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MBC PD수첩과 동시간대 방송을 했습니다. PD수첩은 정통 시사 보도물이었지만 우리 프로그램은 공익적이기는 하나 선정성에 기대는 측면이 없지 않았던 터라 시청률에서는 거의 더블 스코어로 이겼죠. 아니 PD수첩은 시청률 경쟁에서는 일찌감치 벗어나 있던 프로그램이었습니다. PD수첩이 시청률이 너무 안 나오면 오히려 우리가 걱정을 했지요. 그 가운데 메인 작가가 했던 말은 참으로 명언이었습니다.

“우리 프로그램은 있으면 좋은 프로그램이고 PD수첩은 없으면 안 되는 프로그램인데.”

요즘은 이 PD수첩이 방송되긴 하는지, 또는 종방됐는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PD수첩의 몰락은 동아일보의 추락만큼이나 우리 언론사의 비극이라고 생각합니다.  20년간 자신이 쌓아올린 역사를 자신의 손으로 허물어 버린 MBC는 2차대전 당시 가미가제만큼이나 어처구니없는 자해 행위를 했다고 여깁니다. PD수첩은 청와대부터 시정잡배까지 모두 열광하여 떠받들어 모시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황우석의 비밀을 고백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창구였습니다. 즉 무슨 외압이 있든, 아무리 누가 손을 쓰든 그곳만은 내 말을 들어 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주었던 일종의 소도(蘇塗)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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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도는 이미 유린되고 짓밟혀 언론의 성역을 지키던 천군(天君)들은 떠나거나 귀양가거나 도리어 전혀 다른 모습이 되어 폐허가 된 소도를 배회하고 있습니다. MBC PD수첩 출신의 일부 PD들이 앞장서서 PD수첩을 찢어 버렸던 사실을 굳이 기억하고 싶지 않습니다. 단지 그들의 거친 발길 속에 우리는 ‘없으면 안되는’ 프로그램을 잃어 버렸다는 사실만 곱씹을 뿐입니다.

저는 한겨레 창간독자이고 가끔 문을 두드리는 다른 신문사 판촉직원이 무슨 자전거에 현금을 갖다 안긴들 다른 신문을 볼 마음이 없습니다. 어느 면이 좀 처지고 정보가 부족하고 어쩌고 하는 걸 모르는 게 아니지만 다른 신문은 다른 곳에 가서 보면 될 일이고 내 집 현관에는 한겨레가 있어야 합니다. 그게 애면글면 돈 모으고 해직 기자들의 발품 글품을 모으고 정권의 탄압을 딛고 역사를 일궈 온 한겨레에 대한 예의라고 믿기에 그렇습니다. 이렇게 말하니 거창한 것 같지만 결국 이유는 간단합니다. 한겨레는 ‘있어서 좋은’ 언론 정도가 아니라 ‘없으면 안 될’ 존재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물론 마음에 안들 때도 많습니다. 뭐 이런 글을 싣는지, 대체 이 기사를 오케이한 편집장은 제정신인지 묻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건 한때의 비판 또는 외마디 욕설의 대상일 수는 있었으되 작별을 고할 이유는 되지 못했습니다. 역시 이유는 간단합니다. 나와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마저 에잇 하고 한겨레를 던져 버린다면 한겨레신문은 잘 먹고 잘 사는 게 아니라 정말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하기 때문입니다. 그때의 암담함을 상상하면 내 눈이 멀 것 같기 때문입니다. (경향신문 애독자들도 아마 이 심경 이해하실 겁니다. )

내 마음에 안든다고 절독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입니다. 하지만 ‘있으면 좋은’ 것과 ‘없어서는 안될’ 것들의 차이를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이른바 진보 진영에 위치한 신문이나 잡지들 보면 안타까움을 금하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경쟁은 치열한데 고객은 까다롭고 실탄은 부족한데 요구는 태산이며 까딱 하나 잘못 말했다가는 치도곤은 기본 사양으로 하고 여차하면 절교장이 무더기로 날아드는 형편에 그 가슴이 새가슴이 되지 않으면 이상하지 않겠습니까.

시사인의 메갈 관련 기사로 절독 사태가 빚어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일면적으로 그 분노를 이해합니다. 왜 화를 내는지는 알겠다는 뜻입니다. 한편으로 나는 그 분노에 찬성하지 못합니다. 맞든 틀리든 내 생각과 전혀 다르거나 생각지도 못한 부분을 짚어 주는 언론이란 소중한 것이며, 우리 사회에서 시사인 같은 잡지는 역시 ‘있어서 좋은’ 쪽보다는 ‘없으면 안 되는’ 쪽이라고 여기기에 그렇습니다.

말씀드렸듯 특정 언론과 끊고 맺고는 본인의 자유입니다. 끊은 분들의 자유를 존중합니다. 그러나 그 끊음의 논리에 동조할 수 없는 분들은, 어떤 주장을 했다는 이유로 공론장에서의 비판이 아닌 정치적, 경영적 생존에 대한 위협을 받아야 하는 현상에 대해 찬성할 수 없는 분들은, 시사인 같은 잡지는 ‘없어서는 곤란한’ 쪽이라는 쪽에 고개를 끄덕이시는 분들은 한 발 더 나아간 응원과 연대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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