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가 VR(가상현실) 헤드셋을 쓰고 있는 이 사진은 오바마를 대표하는 사진으로 남을 거다. 구도와 등장인물들의 표정, 상징성 까지 전부 완벽하다. (원본 출처는 백악관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p/BJiXMzMDa44/)

오바마는 2008년 대선 당시 블랙베리를 사용하는 후보로 유명했다. (블랙베리는 오바마의 인기와 함께 엄청난 홍보효과를 누렸다). 지금은 누구나 폰 화면에 코를 박고 식탁에서도 대화를 하지 않는 일이 보편화되었지만, 아이폰이 없던 당시만 해도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이메일을 24시간 체크하는 블랙베리 사용자들 밖에 없었다. (블랙베리의 중독성 때문에 흔히 "크랙베리"라고 불렸다).

▲ President Obama watches a virtual reality film captured during his trip to Yosemite National Park earlier this year. 백악관 인스타그램.
하지만 신기술의 모바일이라서 보안성이 취약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대통령이 되면 사용을 할 수 없을텐데, 오바마가 블랙베리를 "끊을" 수 있겠느냐는 농담이 나오곤 했다. 오바마가 백악관에 들어가면 끊어야 할 건 또 있었다. 담배였다. 모든 공공건물이 금연구역인 워싱턴DC에서 정부 건물에 살면서 담배를 피울 수는 없는 노릇.

오죽했으면 뉴욕타임즈에는 "오바마에게 담배는 좀 피우게 해주라"는 칼럼이 다 실렸었다. 첫째, 공공건물이지만 자신 사는 집이고, 둘째 대통령의 스트레스는 국가적인 위험이라는 주장이었다.

오바마는 대통령이 되면서 금연을 선언했지만, 1기 때에만 해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한동안은 간간이 담배를 피웠다. 후에는 그마저도 완전히 끊었다고 들었다.

크랙베리는? 대통령 당선이 점점 확실해지면서 미국 정보기관과 블랙베리가 비밀리에 작업을 해서 특별히 암호화 작업을 한 대통령 전용 블랙베리를 제작했고, 취임 몇 달 후 공개가 되어서 화제를 모았다.

후보시절부터 테크놀로지와 친밀한 인상을 주었던 오바마 임기는 스마트폰 시대의 개막과 사실상 일치한다. 첫 아이폰은 2007년에 나왔지만, 피부로 느껴질만큼 미국에서 대중화된 것은 오바마가 당선된 2008년이었고, 안드로이드폰이 나온 것도 2008년이다.

게다가 실리콘밸리는 오바마와 이래저래 가깝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같은 젊은이들의 SNS는 오바마 당선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고, 오바마의 재선 때도 캘리포니아의 기부금은 남쪽의 헐리우드와 북쪽의 실리콘밸리가 주축을 이뤘다.

따라서 오바마가 캐나다산의 구식 블랙베리를 오래 사용하지는 않았을 거다. 분명히 스마트폰으로 바꿨는데, 어떤 폰인지는 밝히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6월에 한 토크쇼에 등장한 오바마는 스마트폰을 가지고는 있지만 전혀 스마트하지 않다고 했다.

보안을 위해서 사진도 못찍고, 음악도 못듣고, 심지어 텍스트도 못보낸다는 것. "세 살 짜리가 가지고 노는 장난감 폰" 수준이라고 한다.

하지만 실리콘밸리의 오바마 지지만큼 뜨거운 것이 오바마의 실리콘밸리 사랑이다. 외국인들의 실리콘밸리 취업비자에 대한 정부차원의 협조는 물론이고, 이번에는 아예 외국인들이 미국에서 스타트업을 쉽게 차릴 수 있는 비자까지 새로 만들 계획을 밝혔다.

저커버그와 가깝다는 건 유명하고, 심지어 퇴임 후에는 벤처캐피탈리스트로 변신을 할까 생각 중이라는 말까지 흘러나왔다.

