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의역 사고는 안전을 비용으로 간주하고 비용절감의 대상으로 삼은 공공부문 경영효율화 정책의 결과이다.”

구의역 참사 책임의 정점엔 공공부문에 무리하게 비용효율성을 도입한 정부와 서울시가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 같은 정책 결정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지적됐다.

구의역 사망재해 시민대책위원회 진상조사단(이하 진상조사단)은 지난 25일 오후 서울시청에서 진상조사 결과 시민보고회를 열고 구의역 참사의 발생 원인과 권고안을 발표했다.

▲ 구의역 사망재해 시민대책위원회 진상조사단(이하 진상조사단)은 지난 8월25일 오후 서울시청에서 진상조사 결과 시민보고회를 열고 구의역 참사의 발생 원인과 권고안을 발표했다. ⓒ노컷뉴스

지난 6월27일 발족한 진상조사단은 구의역 참사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대책을 위해 53개 시민단체가 모인 시민대책위, 서울시, 서울메트로, 서울도시철도공사, 노동조합 등이 공동으로 참여했다. 

부실한 스크린도어, 하청 정비공… 누가 만들었나

발표에 나선 권영국 변호사는 참사 당시 제기됐던 “너의 잘못이 아니야”란 구호를 환기했다. 안전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라는 인식이 확대됐다는 것이다.

진상조사단이 참사의 궁극적인 요인으로 지적하는 것도 경영 구조, 조직 내 의사결정 구조 등 ‘조직적 요인’이다. 권 변호사는 스크린도어 오작동, 법규 미준수, 노동강도 등의 문제는 표면적 원인이고 정책을 결정하고 강행하는 조직적 요인이 표면적 문제를 일으키는 심층적 원인이었다고 지적했다.

무책임 행정으로 인한 필연적 부실공사

진상조사단은 서울시와 서울메트로의 조직적 책임이 스크린도어 도입부터 발주, 입찰, 제작, 설치, 시험, 준공 등 전 과정에서 발견됐다고 평가했다.

서울메트로 스크린도어는 ‘민자사업 우선배치’로 추진됐고 시공에 수천 억 원 예산이 소요됨에도 최저가 낙찰로 시공사를 선정하는 한 편, 기술표준도 없는 상태에서 도입이 결정됐다. 서울메트로 스크린도어는 2003년 10월22일 유진메트로컴이 승강장안전문 민자사업을 제안하면서 본격적으로 착수돼 BOT(Build-Operate-Transfer) 방식으로 추진됐다. BOT는 사회기반시설의 준공 후 사업시행자가 일정 기간 소유권을 가지고 기간이 만료될 시 국가 또는 지자체에 소유권이 귀속되는 형태다.

▲ 권영국 구의역 사망재해 시민대책위원회 진상조사단장(왼쪽)이 시민보고회에 참석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사진=손가영 기자

권 변호사는 “민자사업 추진으로 불변사업 수익률을 보장해주면서 ‘고정문’이 나타났다. 고정문은 광고 수입 원천이 되는 광고판이었다”고 지적했다. 고정문은 응급 상황 발생 시 비상탈출을 막아 안전을 저해하는 구조물이라고 지적된 바 있다.

권 변호사는 서울메트로가 저가입찰로 일관해 민자사업 금액의 ½~¼ 수준의 시공비용을 투자함으로써 시공업체들의 부도를 유발했고 이는 곧 부실시공의 문제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한 기술표준이 없는 상태에서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에 1조 원에 가까운 스크린도어 도입 예산을 승인해 준 것은 무책임한 행정이라고 비판했다. 이 때문에 시공 결과에 맞춰 도서철도건설규칙이 사후적으로 변경되는 일도 발생했다. 전동차 출입문과 스크린도어 사이 공간이 10cm 초과하지 못하도록 한 규제를 스크린도어 설치 완료 후 삭제한 것이다.

안전 고려 없었던 ‘공기업 선진화’… 오세훈, 공사기간 1년 단축시키기도

진상조사단은 설계, 입찰, 제작도 졸속으로 추진돼 부실 공사 문제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이 확인한 결과 서울메트로는 용역을 통한 스크린도어 설계를 시행하지 않았다. 설계 검토 및 검증 과정이 생략돼 결국 평가 기준 없이 자의적으로 입찰계약이 이뤄졌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장비 성능 및 품질확인용 시험성적서도 확인이 불가했다. 진상조사단은 이런 상황에서 최저가 낙찰제를 추진해 시공업체 부도를 겪으며 부실한 기반 공사를 낳았다고 비판했다.

권 변호사는 오세훈 전 시장이 졸속 행정을 부추긴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오 전 시장은 스크린도어 준공이 2010년 예정이었음에도 “2009년 말까지 전 역사에 설치하겠다”고 공약함으로써 공사 기간을 대폭 줄였다.

▲ 12면-지난 5월31일 고 김군의 친구와 흙수저당, 청년전태일 등에서 나온 청년들, 시민들이 구의역 스크린도어 앞에서 김군을 추모하는 묵념을 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이 과정에서 안전점검 상 중요한 절차인 ‘시운전’이 생략됐다. 실제 전동차를 운행하며 스크린도어가 잘 작동하는지를 점검하는 ‘현차 시험’이 이뤄지지 않았다. 권 변호사는 “엄청난 부실이 될 수밖에 없었던 요인”이라면서 “법 위반 소지를 다분히 갖고 있다. 차후 이 문제는 수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운전 문제는 최근 개통된 인천도시철도 2호선의 운행중단 사태의 원인으로 지목될 만큼 중요한 절차다. 도시철도법은 60일 이상 시험운행을 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인천교통공사 노조는 인천지하철 2호선이 27일간 시설물 검증시험을 하고, 40일간 영업시운전을 했다고 밝힌 바 있다. 김해경전철 135일, 용인경전철 90일에 비해 짧은 기간이다.

