 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소장은 “이 사안은 해당 그룹 차원에서 성매매를 알선하고 공적 자금을 들여서 성매매 장소를 제공한 사안이고 이는 큰 범죄”라고 지적했다.

반면 해당보도가 공익보다는 저속한 호기심에 가까워 실패한 보도라는 평가도 나왔다. 윤태진 교수는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면서까지 보도할만한 것은 알리려는 사안이 공익에 부합해야 하는데 이건희 전 회장의 동영상 보도에서 개인의 성생활을 너무 세세하게 알린 것은 적절하지 않았다”라며 “개인적으로는 실패한 보도사례라고 본다”고 평가했다.

윤 교수는 “뉴스가 전파된 과정을 보면 정작 강조됐어야 할 재벌 총수의 현행법 위반, 그룹 차원의 성매매 알선 등 중요한 사안은 묻히고 재벌 총수의 성생활 등 자극적인 부분만 퍼져나갔다”라며 “물론 뉴스타파의 취재 내용 전체를 본다면 알 수 있는 부분이긴 했으나 이후 인터넷에 퍼진 부분은 중요사안이 아닌 자극적 영상뿐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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