오바마는 많은 것으로 기억될 대통령이다. 하지만 '최초의 흑인대통령'이라는 그의 취임 초 이미지가 미국의 과거와 연관된 것이라면, '오바마 프레지던시=모바일 경제의 시작점'이라는 역사성은 미국의 미래와 연결된 것이기 때문에 미래의 학자들이 2010년대를 돌아볼 때는 후자에 더 많은 초점을 둘 가능성이 있다.

이 사진의 상징성도 거기에 있다. 오바마는 블랙베리로 시작해서 VR의 등장과 함께 임기를 마치는 대통령이 된 것이다.

대통령이 쓰고 있는 건 지금은 가장 앞선 VR 헤드셋이지만, 당장 몇 년 만 지나도 요즘 세상에 플로피디스크 사진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줄 거다. 훗날 이 사진을 보면 "저 때는 저랬었지..."라는 말을 하면서 모바일/VR과 오바마 정부를 연결지을 거다.

물론 단지 대통령이 헤드셋을 쓰고 있다고 해서 시대를 대변하는 사진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사진이 재미있거나 감동적이거나 하는 다른 이유로 '작품으로서의 매력'이 있어야 한다. 마치 흐루시초프와 닉슨의 유명한 '부엌토론(Kitchen Debate) 사진 처럼 말이다.

Nixon famously debated Krushchev on policy in what became known as the "Kitchen Debate". 위키커먼즈.
흐루시초프와 닉슨의 사진이 코믹한 이유는 부엌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을 1950년대 남자 두 명이 서로 자기나라의 부엌용 전기제품을 가지고 심각하게 토론을 벌이는 모습이 냉전시대 강대국들의 'pissing contest(말다툼)'의 유치함과 'absurd(터무니없음)'함을 재미있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노무현 대통령이 애기에게 음식을 주려다 뺏는 시늉을 하는 사진은 장면의 코믹함이 노대통령의 평소 성격과 그의 인생을 잘 보여주기 때문에 유명해진 것이다.

▲ 한 누리꾼이 찍어 공개한 이 사진은 사실 떡을 주려다가 빼앗은 게 아니라 뜨거운 두부를 불어서 식혀서 먹이는 장면이 일부 편집된 것으로 알려졌다.
오바마의 VR 헤드셋 사진이 기가막힌 이유는 반은 오바마의 자세 때문이지만, 나머지 반은 비서의 몫이다.

보스가 신나서 VR을 구경하고 있는데 "Oh, he does this all the time(저 사람은 늘 저래)"하는 표정으로 무표정하게 자기 모니터만 들여다 보는 모습은 2016년의 미국인들의 성격과 모습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케네디의 비서나 레이건의 비서가 저랬을까? 물론 그런 장면이 나왔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건 우연"이라고 했을 것이다. 지금보다 훨씬 더 경직된 직장문화였을 테니까.

마찬가지로 오바마의 비서도 대통령을 쳐다보다가 잠깐 모니터로 얼굴을 돌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저게 이 시대를 상징한다고 생각한다. NBC코미디 'The Office(오피스)'의 여주인공 팸(Pam)의 얼굴을 포샵해넣은 장면이 인기를 끄는 것도 그 이유다.

▲ 첫번째 사진과 다른 부분을 찾아보시오.

혼자서 신난 아저씨 보스를 둔 젊은 직원의 무관심 말이다.

그걸 보는 사람들은 백악관도 여느 직장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할 거다. 일과 관련된 것 이상의 신경을 쓸 필요가 없어 보인다. 그냥 자기가 할 일 열심히 하고 떠나면 되는 곳일 뿐, 영원한 권력의 밀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바마 정권은 그렇게 '평범한 직장으로서의 백악관'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었다. '제왕적 대통령제'(Imperial Presidency)로 유명한 행정부 우위의 미국에 남긴, 쉽게 드러나지 않는 오바마의 레거시다.

▲ 이 사진과도 느낌이 많이 다르군요. 청와대 제공 사진.

(참고로 오바마 대통령이 보고 있는 VR은 이거다. 제법 많은 미국의 국립공원을 다녔지만, 세 번을 갔던 건 요세미티가 유일한 나로서는 이래저래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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