한 달 장애 건수만 453건, 적발된 부실공사 700여 건

졸속 행정 및 부실 시공은 지하철 안전 위협으로 나타났다. 2010년 4월 서울메트로 감사실이 작성한 ‘역사 승강장 PSD관련 특명감사 결과 보고’에 따르면 2009년 1월부터 2010년 4월까지 사고가 13건 발생했고 2010년 1월부터 4월까지 스크린도어 장애는 1812건 발생했다. 한 달 평균 453건이 발생했다.

뚝섬역 스크린도어 고정상태 불량, 금호역 수직천장판 상부보강 몰딩 일부 미시공 등 총 744건의 부실시공이 적발되기도 했다.

‘책임의 정점’은 이명박·오세훈의 대책 없는 공공부문 구조조정

이 같은 결과의 원인으로 이명박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 정책과 이에 발맞춘 오세훈 전 시장의 '창의혁신프로그램'이 지목됐다. 이명박 정부는 공공부문 세출예산 10% 감축을 골자로 한 공공부문 경영효율화 정책을 강행했다. 공기업 내 ‘비핵심업무’의 민간위탁, 인력감축, 아웃소싱(외주화) 등의 방안이 핵심이었다.

구의역 참사는 안전 매뉴얼이 없어서 발생한 게 아니라 안전 매뉴얼을 지킬 수가 없어서 발생했다. 진상조사단은 핵심적인 문제로 외주화와 인력감축을 지적했다.

2011년 은성PSD는 역사 당 정비인력이 1.2명 이하까지 떨어져 인력이 현저히 부족한 상태에서 시작했다. 서울메트로와의 계약에서는 ‘장애 통보 후 1시간 이내 미도착시 지연배상’, ‘동일장애 3회 발생 시 배상금 지급’ 등 독소조항이 있었다. 2인1조 규정이 사문화된 직접적 요인이다.

외주화로 인한 복잡한 보고체계도 안전 위협 요인으로 꼽혔다. 진상조사단은 서울메트로가 ‘불법파견’ 근거를 피하기 위해 “하청노동자가 관제에 직접 연락을 못하고 전자운영실을 통해 몇 단계를 거쳐서 연락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며 “여러 단계의 보고를 거치다보니 ‘빠른 처리’를 강조하는 서울메트로 조직문화에서는 관행적으로 보고단계를 생략하고 작업을 하는 것이 관행화 될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것은 하청업체만이 아니다. 서울도시철도공사의 경우 스크린도어 유지·보수 업무는 신호사업소 인력이 맡았다. 이들로선 인력 충원이 없이 업무가 가중됐다. 도시철도노조의 설문조사 결과 98%가 스크린도어 장애 발생 시 1인 출동 경험이 있었고 89%가 열차 충돌 위험을 느껴봤다고 답했다.

신호수가 업무를 겸직함에 따라 신호설비 점검 주기가 느슨해졌다. 신호기, 선로전환기 등 설비는 점검주기가 7일이고 궤도회로, 전원장치 등의 설비 점검 주기는 6개월로 늦춰졌다. 서울메트로는 각각 1일, 월간 3, 6개월이다.

▲ 이날 보고회에서는 진상조사단이 지난 2개월간 받은 ‘구의역 참사 재발방지와 안전한 지하철을 위한 승객 서명’에 대한 1만9천명의 시민서명을 박원순 시장에 직접 전달했다. 사진=손가영 기자

“정부 예산 지원하고 서울시 안전업무 실질적 정규직화 대책 수립하라”

구의역 참사의 조직적 원인에는 서울메트로의 각종 안전 관련 설비 시공, 정비 등에 비용 중심의 심사를 진행했던 서울시, 그리고 공공부문을 비용 효율성 논리에 따라 관리하려 했던 중앙정부가 있다는 것이 진상조사단의 관점이다. 이들은 서울시와 중앙정부가 ‘책임의 사슬(chain of resposibility)’의 정점에 있다고 본다.

진상조사단이 방점을 찍는 대안으로 서울시 지하철 노사민정 안전위원회 구성과 지하철 무임비용 정부지원 입법화가 있다. 권 변호사는 노사민정 안전위원회는 안전과 관련된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참여를 통해 일방적 경영 결정을 감시·견제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지하철 무임비용 정부지원은 서울메트로 적자 문제를 해결하면서 안전대책 강화 역량을 확보할 수 있는 대책이다. 서울메트로는 노인, 국가유공자 등 무임승차지원으로 2015년 운임손실 1,894억 원을 기록했다. 조사단은 “국가에서 정한 법률에 의해서 무임승차를 이용하는데 비용담당은 운영기관이 하고 있다”면서 “무임비용 전액 또는 일부 보전 시 경영수지 흑자 전환이 가능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밖에 진상조사단은 안전시스템 측면에서 △정시운행에서 안전운행으로 전환 △책임 추궁에서 원인규명으로 조직문화 개선 △안전인력 확보를 위한 양공사 통합 등을 권고안으로 제시했다.

시설·기술적 측면에서는 △스크린도어 시스템 구성 개선 및 역무에서의 안전업무 지원 인력 보충 권고안 △고정문 즉시 철거 권고안 △전문 관리조직 신설 및 관리인력 증원 등을 냈다. 고용인력 부문에서는 △안전업무직 실질적 정규직화 △적정인력 산정 배치 △무기계약직 전환 과정에서 재고용되지 못한 기존 직원들의 구제 방안 마련 등을 제시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